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의 하얼빈을 읽고, 발제문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영웅이란 남다른 용기와 재능, 지혜로 보통 사람들이 해내지 못하는 것을 해내어 대중들에게 추앙을 받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안중근은 누가 봐도 영웅이다. 그는 남다른 용기와 재능으로 남들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을 나라를 위해 해냈다. 영웅의 치명적인 단점은, 자기가 가진 것들에 리스크를 걸게 된다는 점이다. 그는 이 일을 계획할 때 이미 목숨을 버렸다. TV 속 슈퍼히어로이든 마약범을 잡은 택시기사님이든, 목숨을 거는 점은 같다.
가끔 화재를 진압하다 목숨을 잃은 소방관을 추앙하는 기사를 보면 그들의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들은 그 순간에 가족이나 친구들이나 본인의 안위보다 더 큰 것 - 다른 사람의 목숨, 나라의 안위 등- 을 위해 두 번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리스크는 두 번 생각해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중근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역사적 영웅이지만 그의 거사동안 혹은 바람 같던 그의 일평생동안 가족들은 그림자 같았다. 남편의 부재중에 두 번의 출산을 해야만 했던 김아려와 아버지를 거의 보지 못하고 자란 자식들. 내 관심을 더 끈 것은 그들이었다.
연해주로 무작정 불려 간 후의 그들의 삶은 비참했다. 한동안 지낼 곳 없이 밥을 빌어먹었다. 첫째 아들 안분도는 연해주로 온 1년 뒤인 7살 때 과자를 먹고 죽었는데 일본 밀정의 소행이라 의심된다. 둘째 안준생은 일자리를 구하기만 하면 일본의 훼방으로 30살이 넘도록 무직이었다. 할머니 조마리아와 어머니 김아려와 안준생, 안현생에게 가난보다도 더한 불안과 함께 살았다. 상해에 살았지만 언제든 일제의 감시 아래에 있었다.
이후 그는 박문사에서 이토히로부미의 아들에게 사죄한다.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고 '호부견자'(호랑이처럼 뛰어난 아버지 밑에 강아지같이 못난 자식)이라는 말을 들으며 일본 곳곳을 순회하며 사과 퍼포먼스를 한다. 그의 누나도 동일하게 사과를 하고 다녔다. 어머니는 돌아온 그들에게 고생했다며 안아주었다. 이후 그들의 삶은 나아졌다. 결혼을 했고 그때 받은 상금으로 약국을 차렸다(혹은 헤로인 장사를 했다는 말도 있다). 이로 큰돈을 벌었고 그의 아들은 미국에서 의사가 되어 여유롭게 산다.
"그럼 나더러 어쩌란 말입니까? 그 자리에서 제안을 거절하고 잡혀 죽어야 했나요? 영웅 아버지처럼 위대하고 영광스럽게? 왜 나는 내 삶을 선택할 기회도 없이 이런 운명에 던져야만 하죠?"
지금 우리의 삶에서는 일상의 작은 행복들과 억울하지 않은 기회와 가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내 삶의 주도권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안중근 의사의 가족의 케이스가 조금 더 특별한 걸까 싶기도 하지만, 난세의 영웅의 가족들이 잘 먹고 잘 사는 때는 오로지 영웅이 살아있을 때뿐이다. 우리 사회에 영웅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는 영웅이 적절하게 보상받는 것을 보지 못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들의 행동에 존중을 표하면서도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내 가족은 독립운동가가 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을 것 같다.
질문 1. 영웅의 정의에 공감하는지, 영웅이라는 개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새드 엔딩인 경우가 많은 이유는) 내 삶의 목적이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라는 거예요. 왜냐. 내가 잘 먹고 잘살려면 남의 것 뜯어먹고 남 괴롭히고, 이런 거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영웅이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거죠. 그리고 (보통사람들) 보다 숭고한 목적과, 숭고한 삶을 추구한다는 거예요. (중략) 그래서 진짜 영웅은 죽어서 신으로 추앙받아요. 남들이 결코 가지 못 하는 길을 가기 때문에.
임용한. 토크멘터리 전쟁사 132부 전설의 전쟁 中 22:50부터.
질문 2. 만약 과거의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독립운동에 가담하거나 내 가족들이 가담하는 것을 찬성할 수 있을까?
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의 자녀 인터뷰 중
안 여사는 “집안에 한 사람이 독립운동하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의사 할아버지와 함께 형제들과 사촌들이 다 같이 거들어서 독립운동을 하셨어요. 그분 의거 이후, 일제의 핍박과 감시로 고향 황해도에서는 살 수 없어서 자손들이 미국 등지로 다 흩어졌고요. 제대로 집안을 꾸리지 못했어요.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고초가 심했어요. 의사 할아버지의 직계 자손들은 한국 사는 자손들이 거의 없어요”라며 후손들의 피할 수 없었던 고초에 대해 말했다. “우리 삼촌 한 분도 누가 잠깐 만나자 했는데 이후 소식 없고 막내 삼촌도 중국 간다고 한 이후 연락이 끊기는 등 말없이 잡혀가서 돌아오지 않는 분들도 많았고 행방불명된 후손도 많았어요”... “선조들의 독립운동 활동들이 그전에는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힘들었어요. 의사 할아버지와 조부, 아버지도 모두 그렇게 돌아가셔서 눈물이 나곤 했지요. 이렇게 조명을 받는 것도 최근의 일이지만 선열의 명예를 늘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질문 3.
혹자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암살이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를 더 빨리 불러오는 트리거가 되었다고 평한다. 이토가 암살되면서 강경파들의 목소리에 실어주는 단단한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토는 천천히 조선을 삼키는 쪽 즉 온건파였다.) 어떤 일/선택을 하든 그것 자체보다는 이후에 어떻게 처리하냐에 따라 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는 것을 느낀다. 이토가 암살당했을 때 조선이 이를 틈타 일본을 밀어낼 수 있는 힘을 길렀다면, 지도자가 있었다면 또 다른 평가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가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결과에 상관없이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영웅적이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