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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Jun 17. 2021

집 근처 가장 큰 서점이 망했다.

반디앤루니스를 떠나보내며

아빠는 술에 취한 채 가끔 내게 전화해서, 글을 배우지 말라고 했다. 요즘은 책을 읽지 않는 시대잖아, 전공을 살려서 큰 기업에 취직을 하라고. 글을 쓰고 싶으면 회사를 다니면서 하라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쓸모가 많은 일을 하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분기마다 사람 속을 박박 긁어놓는 것도 재주라며 애써 외면했다.




반디앤루니스가 망했다. 처리하지 않은 어음 대금이 1억 6천만 원 정도라고 하니, 갚지 못했다기보단 갚지 않았다는 말이 정확할 수도 있겠다. 더는 서점 운영으로는 수익을 낼 수 없으니 포기한 것이겠지.


건대에서 자취방을 구한 대학생 끝 무렵 시절부터 자주 스타시티 반디를 방문했다. 친구를 기다릴 때, 영화 시간이 남았을 때,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항상 이곳에서 20분 정도는 책 구경을 했다. 하지만 나는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에서 오래 있지 못하는 편이라, 반디에 오래 머물렀던 적은 없다. 솔직히 추억할 만한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라 반디에 애정을 가졌다고 말할 수도 없다. 수익성이 없는 공간이니 문을 닫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로 늘 북적이던 스타시티의 반디의 문이 어둡게 닫힌 걸 보니 무언가 복잡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첫 번째로 산, [인간실격]이 떠오른다. 여전히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출판인으로서 살고 싶은 내 마음 때문일까? 나는 반디가 사라진 게 마치 공포탄처럼 느껴진다. 아빠의 말마따나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도 않고 쓸모도 없는 거 그런 거 하지 말라는 경고 말이다. 그나마 인터넷 서점의 영업이익이 의미 있게 성장 중이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사람들이 인터넷 서점에서 관심을 가지고 소비하는 책 리스트에 내가 낄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일을 더 해야 할까? 아니, 내가 작가라는 걸 잘 해낼 수가 있을까? 내 글을 써낼 수나 있을까? 아니 난 왜 스스로에게 확신과 타이틀을 부여하지 못할까?


얼마 전 대학원 면접에서는 왜 학부를 문예창작과에 가지 않고 광고홍보학과에 갔냐고, 창작의 기초를 배우지 않은 네가 잘 할 수 있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본과 산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학문이기에, 오히려 그것에서 소외되는 인간의 이야기를 더 잘 포착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사실 거짓말이었다. 문예창작과를 가지 않은 이유는, 내가 나의 글로 벌어 먹고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내면의 견제가 컸기 때문이었다. 교수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 물었다. 나는 덜덜 떨면서 답했다. 


처음 글을 꿈꿨던 청소년 시절부터 지금 여기에 있기까지 먼 길을 돌아온 거 같다고. 난 제도권 교육을 받아온 사람이 아니기에 오히려 나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고. 아직도 못 찾았고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거 같아 두렵지만, 그래도 믿고 있다고.

반디가 망한 것이 출판업계를 피하라는 공포탄이었든 아니든. 내게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나는 묵묵하고 꾸준하게 글을 읽고 쓰는 것뿐이 할 게 없다. 내 자신에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게 부끄럽고 오만하게 느껴졌던 적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작가는 직업이 아니고 정체성이라는 말을 새겨야 한다. 아빠의 회유도, 반디의 공포탄 총성에도 난 귀를 닫아야 할 거 같다. 


음 그냥 지금은, 내가 하고 싶었던, 재밌었던, 계획했던 것들을 하나씩 하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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