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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기작 Oct 18. 2018

연쇄살인마를 사랑한 여자들

하이브리스토필리아 증후군

1980년대 미국 LA와 샌프란시스코를 공포에 떨게 한 살인마, '리처드 라미레스'.


그는 밤에 외곽의 주택가를 배회하며 강도, 성폭행, 살인을 저질러 ‘나이트 스토커’라 불렸다. 그의 범행 대상은 아홉 살 어린아이에서부터 80대까지 다양했고, 수법은 매우 잔혹했다.

일가족을 모조리 살해하기도 했고, 자녀 앞에서 부모를 범하기도 했다. 때때로 살인을 저지른 후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도려내는 식으로 시체를 훼손했다. 

피해자의 몸과 집의 벽면에 사탄의 상징인 펜타그램을 남긴 적도 있었다. *펜타그램: 오각성.


이렇게 13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한 뒤 1985년 체포된 라미레스. 스스로를 ‘사탄 숭배주의자’라고 칭했던 그의 악마성은 사람들을 압도했다. 예컨대 재판 당시 배심원 중 한 명이 (그와 전혀 상관없는 사건으로 살해당해) 참석하지 못했는데, 그러자 다른 배심원이 극도의 공포감을 느껴 재판 도중 집으로 가는 일이 생겼다. 라미레스가 법정에 총기류를 몰래 반입하려 한다는 소문까지 돌아, 법정에서 금속 탐지가 시행되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무시무시한 존재가 된 리처드 라미레스는 1989년 13건의 살인, 5건의 살인 미수, 11건의 성폭력, 14건의 강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그의 범죄 행각과 악질적인 모습만큼 사람들을 놀랍게 만든 일은 또 있었다.


바로 이 끔찍한 살인마에게 엄청난 수의 팬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라미레스에 반한 여자들은 법정에 몰려가 그에게 지지를 보냈고, 팬레터를 전하기도 했다. 심지어 팬이었던 ‘도린 리오이’란 여성은 1985년부터 75통의 팬레터를 줄곧 보냈고, 결국 1996년그와 결혼식까지 올렸다. 그녀는 사형이 확정된 라미레스를 향해, “그의 형이 집행 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둘은 라미레스가 림프종 합병증으로 죽기 몇 달 전, 헤어졌다.) 



사실 도린 리오이처럼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 성적 끌림이나 흥분을 느끼며 추종하는 사례는 의외로 많다. 

1970년대 30명 이상의 사람들을 죽인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도 체포된 후, 여성 팬들의 애정 공세에 시달렸다. 그 역시 팬과 결혼까지 했다. 35명을 살해한 집단 맨슨 패밀리의 두목 '찰스 맨슨' 또한 팬들의 지원을 받으며 감옥에서 책을 출판하고 음반 작업을 했다. 54세 연하 여성과 결혼을 올리려고도 했다. (이 여성은 맨슨의 사망 후 시신을 전시해 돈을 벌려던 속셈으로 결혼하고자 했기에 둘의 결혼이 성사되지는 않았다.)


해외에서는 이런 흉악범들에게 매료된 이들의 심리를 일종의 성도착증으로 분류하고, ‘하이브리스토필리아 증후군’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하이브리스토필리아 증후군이 있는 여성들은 왜 이렇게나 흉악범들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의 진단은 다양하다. 


1) “남자에게 학대받은 경험이 있는 여성은 평생 감옥에 있는 남자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이 주도권을 쥐었다고 생각한다.” - <살인자를 사랑하는 여자들>이란 책에서 이 증세를 보이는 여성들을 인터뷰한 실라 아이젠버그.

2) “어떤 이들은 흉악범이 받을 영화나 책 속의 스포트라이트를 같이 받고자 희망한다.”- 캐서린 램슬랜드 데솔스 대학 범죄심리학 교수.

3) ”이들은 연쇄살인마가 가장 강한 남성이며, 그의 곁에 있으면 그가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심리학자 레온 F 셀처.

4) “일부는 종종 상대에게 범죄를 저지르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다른 이에게 폭력을 가한다는 생각에 흥분하기 때문이다.” - 네덜란드 심리학자 존 머니.


이런 진단 중 무엇이 맞든 간에, 범죄자들을 옹호하는 팬덤은 범죄를 미화하고 부추길 수 있다. 따라서 흉악범을 지지하고 동조하는 일은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하이브리스토필리아 증후군’.

누군가가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친구를 빼앗아간 범죄자를 찬양하는 이 일은 범죄 그 자체만큼 무서운 현상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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