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워니가 떠나고 나도 일을 시작한다. 어제 갔던 알라모아나파크를 다시 가기로 했다. 공원에서 책을 얼마 읽지 못하고 꼴깍 잠에 들었다. 대낮에 공원에 누워 꿀 같은 잠을 자는 일이 잦다. 각자 비치타월을 덮어쓴 채로 둥그렇게 몸을 말아 수건덩어리가 되었다. 오후 즈음 멍한 정신으로 일어나 허기짐을 느껴 살살 야드하우스로 향했다. 워니가 가는 마지막 날이니까 내가 쏜다,,, 해피아워로,,, 하와이는 해피아워가 잘 되어 있어서 적당한 시간에 가면 저렴하고도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다. 우리도 오늘 아주 기분 좋은 저녁을 먹었다. 맥주가 꼴깍꼴깍 잘도 넘어간다. 대낮에 마시는 맥주는 기분이 진짜 조크등요.
음식들 중에서도 워니는 치킨나초에 만족하고 나는 타다키에 너무 만족했다. 우리는 정말 식성조차 반대다. 나는 타다키와 고수의 조합에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왔는데 워니는 타다키에 젓가락도 대지 않는다. 그 대신 치킨나초에 감격했는데, 나는 치킨에 큰 관심이 없었다. 식성뿐만 아니라 활동성, 좋아하는 것도 모두 반대인 채로 우리는 하와이에서도 2주 내내 잘도 붙어있었다.
하와이에 도착한 첫날, 다른 비행기를 타고 온 우리는 공항에서 서로를 찾았었다. 입국심사를 하고 나오자 나를 찾고 있던 워니와 눈이 마주쳤고, 날씨가 너무 좋다며 서로 호들갑을 떨어댔다. 집에 도착한 우리는 짐을 하나둘씩 풀며 서로 챙겨 온 것들을 보여주기에 바빴다. 선크림, 돗자리, 모자.. 캐리어 옆에 퍼져 앉아서 하나씩 짐을 풀며 얘기를 한다. 오래 있을 예정이라 둘 다 유난스럽게도 챙겨 왔다. 나는 캐리어 두 개에 백팩 하나, 워니는 2주 간만 있을 거라 큰 캐리어 두 개. 이 많은 짐을 다 비워갈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도 하나하나 챙겨 온 짐을 언제 쓸지를 생각하며 설레었다.
둘 다 유난스럽게 많이 챙겨 왔지만 짐이 별로 겹치지 않았다. 워니의 짐은 내가 생각도 못한 것들로 가득했다. 샤워필터, 마사지 괄사, 헤어브러시, 색만 다른 우정캡모자, 바디로션, 가위 등. 내 평생에 여행 가면서도 한 번도 챙겨본 적 없던 것들로만 가득했다. 셀프케어와 뷰티에 특화되어 있었다. 한편 나는 그녀가 봤을 때 이렇게 다를 수가 없었다. 물티슈, 화상연고, 가스버너, 냄비, 비타민, 수저와 락앤락통까지. 나는 주방용품과 생활용품 측면에서 유난이었다. 막상 와 보니 캡모자는 쓴 적도 없고 물이 너무 깨끗해서 일주일이 넘도록 샤워필터에 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냄비와 수저는 숙소에 너무 많아서 왜 이고 지고 왔나 후회가 들고 비타민도 미국이 더 싸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영역에서 겹치지 않게 챙겨 온 짐들로 너무나도 잘 쓰고 있다. 그녀가 챙겨 온 바디로션이 까맣게 탄 피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내가 챙겨 온 물티슈가 없었다면 테이블은 매일 뭘로 닦았을 건지. 우리는 유난스러운 퍼즐조각처럼 잘 맞았다. 내가 아침에 서핑을 다녀올 때면 그녀는 쿨쿨 자고 있고 내가 서핑 후 피곤한 몸을 뉘어 낮잠을 자면 그녀는 씻고 활동을 시작한다. 물을 자주 마시는 그녀는 매일같이 물과 얼음을 떠 오고 내가 커피를 내린다. 그녀가 빨래를 해 오면 나는 앉아서 빨래를 갠다. 내가 요리를 하면 그녀는 설거지를 하고 그녀가 청소기를 돌리면 내가 세간살이를 정리한다. 우리는 이렇게나 서로 다르지만 어찌어찌 조각을 잘 끼워 맞추었다.
벌써 이렇게 반대인 친구로 지낸 지가 15년이 되었다. 지독히도 다르지만 지독히도 잘 맞는 우리. 이번 하와이 여행도 둘이라서 즐거웠다. 같이 잔디밭에 누워서 시시덕대고 방에서 침대에 누워서 그냥 얘기하던 것이 가장 그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