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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Sep 26. 2020

요즘 이혼이 흠인가요 스펙이지


A는 대학 동기들 중에서도 단연 공부를 잘하는 친구였다. 빠른 년생으로 입학했지만 매 학기 과탑을 놓치지 않았고, 대외활동부터 외국어 공부까지 빼먹지 않는 그런 완벽한 학생이었다. 스펙 관리에 바빠 학과 활동을 소홀히 하는 그녀를 두고, 몇몇 친구들은 맘에 들어하지 않는 티를 은근히 내고는 했다. 하지만 A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극도로 싫어하는 타입이었기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준 적이 없었고, 친구들도 A를 미워할 확실한 이유가 없기에 아이들은 그녀가 사회성이 부족한 거 같다며 애매한 뒷담화 정도만 하고는 했다.


나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취업 프로그램에서 A와 같은 조가 되어 가까워졌다. A는 키가 크고 살이 잘 찌지 않는 자신의 체질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당시의 나는 '남들은 그런 체형을 가지고 싶어서 안달인데 자랑하냐며' 멍청하고 무례한 말을 장난식으로 했었다. 나중에야 듣게 된 사실이지만, A는 만성 빈혈에 시달렸으며 너무 마른 체형 때문에 근육량이 적어 항상 체력이 부족해 자주 아프고는 했다고 한다. 


 A에겐 일상에서 닥치는 안전의 문제였는데
나는 폭력적이게도 으스대지 말라는 말이나 지껄였었다.


나는 그말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어딜 가나 꼭 있는 한심한 대학 선배들이 늘 그러하듯, 복학한 남자 선배들은 후배 여학생들에게 부담스럽게 대시하고는 했는데, A 또한 그 구애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A는 밤늦게까지 술을 사줄 테니 나오라고 전화하는 선배에게 '한 번만 더 연락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라고 똑 부러지게 받아쳤다. 그 선배는 학생회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었고, 학과에는 A가 애먼 사람 범죄자로 만든다며 소문이 퍼졌다. 그러다 그녀는 레즈비언이 아니냐는 소문에도 시달려야 했다. A는 학과활동을 더욱 멀리하게 됐다.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항상 최대 학점을 수강했고 결국 조기졸업을 했다. 졸업과 동시에 A는 이십 대 초반에 중견기업에 마케팅부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동기들 중에 가장 먼저 직장인이 되었다.


빠른 년생이자 조기졸업생이었기 때문에 A는 당해년도 최연소 졸업생이었다.



철저하게 계획적이고 똑똑했던 A는 워커홀릭이었다. 매일 야근을 했고, 그가 제안한 기획안은 사내 이사진의 눈에 들어 당장 실행에 옮겨졌다. A는 회사 내에서도 업무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상사들이 만든 기획안에도 철저하게 피드백했다. 맥락을 잘못 짚은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도 모른 척하지 않고 구구절절할 말을 다 했다. 차장급 이상이 제안하는 기획안은 별 다른 수정 없이 실행에 옮긴다는 불문율을 A는 이해하지 못했고 자기 손으로 깨버린 것이다. 하지만 A에게 상사의 비위를 맞춰주는 능글맞음은 없었다. 회식에 가서도 상사에게 술을 따라준다거나 불쾌한 농담에 웃어준다거나 하는 행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 A는 가면을 수십 번은 갈아 끼우며 나 자신을 지워가는 것이 사회생활 아니겠냐는 주변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부서 선배들은 이렇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A를 싫어했다. 그녀는 업계에서 흙밭 똥밭에서 구를 대로 굴러봤다는 남자 선배들의 정치놀음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A가 제안하거나 기획하는 일에는 그 누구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같이 입사한 동기들조차, 다른 선배들의 눈치를 보느라 A와 함께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주 가끔 홍보팀의 B대리가 A에게 격려 차원의 커피를 한잔씩 사주고는 했다. B대리는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그나마 A와 친한 남자 사원이었다. A는 그런 B선배에게 가끔 의지했다. 서로 다른 시간에 퇴근해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술집에서 만나 고민을 털어놓으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러다 부서 전체 회식 때 마케팅팀과 기획팀 5명의 남자 대리들이, 누가 그녀와 먼저 자는지 화장실에서 내기를 했다. B선배는 그 이야기를 A에게 전했다. B선배는 몸 간수 잘하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 일하러 들어간 회사에서 A는 신변의 안전까지 걱정해야만 했다.



A는 그 후로 온갖 변명을 대며 회식에 일절 참여하지 않았고 자연히 사내에서 따돌림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업무적 성과는 좋아서, 책임을 맡은 프로젝트의 성공을 전사적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A는 사내에서 더욱 고립되어갔다. A는 자신의 상황을 그나마 알아주고 털어놓을 수 있는 B선배와 더욱 가까워졌다. 둘은 자주 만났고 매번 술을 마셨다.


그러다 A는 그와 사귄 지 4개월 만에 임신을 했다.



A의 가족은 노발대발하며 결혼을 반대했다. A도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일을 더 하고 싶었고 결혼은 자신의 계획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B 선배의 집안은 달랐다. 장남의 씨를 함부로 지울 수 없다며 무조건적인 결혼을 주장했다. A는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애는 낳아놓고 가라는 B 선배 가족의 압박을 이겨낼 수 없었다. A는 3개월 뒤 결혼식을 올렸고 동시에 퇴사를 했다. 태교를 위해서 관두라는 시댁의 말과 육아 휴직계를 내는 건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밖에 안 된다는 부장의 말은 그녀의 퇴사를 종용했다.



그녀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A는 소위 대출 영끌을 해서 신혼집을 샀고 직장인에서 주부가 됐다. 그는 오랫동안 쌓아온 것들을 돌아서야만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올라온 그녀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서는 '그래도 이 또한 자신의 삶이기에 사랑하겠다'는 글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B선배는 완전히 바뀐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않았던 건지, 점점 A를 자신의 성공가도를 막아버린 장애물 취급했다. 그는 매일 술에 취해 들어왔다. 집에 들어오면 배가 부른 A를 흘겨보며 자기 인생이 망가진 건 네 탓이라는 말을 했다. 수익률이 좋던 투자를 멈춰야 했고 적금도 깨야했고 이제는 마음껏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돈도 모으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는 말을 했다. 동시에 임신을 하고 나서는 체질이 바뀌었는지 통통 해지는 A의 외양을 불만족스러워했다.



얼마 안 가 B선배는 맨 정신으로 거실의 식탁에서 A에게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행복은 결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둘은 원만하게 이혼을 합의했고 양육권은 A가 갖기로 했다. 시댁의 반발을 예상했지만 큰 사건은 없었다. 이혼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A는 한 산부인과에서 아들을 낳았다.



아기가 돌이 지나자 A는 복직을 준비했다. 높지 않은 연차에 아이가 있는 여성이라는 조건 때문에 잦은 불합격을 맛봤지만, 결국 한 스타트업에 최종 합격했다. 그녀의 엄마는 너무 이르다고 그녀를 타일렀다.


 하지만 A는 충분히 굶주린, 당연히 야망적인 존재였다. 


A는 시터를 고용해서라도 일을 하겠다고 했다. A가 다시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아기는 엄마보다 외할머니와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아기는 퇴근하고 오는 A를 보면 생긋 웃는다고 한다.



나는 가을이 오는 토요일에 아주 오랜만에 A를 만났다. A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대학생 시절처럼 달라붙는 청바지에 타이트한 옷을 입은 A는 없었다. 대신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넉넉하고 편한 옷차림을 한 A였다. 그럼에도 A는 여전히 A였다. 공부를 굉장히 잘했던, 할 말은 똑 부러지게 다 하는 스타일이었던, 좋은 직장에 다니기 위해 열심히 스펙을 쌓았던, 그곳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던, 남들에게 지는 걸 싫어해 1등을 놓치고 싶지 않아 했던, 꼭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어 했던 한 명의 사람, A였다.


대학생 때 전공 책이나 아메리카노를 들던 그녀의 손은, 이제 유모차를 잡고 있었다


"눈이 B를 많이 닮았어."


A는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며 말했다. 정말이었다. 아기는 태어나 한 번도 본 적도 없을 B선배와 많이 닮아있었다. A는 그간의 일들을 나에게 말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하지만 확실한 건 A는 여전히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아기가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날 나는 말했다. 대학생 때, 너는 너의 체질 때문에 건강이 안 좋아서 힘들었을 텐데 내가 그렇게 장난식으로 말해서 미안했다고. A는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자신도 지금까지의 삶을 창피해하지 않기로 했다고,
나에게도 그러라고 말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일련의 이 일들이 A가 꼭 겪어야 할 일이었을까. 이건 어떤 누군가의 잘못인 걸까. 그렇다면 꼭 그래야 할 일이었을까.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난 A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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