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나이를 먹는다.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시간이 흐르듯, 1년의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나이도 한 살씩 늘어난다. 나이에 따라서 사람들을 어린이, 청소년, 청년, 중년, 장년, 노인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나이는 신체의 변화로도 나타난다. 나이가 들면 주름살도 생기고 근육도 줄어들고 젊을 때보다 신체기능도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가장 간단한 대답은 아마도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일 것이다. 인간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신체와 정신을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몸 또는 신체는 밖으로 보이는 데 비해, 마음 또는 정신은 겉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신체의 변화는 쉽게 알 수 있지만,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지는 잘 모른다.
특히, 중년 이후는 나이가 늘어나면 반대로 신체기능은 약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정신은 어떨까? 마음과 정신은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신체처럼 나이에 비례해서 약해질 수도 있고, 나이와 무관하게 오히려 더 좋아질 수도 있다. 인간의 마음과 정신이 가진 신비로움의 하나다.
사람의 몸과 마음, 신체와 정신은 밀접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어 엄밀하게 구분하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마음의 세계는 몸의 세계보다 훨씬 넓고 자유롭다. 몸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만, 마음은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다. 인간의 신체는 2미터도 안되지만, 마음은 하늘보다 넓고 그래서 마음은 소우주라고 하기도 한다.
마음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고, 가치있고 의미있는 수많은 것들을 창조해낼 수도 있다. 마음은 우리 인간만이 가진 보이지 않는 소중한 자산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내 몸 안의 특별한 생성엔진이다. 잘 훈련받으면 한없이 길러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샘이다.
과학기술만이 기술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도 우리 자신이 가진 신비한 기술이다. 마음은 끝없이 개발가능한 무한기술이다. 마음이 무한하기 때문에 마음기술도 무한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마음의 가능성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마음기술이야말로 인공지능(AI)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간만이 가진 미지의 기술영역이 될 수 있다.
사무엘 울만이 78세에 쓴 <청춘>이라는 시의 시작과 끝부분을 보면 나이와 마음의 관계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 나타나 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 그대는 여든 살이라도 늘 푸른 청춘이네!’
미치 엘봄이 쓴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78세의 노교수 모리가 제자에게 건네는 나이에 관한 대화도 나이와 마음의 관계를 얘기해준다. ‘사실, 내 안에는 모든 나이가 다 있네. 난 3살이기도 하고, 5살이기도 하고, 37살이기도 하고, 50살이기도 해. 그 세월들을 다 거쳐왔으니까. ...... 어떤 나이든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라구! 지금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이가 다 내 안에 있어. 이해가 되나?’
사무엘 울만과 모리 교수가 한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몸은 나이를 먹어도 마음에는 나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나이가 드는 것과 관계없이 정신과 마음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어떤 나이가 되었든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정신과 마음이 가진 힘을 마음껏 추구할 수 있다. 실제로도 우리가 가진 호기심, 동심, 창의성, 감성, 공감, 관심은 모두 마음 또는 정신과 관련된 것이고 우리를 젊게 만드는 마음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마음에는 나이가 없다. 지금 몇 살이든 신체는 나이를 먹어도 마음에는 나이가 없다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무장하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