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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주 Sep 16. 2021

땋은 머리에 관하여


문득 그 표정이 생각난다. 미용사는 아니지만 타인의 머리카락에 한없이 몰두하는 표정. 나는 자라는 내내 단발이라, 주로 머리를 땋아주는 사람의 표정을 목격하곤 했다.   


어린 시절에는 언니가 당연하다는 듯 빗과 머리끈을 들고 엄마 무릎 앞에 앉으면, 엄마는 뭐라 말할 것도 없이 긴 빗을 거꾸로 쥔 채 얇고 뾰족한 손잡이로 가르마를 타기 시작했다. 가끔 외마디 비명이 있기는 했지만 1-2분 후에는 종일 잔머리 하나 빠지지 않는 언니의 디스코 머리가 완성되었다. 매번 등을 손바닥으로 탁, 치고 나면 언니는 벌떡 일어나고, 엄마는 그 자리에 남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훔치는 식으로 이 의례는 끝이 났다. 


그때 엄마 표정이 어땠더라. 매일 미사에서 밀떡을 허공에 대고,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를 공무원처럼 읊조리는 신부님 같기도 했는데…. 누군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은 매우 친밀하고 성스러워 보이지만, 머리를 땋는 일은 또 너무나 일상적이고 기능적이니까.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반에 하나씩 땋은 머리 기술자 친구가 있었다. 중단발을 소유한 친구는 가끔 이런 기술자에게 찾아가 머리를 맡기곤 했다. 머리를 땋는 내내 우리는 주변에 둘러 앉아 함께 떠들었는데, 그 시절 소녀들의 소란스러운 대화와 격렬한 리액션 속에서도 오직 기술자 친구만 말 없이 분명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에 몰두했었다. 이상하게도 머리가 완성되면 마치 깜빡 잊고 있던 머리 장식을 발견한 듯 우리는 다같이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사실 한국에서 여자들에게 머리 땋기란 대단한 기술을 필요로하지는 않는다. 누군가 내게도 긴 머리를 맡긴다면 레게나 복서 헤어가 아닌 이상 원하는 굵기로 머리를 땋을 수 있다. 무심한 표정이지만 당기지도 헐겁지도 않으려는 세심한 손가락으로. 어쩌면 한국의 여성들은 긴 머리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에서 땋기의 기술이 새겨져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성들의 땋은 머리를 보면 그의 뒤에서 고개를 살짝 틀고 진지하게 뒷머리를 살펴보는 또 다른 여성이 연상된다. 이렇게 서로의 머리를 안전하게 땋아주며, 단단한 매듭으로 연결되는 장면이 그려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업이 아니더라도 끝내고나면 타인의 뒷모습이 괜히 뿌듯해지는 일이기도 하다. 남의 머리 땋아주기는. 


메두사는 탐스러운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었다고 한다. 여성이 그리스로마신화를 기술했다면, 관능적인 뱀의 머리카락을 가진 괴물이 아니라 촘촘하게 머리를 땋아 묶은 활력의 요정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제인 진 카이젠, ‹땋기와 고치기›, 2020, 2 채널 비디오 설치, 4K, 흑백, 사운드, 6 분 3 초, 반복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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