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위선과 거짓을 동반하고 욕정은 언제나 배반을 숨기고 시작된다. 동화책 헨젤과 그레텔에서 계모가 들어와 자신의 욕망 때문에 자기 자식이 아닌 아이를 숲에 버리는 것이 인간의 본성 중에 하나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런 본성을 우리는 가끔 잊어버리거나 나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하고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동화 속 인간의 속성을 드러내는 일은 더욱더 많다 최근에 본 덴마크 & 스웨덴 영화 [퀸 오브 하츠]는 우리를 동화 같은 숲으로 끌고 가 옛날 옛적 이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한 번 들어보고 동화 속 이야기와 비교해보라고 종용한다.
청소년 전문 변호사 안느는 쌍둥이 딸들과 의사인 남편과 재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느 날 남편과 전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 구스타브가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집으로 들어와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아가게 된다.
남들이 보기에 완벽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안느는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새로 온 남편의 아들 구스타브는 계속 사고를 쳐 안느를 힘들게 한다. 그러던 중 구스타브가 여자 친구를 집으로 데려와 관계를 맺는 장면을 본다. 그때부터 안느는 구스타프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어느 날 구스타브는 집에 있는 물건을 훔치게 된다. 이 사건을 눈감아 주는 대신 착한 아들이 되어달라고 안느는 부탁한다. 그러는 사이 안느와 구스타브는 가까워진다. 안느는 새롭게 솟아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구스타브와 위험한 관계를 맺는다. 가끔 구스타브는 새엄마와 친아버지와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못 견뎌하며 더욱 안느에게 위험하게 다가온다.
이 사실을 안느의 여동생이 알게 되면서 그들의 위험한 놀이는 안느가 먼저 끝낸다. 하지만 구스타브는 친아빠한테 이 이야기를 한다. 안느는 절대 그런 일 없다면서 자신을 못 믿는 남편에게 오히려 화를 낸다. 구스타프는 기숙학교로 다시 쫓겨갔다. 어느 날 구스타브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왔다. 그러나 안느는 구스타프를 쫒아버린다.
북유럽 울창한 숲의 나무들이 한 바퀴 회전하면서 시작되는 화면은 경고의 메시지처럼 경계심을 일으킨다. 아름다운 숲은 너무나 많은 비밀을 품게 된다. 새엄마와 아들이 몰래 불륜 관계를 맺는 장면과 아들 구스타프가 얼어 죽는 아픔까지 숲이 고스란히 다 지켜봐야 한다. 인간의 못된 짓을 다 품고 있다. 중간중간에 화면을 꽉 채우는 나무는 마치 '네가 한 짓을 다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듯 화면에서 주인공처럼 서있다. 봄부터 겨울까지 아우르는 풍경들은 인간을 악하게 볼 수 없는 장치로도 작용한다.
안느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쉽게 구스타브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오히려 자신을 조롱한다고 상황을 반대로 이끌어간다. 구스타브에게 안느는 위선 덩어리 어른일 뿐이다. 안느는 다른 청소년을 변호하는 변호사로 훌륭한 활동 하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청소년인 의붓아들에 대해 거짓 증언들을 한다.
안느는 결국 산에서 얼어 죽은 구스타브의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비열함을 통탄한다. 남편에게 사실을 고백하려고 하는 순간 남편이 안느의 입을 틀어막는다. 듣고 싶지 않겠다는 행위다. 소름 돋는 장면이다. 현재 삶을 유지하기 위해 남편은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진실을 알고 나면 더 힘들기 때문에 이대로 살고자 하는 속마음이 보인다. 유유히 딸 둘과 남편과 안느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걸어간다. 그들의 뒷모습은 불편하게 평화롭다.
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아갈까? 그녀가 불행한 유년시절을 살았기 때문에 안느는 두 딸들에게 행복한 삶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 엄마였다. 남편의 아들에게 마음의 죄를 지었는데 행복할까? 어떤 식으로 든 그 대가가 돌아갈 것이다.
안느 역을 맡은 덴마크 배우 트린 디어홈의 절제된 연기와 불안스러운 그녀의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녀의 연기 힘이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유약하지만 반항적이면서 애정을 갈구하는 젊은 청년으로서 구스타브 린드 연기도 훌륭했다. 음악은 계속 불안과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영화는 끝이 났는데도 안느가 짊어지고 갈 죄의식이 무겁게 우리 관객을 누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