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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기작 Oct 18. 2018

고어 영화는 왜 생겨났을까

사지 절단을 그리는 고어 영화의 탄생 배경

1989년 7월 23일, 일본 열도를 경악에 빠트린 한 살인마가 체포됩니다. 그의 이름은 ‘미야자키 츠토무’. 그는 네 명의 아동을 유괴하고 성적으로 유린한 뒤 살해했습니다. 식인을 했단 혐의도 있었죠. 살인마의 잔혹한 범죄 행각에 많은 사람이 그를 규탄했습니다. 동시에 이 사건의 발단에 그의 취미생활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집엔 약 5000개의 애니메이션 테이프와 만화책 등이 있었는데요. 이 가운데 <기니어 피그>라는 비디오 영화가 발견되자, 사람들은 이 작품이 그의 살해 욕망을 키운 것이라 본 것이죠. <기니어 피그>는 1980년대 일본에서 제작된 공포 시리즈물로, 살인마들이 사람을 납치해 벌이는 온갖 잔혹한 행위가 담긴 ‘고어영화’입니다. 비디오에 담긴 혐오스러운 장면들을 연쇄 살인마가 즐겨봤다는 이유로 인해, 기니어 피그는 발매가 중단되었습니다. 비디오 점들도 이 작품을 전량 폐기 처분했죠.




이처럼 논란이 된 고어영화는 신체를 자르고 장기를 외부로 드러내어 전율을 만드는 작품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고어(gore): 흘린 피, 피범벅.

예컨대 앞서 이야기한 기니어 피그 시리즈처럼, 안구를 훼손하거나 사지를 절단하는 상황을 주요테마로 삼고 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영화가 고어물에 속하죠. 그렇다면 고어 영화는 왜 만들어지기 시작했을까요?


그 탄생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서 20세기 초반 미국 영화계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920년대부터 미국에서 영화는 거대한 산업이 되었는데요. 특히 대형 스튜디오들이 영화의 제작에서부터 극장 배급까지 영화산업 전반을 통제했습니다. 1929년엔 5대 메이저가 미국 영화의 90% 이상을 제작하는 독점 구조가 형성됐죠. 게다가 이 당시 스튜디오들은 공장식 시스템을 도입해 영화를 대량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작 영화와 더불어, 자신들 극장의 빈 상영관에서 내놓을 수 있는 B급 영화를 다량으로 만들어냈죠.


이 같이 스튜디오가 영화산업을 주도했던 구조는 1940년대 후반부터 쇠퇴했습니다. 1949년 미국 대법원이 메이저 스튜디오의 극장 소유를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이들이 독점체제를 구축해 영화 생태계를 저해하고 있다고 본 것이죠. 이로 인해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마음 편히 영화를 제작할 수 없었습니다. 극장들이 상영해 줄 경쟁력 있는 대작 영화를 만들어야 했죠. 그리하여 B급 영화의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이렇게 B급 영화 제작의 공백이 생기자, 군소 스튜디오들이 이 공백을 채웠습니다. 이들은 유치하면서도 자극적인 이야기로 관객들을 모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1952년 미국 대법원이 영화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판결을 내리자 검열은 보다 약해졌습니다. B급 영화들은 보다 노골적으로 섹스와 같은 소재를 담아낼 수 있었죠. B급 영화를 둘러싼 호재에서 흥행작들이 연달아 탄생하자, 그 동안의 작품과는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요구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고어영화의 효시인 허셸 고든 루이스 감독의 <피의 향연(1963)>입니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많은 고어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고어물은 주류 문화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장르가 되었죠. 이처럼 탄생한 고어 영화는 다른 상위 장르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론 공포영화입니다. ‘고어물=공포영화’ 공식이 있을 정도죠. 이는 신체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파괴되는 비현실적인 장면이 사실적으로 표현되며 본능적인 두려움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고어 영화가 그 표현 방식이 공포를 야기한다고 해서 호러 장르에만 국한되는 건 아닙니다. 전쟁과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도 극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고어물의 방식을 빌리기도 하죠.


이렇듯 유혈이 낭자한 인체가 생생히 묘사되는 고어 영화는 다양한 비판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이는 고어영화가 살인과 같이 현실적으로 찍어서는 안 되는 광경을 찍고, 끔찍한 행위를 지나치게 클로즈업하며, 별다른 스토리도 없이 잔혹함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혹자는 고어물의 이러한 특성이 보는 이의 폭력성과 파괴 본능을 자극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죠. 미야자키 츠토무 사건 후 기니어 피그가 전량 파기된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물론 이 주장에 대해 ‘잔인한 장면을 보고 살인충동을 느낀다는 건 너무 단편적인 시각이라는 입장도 존재합니다. 또한 이 장르의 마니아들은 고어영화의 농도 짙은 표현이 오히려 잔혹함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고, 말초본능을 자극해 더 큰 차원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극한의 전율을 선사한다는 찬사와 가학적인 장면으로 범죄를 불러일으킨단 논란이 함께 하는 고어영화. 고어영화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참고 문헌>

- 검열, 잔혹 영화, 할리우드, <영화사전>, propaganda, 2004

- 배상준(2015), 『장르영화』, 커뮤니케이션북스

- 스티븐 제이 슈나이더(2005),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 정지인(역), 마로니에북스

- 슬래셔, 고어, 오컬트.. 호러 영화도 여러가지?, <네이버 스페셜 리포트>, 2009.07.28

- 신강호(2013), 『할리우드 영화』,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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