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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Oct 04. 2023

꽃핀 난과 할머니 장

나비란 꽃!

키우고 있는 나비란에서 꽃이 핀다. 오늘 핀 꽃은 내일이면 정확하게 지고, 내일은 또 새로운 꽃이 핀다. 꽃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자리에서 별안간 흰 꽃이 피어 나와 방긋 웃고 있다. 난이 피워내는 꽃을 볼 때마다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외할머니께서 요양병원에 들어가시기 전 2~3년 정도, 거실에 있는 나무에 꽃이 피었다. 10년 이상 꽃이 핀 적이 없는 나무에서 꽃이 피다니, 그것도 난도 아니고 나무였는데, 이건 정말로 신기한 일이었다. 할머니가 요술을 부리신 거라 해도 믿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외할머니의 정성이 대단하시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내가 관심을 보이면 할머니의 얘기가 길어질까 봐 외면했다. 그때는 그랬었다.


그즈음에 나는 외할머니와 되도록 대화를 피했었다. 흔히 나쁜 치매라 말하던 그런 상태이셨던 외할머니는 자꾸만 화를 내고 욕을 했다. 한 번 욕을 시작하면 그게 한 시간씩 이어지기 일쑤였다. 함께 잘 저녁을 먹고 나서 별안간 욕을 시작하시니, 나는 에어팟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설거지를 했다. 식사량도 줄고 잘 걷지도 못하시는 분에게서 어떤 에너지가 발동하기에 저런 분노의 목소리가 나오나 궁금할 정도였다. 나에게는 주로 당신의 딸인 엄마 욕을 했는데,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내게 전화를 하셔서 저녁 준비할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엄마가 안 들어온다고, 가정주부가 정신이 나갔다고 욕을 하셨다. 나는 할머니의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진짜 급한 일이 생겨서 할머니께서 전화를 하시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하면서도 당장 내가 살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외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까지 화초 담당은 할아버지셨다. 내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곳은 8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대형 아파트라 베란다가 넓었다. 요즘 지어지는 신축 아파트와는 달리 남향과 북향이 전부 베란다로, 그것도 아주 넓은 베란다로 둘러싸여 있었다. 북향 베란다는 할머니께서 직접 담그신 간장, 된장, 메주 등을 놔두셨고, 남향 베란다는 외할아버지께서 각종 난과 나무들을 키우고 계셨다. 그래서 북향 베란다는 냄새나는 곳이었고 남향 베란다는 향기가 나는 곳이었다. 할아버지의 난들은 매년 번갈아 꽃을 피워댔다. 그래서 난에서 꽃이 피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때만 해도 할아버지의 생신이라던가 하는 이벤트가 생기면 그렇게 집으로 난과 화분이 배달되었다. 난들은 외할아버지의 지나간 권세를 뽐내며 베란다를 가득 차지하고 있었고, 외할아버지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시기라도 하듯 정성껏 돌보셨다. 매일 아침 물을 주셨고 이파리들을 닦아주셨다.


외할머니께서 쓰시던 장롱과 장식장, 그리고 할머니가 경대라 부르시던 화장대를 내 집으로 가지고 왔다. 혼자 사는 작은 집에 어울리지도 않는 것을 꾸역꾸역 들여왔다. 외할아버지께서 가장 잘 나가시던 시절 장만한 장인이 만든 고가구들이다. 큰 집 안방에 놓는 가구를 혼자 사는 방 두 개짜리 작은 집에, 그것도 미니멀리즘 인테리어로 최소한으로 놓고 사는 집에 넣어놨으니 그 꼴이 우습고, 사실은 궁상맞다. 이렇게 작은 방에 놓일만한 가구들은 아닌데……


나는 외할머니께서 그 장롱을 관리하시는 것을 보고 자랐다. 외할머니의 안방은 우리 집에서 가장 햇빛이 잘 드는 정남향이었지만 항상 차르르 커튼이 드리워져있었다. 강한 햇빛에 옻칠을 한 나무 색이 변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귤을 먹으면 귤껍질 잘 모아 말려두셨는데, 귤피 삶은 물을 손주들이 썼던 아기 거즈에 묻혀, 장식 하나하나에 낀 먼지를 세세히 닦기 위해서였다. 도자기들은 그 가치에 걸맞지 않게 잡동사니가 가득 담겨있었다. 영수증, 짜장면집 이쑤시개통, 안경 닦는 천, 손톱깎기 같은 것들 말이다. 그 장면 장면들이 전부 기억난다.


외할머니와 초등학생인 나는 저녁을 먹고 나면 갤러리아 백화점에 갔다. 우리 집에서 두 블록 정도 떨어져 있으니 할머니 걸음으로 대략 15분 정도를 걸으면 백화점에 갈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저녁 그렇게 산보를 다녔다. 그중에서도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4층이었던가 5층이었던가에 있던 가구, 인테리어 코너가 우리의 단골이었는데, 그곳에서 주로 유럽의 식기나 장식품을 구경했다. 그렇게 할머니의 눈에 드는 것들을 하나씩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로열 알버트, 로열 달튼, 앤슬리, 웨지우드 같은 영국 도자기 브랜드의 도자기 꽃 장식품과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 강아지, 고양이, 오리, 펭귄, 쥐, 곰 등의 동물 장식들. 그래서일까, 이것들은 내 돈으로 산 것도 아니고 내 의지로 산 것도 아닌데 내 것 같다.


작고 섬세한 장식품은 쉽게 깨진다. 먼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하는 부지런한 가사 도우미가 닦다가 깨뜨린 것이 반, 한차례 이사를 하면서 깨진 것이 반이다. 귀퉁이가 나간 것, 모서리가 깎인 것들을 추리고 나니 멀쩡한 것이 거의 없다. 어떤 아름다운 것들은 몇 세대를 지속하기도 하던데, 우리 할머니가 선택한 아름다움은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게다가 외할머니의 딸들은 아무도 할머니가 남긴 것을 원하지 않았다. 외할머니의 손녀는 그걸 전부 가져왔다. 이걸 놔 버리면 할머니와 보낸 어린 시절이 영영 사라질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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