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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기작 Oct 18. 2018

끔찍한 변태 성욕 영화를 만든 이유?

파졸리니 감독이 <살로, 소돔 120일>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것.


1944년 이탈리아 살로 공화국에 공작, 주교, 판사, 징세 청부인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매춘부들과 군인을 시켜 어린 소년, 소녀를 외딴 건물로 납치했죠. 이들이 모여서 하는 일은 자신들의 성적 만족감을 위해 남녀에게 자행하는 고문과 학대. 쾌락을 얻기 위해 권력자들이 저지르는 만행은 정도를 지나칩니다. 이들은 소년, 소녀를 강간하고 배설물을 먹이며, 살인을 하는 것에까지 이르죠.


앞선 내용은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1975년 영화 <살로, 소돔의 120일>의 대략적인 줄거리입니다. 이 영화는 선정성과 노골성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화면에 범람하는 강간, 고문, 살육 등으로 인해,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아직까지 상영이 금지되고 있기도 하죠. 또한 이 작품을 본 이들도 온갖 역겨운 장면을 여과 없이 표현한 감독을 향해 아낌없는 ‘혹평’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외설’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살로, 소돔의 120>. 감독은 이런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우선 제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목상 ‘살로’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 세워진 살로 공화국을 칭하는 표현인데요. 20세기 초 이탈리아는 무솔리니라는 인물이 이끄는 파시스트 당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 파시스트는 국가와 자 민족의 발전을, 개인이나 타 민족의 번영보다 우선하는 이들이 모여 구성한 집단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파시스트들은 폭력과 불평등이란 두 가지 기본 원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권력을 독점한 소수의 엘리트가 전체의 발전을 저해할 여지가 있는 개인을 통제했고, 다른 국가나 인종을 열등한 존재로 규정해 침략을 자행했죠. 


이러한 배경에서, 무솔리니 독재 체제 하의 이탈리아는 동맹국인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성과를 거두자 1940년 참전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패배를 거듭하던 끝에 결국 이탈리아 본토를 연합국에 내주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무솔리니는 파시스트 당의 측근들에 의해 총리의 자리에서 해임됐죠. 해임 후엔 유배도 됩니다. 무솔리니는 이대로 물러났을까요?


아닙니다. 유배된 무솔리니를 구출하고자 독일이 나섰습니다. 이탈리아가 연합군의 편으로 돌아서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출된 무솔리니는 독일의 지원을 바탕으로 북이탈리아 지방에 살로 공화국을 세웠습니다. 이 정부는 패망 전까지 지속됐습니다. 즉 <살로, 소돔의 120일>에서 살로란, 무솔리니 최후의 근거지였던 곳이자 폭압을 거리낌 없이 행하는 권력자들의 공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영화에 등장하는 4명의 권력자인 공작, 주교, 판사, 징세 청부인 역시 당대 무솔리니를 비호했던 대표적인 파시스트들이자 지배 계급입니다. 이처럼 영화는 파티스트를 겨냥하고자 만들어졌습니다.


그럼 감독은 왜 하필 파시스트들의 폭압을 변태적인 광경을 통해 풀어낸 것일까요?


아마도 파졸리니 감독은 영화의 원작인 <소돔의 120일>이란 작품 속에서 인물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몸짓이, 파시스트들의 속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원작 소설을 쓴 사람은 ‘마르키스 드 사드’로, ‘사디즘’이란 용어의 유래가 된 인물인데요. 사디즘이라는 건, 타인을 학대하며 그가 받는 고통을 보고 성적 쾌락을 얻는 일종의 변태 성욕입니다. 이는 사드가 소설을 통해 창조한 ‘소돔’을 연상케 하는 변태 성욕자들의 세계와 실제로도 쾌락을 좇으며 가학적인 성행위를 즐겼던 그의 일생에서 파생된 말이죠. (소돔: 성경 속에서 부패와 성적인 타락을 상징하는 공간)

                                                                 

혹자는 사디즘이, 정치의 극단성과 맞닿아 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권력을 차지한 이와 그에 의해 통치 받는 이가 필히 존재하는 ‘정치적 관계’에서, 힘이 남용될 때 초래되는 결과가 죄의식 없이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고 그의 쾌락마저 온전히 소유해버리는 ‘사디즘’의 본질과 유사하다고 본 결과죠.


감독이 이러한 관점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희생자들을 능욕하는 영화 속 엽기적인 행각은 포르노의 일환이 아닌. 다른 나라에 독가스를 살포하고 자국민을 살인하는 파시스트의 제약 없는 만행을 고발하기 위한 장치가 됩니다.


물론 <살로, 소돔의 120일>로 감독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됐는지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낀 바가 다를 테니까요. 다만 유럽에 부상한 극단적 인종주의, 이러한 파시스트의 잔재가 남아있는 현실을 통해 느껴지는 바가 있습니다.


파졸리니 감독이 그려낸 인간성이 타락한 공간, 살로가 우리와 전혀 동떨어진 세계가 아님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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