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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Jul 08. 2021

당신, 서울중앙지검 검사님이셨나요?

며칠 전 제게 전화 주셨잖아요. 그쵸?

요즘은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아야 한다고 하지만, 모르는 번호라도 중요한 연락이 올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 때문에 저는 당신 전화를 받고 말았습니다. 

웽 하는 기계음이 꽉 찬 상태에서 당신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제 이름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중앙지검인데 제 계좌가 명의도용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아니, 제 명의로 개설된 계좌가 범죄에 이용되었다는 뜻이었을까요?

암튼 명의도용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너무 놀라 저는 전화를 끊고 말았습니다.

공포감이 밀려와서 아예 발신자 차단도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한참 벌벌 떨었습니다. 

제 계좌가 범죄에 이용되었다니. 

입출금 상황이 딱딱 문자로 들어오는 것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는 제2, 제3의 계좌가 멋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인지. 

평생 한 계좌만으로 조용히 살아왔던 제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호흡을 가다듬으며 와플을 와구와구 씹었답니다.

달달한 커피도 한잔 했구요.    


  

하지만 말이죠.

아무리 급하셨어도 말이죠.

본인 휴대폰으로 전화하시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재택근무 중이셨어요?

아니면 외근 나가는 길에 ‘참, 명의도용된 가련한 피해자에게 전화해야 하는 걸 깜박했네’ 하셨던 건가요? 

암튼 심란한 마음에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이런 게 나오네요.     



지난 5월 매일경제신문에 보도된 ‘보이스피싱’ 사례입니다. 

"귀하의 계류 사건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통보함전자금융거래법 위반금융실명제법 위반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7부 박석용."

와, 박석용 검사는 실제 중앙지검 금융·기업범죄전담부(형사7부)의 부부장 검사랍니다.

이런 분 연락 받으면 정말 오줌이라도 지리겠어요. 

하지만 위의 내용이 들어 있는 문서 안에 역시나 사무실 번호가 아닌 휴대폰 번호가 딱~

아무리 4차 산업혁명 시대라도 공공기관인데 사무실 전화 한 대는 있어야죠. 

아쉽습니다.

아쉬워.     




사실 저는 서울중앙지검이 아니라

구청이나 주민센터라고 했으면 믿었을 거예요.

저 같은 소시민에겐 그게 더 현실감이 있으니까요.

주차 위반이라도 했나? 재활용품 잘 못 버렸나? 

그랬다면 적어도 2초 만에 끊는 무례는 범하지 않았을 텐데.

다만 구청이나 주민센터는 일반 시민에게 그리 위협적일 수 없고

주차 위반이나 재활용품 문제로 계좌 노출을 강요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겠죠.

아, 역시 비즈니스는 어렵고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군요. 

암튼 고민이 많으시겠습니다.     




제게 전화 주신 검사님, 혹은 서울중앙지검님(본인이 서울중앙지검이라고 하셨으니까요)

저는 이제 이 전화는 무서워서 쓰지 않을 것이니

다시는 전화 주지 마세요.

덕분에 저는 달달구리 삼키느라 3킬로그램이나 더 쪘다구요!!!

이건 어떻게 배상하실 거예요? 네?    

일단 통화해서 제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알려주면 해결해주신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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