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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Jun 22. 2024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교수의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고

최근 나를 가장 고민하게 하는 질문은 단연 어디서 살 것인가. 빌라와 단독주택, 아파트를 두루 거쳐 살아오면서도 어떤 곳에서 살 것인가 결정하는 것은 어렵다. 어쩌면 다 똑같은 집이라서다. 이제 집들은 안 봐도 눈에 훤하다. 계속 집을 보다 보니 집만 봐도 몇년도 정도에 지어진 집인지를 알 수 있다. 20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거실베란다가 넓고 그보다 조금 후에 지어진 아파트는 베란다에 화단이 있다. 2010년 즈음 이후에는 20평대라도 화장실이 두 개다. 이렇게 도면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 기본적으로 그 집들은 모두 똑같이 생겼다. 아파트뿐만이 아니라 최근에 지어지는 주택들만 봐도 아파트의 도면도를 따라 짓는다. 우리 부모님이 짓고 계신 주택의 도면은 어느 아파트의 도면과 별다르지 않다. 우리의 삶의 수준은 올랐지만 집은 그대로다.


국민평형이라는 말이 있다. 전용면적 84제곱미터의 방 세 개 화장실 두 개. 말 그대로 국민 표준 평형이다. 국민학교 세대도 아닌데 그보다도 표준화된 국민평형에서 인생의 반 이상을 산다. 집의 내부가 똑같다 보니 집의 우위를 줄 세울 수 있다. 집의 연식과 집을 지은 브랜드, 집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에 따라서 집 가격이 늘어선다. 내부는 똑같아도 허허벌판에 있는 아파트와 한강 옆에 있는 아파트는 가격이 다르다. 그래서 더 아등바등 조금이라도 공원과 가깝고 주변에 볼 것이 있는 위치의 집을 원한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보는 집들은 기껏해야 앞동 아니면 도로뷰다. 부동산에 대고 공원을 말하니 아파트 단지 내를 걸으면 된다 하고 뷰를 말하니 서울에서는 그런 거 찾으면 안 되죠- 한다. 20억을 호가하는 한강변 혹은 올림픽공원변 집을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런 여가시설은 사치다.


똑같은 구조에 똑같은 앞동을 보는 집임에도 그런 집에 살고 싶어 하는 것이 삭막하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이상이 반쯤 허무맹랑하게 읽혔다. 나지막하게 대지와 접하는 면이 많은 집, 공원과 상권에 쉽게 닿는 곳. 살고 싶지만 선뜻 나는 그런 곳에 집을 고르지 못한다. 그나마도 그런 집은 지어지지도 않는다. 아파트는 화폐다. 사람들은 아파트의 가치를 높여 자산을 증축한다. 반면 주택은 가치가 아파트처럼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없어 수요가 적다. 근본적으로 줄 세우기가 사라지려면 다양해져야 한다는 필자의 말에 동의한다. 그럼에도 다양하려면 가치의 줄 세우기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사치인, 잃을 것을 각오해야 하는 주택시장이 되어버렸다.


집을 구하기 전 어디서 살 것인가를 생각했을 땐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생각했다. 나의 여가시간과 강아지와 함께하는 시간을. 볕을 잔뜩 받고 일어나는 이른 아침, 강아지와 산책으로 시작하는 하루, 자전거를 타고 조깅하는 저녁. 우리는 가까이 있는 것을 쉬이 하게 되니까 이런 삶을 쉬이 할 수 있도록 걸을 곳과 풀을 가까이 두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런 라이프스타일은 서울에서는 사치라는 것을 깨닫는다. 필자가 선진사례로 들고 있는 뉴욕의 경우는 집은 코딱지만 한 대신 집 외부로 시설이 확장된다. 집 외부의 공원으로, 거리의 벤치로 집이 연결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아파트 내부에서 해결한다. 강아지와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하고 아파트 상가 혹은 주변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 주변에 시설이 없어서 사유화된 시설을 만들고, 그 시설을 그들만 사용한다. 집을 보러 갈 때 최근 지어진 집들은 옹성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단한 담장벽으로 둘러싸인 입주민들만의 성에 허락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그곳의 놀이터는 그 아파트 아이들만 사용할 수 있다.




몇 달 전 서울시에는 야심 차게 용산국제업무지구를 발표했다. 무려 20년 전부터 미뤄져 왔던 프로젝트를 오세훈 시장이 다시 시작한다. '공중도시'의 테마로 용산역부터 한강변까지 걸을 수 있는 업무지구를 만든다. 강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마천루의 조감도는 흡사 홍콩 혹은 상하이의 야경 같다. 또 다른 잠실이 생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랜드마크는 서울을 홍보하기에는 좋을지라도 내 삶에 더하기가 되지는 않을 거다. 내가 살고 싶은 도시는 구역 구역 꽁꽁 싸매어진 곳이 아니다. 향유하고 싶은 일상을 줄 수 있는 도시를 바란다. 언제든지 걸을 수 있는 한강공원이나 양재천 같은 곳이 가까이 있고 이 동네와 저 동네가 다른 볼거리가 있는 도시다. 서울이 우리에게 그런 문화를 줄 수 있다면 용산국제업무지구보다도 더 좋은 홍보가 되지 않을까?


집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 우리의 소득 수준은 몇십 배 늘어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70년대의 획일화된 집과 공간에 거주한다. 집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고 나면 집 밖은 또 다른 아파트만 즐비하다. 각자 소유한 공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도시가 지금의 서울이다. 열린 공간을 공유하는 도시가 되었으면 한다. 서울에서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아직 찾지 못했다. 공원이 있으면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주변에 상권이 있으면 산책할 공간이 없다. 조만간 숨어있는 조그마한 공원이 있고 볕이 막힘 없이 들어오는 창이 있는 집을 찾기를 바라며 손품발품을 팔아보리다.





질문 1. 본인이 살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에서 중요한 가치나 행동 세 가지 뽑기


질문 2. 우리 집은 위 라이프스타일 중 어떤 부분을 충족시켜 주는지?


질문 3. 주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말해보자. 거창하게 나의 인생공간까지는 아니라도 그냥 내가 좋아하는 공간,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질문 4.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의 집을 얘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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