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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진 은영 May 24. 2020

삶의 무게를 누가 좀 덜어주세요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 리뷰


''가족은 누가 보지 않으면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다.''라고 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그만큼 부담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야 하는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가족과 마찰이 있을 때  절망하거나 한 번쯤  가족을 벗어나 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없이 살아야 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짓을 수도 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우리도 가끔  어디론가 떠나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하지 않는가!  여기 '가족을 거추장스럽지만  자기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백팩'이라고 말하는 청년이 있다.  영화 보는 내내 그의 어깨 위에  짊어진 짐이  무거웠던 영화다. 그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였을까.

스웨덴 감독 라할 할스트롬의 두 번째 작품 <길버트 그레이프>는 미국의 신예작가 피터 헤지스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길버트 그레이프는 단순한 일상을 그리는 듯하지만 생활의 미학과 대형 쇼핑몰들이 들어오던 70년대 사회를  길버트 그레이프의  가족에게 투영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배우 조니 뎁은 듬직한 시골 소년의 역할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길버트에게 새로운 인생을 보여주는 베키 역으로 줄리엣 루이스는 이 작품으로 영화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누구보다도 큰 수혜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다. 그는 순진하고 어리숙한 정신박약아 연기를  훌륭하게 해서 단역배우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작품은 대량소비사회로 접어들면서 혼란을 겪는 미국 70년대 사회를 보여주기 위해   문제가 있는 가족을 끌어온다.  길버트는 인구 1,091명이 사는 아이오아주의 작은 마을 엔도라에서  작은 가게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실패하여 지하실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그 당시에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음을 보여준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폭식증에 걸려 초고도 비만이 되어 움직이지 못한다.

누나 에이미와 반항적인 여동생 엘렌, 그리고 지적장애인 동생 어니가 있다. 틈만 나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동생 어니때문에  항상 긴장해야 한다.  희망 없는 우울한 시골 마을에서 유일한 탈출구는 동네 유부녀와 섹스를  하는 것이다. 권태와 우울과 억울함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유스러운 아가씨 베키를 만나서 삶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영화 원제는 < What's eating  Gilbert Grape?>이다. 직역하면  <무엇이  그레이프를 먹는가>이다.  원제목이 보여주듯  과일의 뜻을 가진 이 이름은  자신의 단물을 쥐어짜며   살아가는 길버트의 마음을 의미하고  있다.  

아버지가 지은 집은 바닥은 이제  무너지기 시작한다. 나무토막으로  기대어 놓았지만 어머니가  움직일 때도 출렁인다.  어쩌면 지하실은 아버지의 무덤 같은 곳이다. 지하세계는  가족의 슬픔 분노가 쌓여 있는 곳이다.

 어니는 나무 타는 것을 즐긴다. 어니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은  살고자 하는  욕망을   의미하기도 하고 지하실에서 자살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잊으려는  몸짓이다.  이 영화에는 숨겨진 메타퍼들이 많다.

엔도 라라는 마음 이름은  판도라와 엔드라가 합쳐진 단어다.  판도라 상자에 남은 것은 희망뿐인데  그것조차 끝나버렸다는 뜻이다.  희망이 없는  마을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 하여   엔도라라고 부른다.  


길버트는  베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이 마을을  떠날 수가 없다.   길버트는 베키에게   말한다.

''난 새로운 것을 원해,  일단 새것이 필요해, 일단  새가구,  새집, 그리고  어머니가  에어로빅이라도  하셨으면  좋겠어,  엘런도  빨리 커야 하고, 어니의 뇌도  새것으로  바꿔주고 싶어.''

베키가 말합니다.  
''가족들 말고  너만을 위한 것 말이야.''

길버트는 끊임없이 가족에 대한 걱정이다. 하지만  베키는 말한다 '너만을 위한 것'을 말하라고..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자각해 가는  사이  아들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려는 듯 세상의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엄마의 시신을 옮기려면 크레인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엄마는 또 한 번 웃음거리가 된다.  이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 집에 불 지른다.  모두는 집을 버리고 각자 살아갈 곳을 찾아 떠난다.  길버트와  어니는 해마다 찾아오는  캠핑카를 기다리며  길에  서서 손을 흔든다.
이번에는  베키가 그들을 맞이하고  함께 떠난다.

그 당시 어렵게 살았던 길버트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 아버지처럼 자살을 했을까?  베키라는 친구가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 때문에 좀 더 나은 삶을 살았으리라.  그래도 그는 어니의 손을 잡고  희망을 찾아 떠난다.  혼자 떠나는 것보다는 아름답지 않은가.


#길버트 그레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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