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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일 Apr 26. 2024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걷는 마음

오랜만에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지난가을, 이란성쌍둥이 남매를 출산한 친구는 열심히 육아 중이다. 친구와 친구의 아이들을 만나기 좋은 날이 언제일지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다. 서로 사는 곳이 가까웠더라면 벌써 왕래하였을 테지만 우리는 대중교통으로 두 시간 거리에 떨어져 산다.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동안 겨울은 무사히 흘러갔고, 지나온 시간에 대한 보상처럼 연둣빛 봄은 벅찬 환희를 안겨주고 있는 요즘. 친구의 집을 다녀오기 좋은 때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50분, 지하철로는 한 시간을 더 가야 갈 수 있는 그곳은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있다. 친구의 집에서 내가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두어 시간 정도. 기다리고 갈아타는 시간까지 왕복 네 시간은 잡아야겠지만 오고 가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이들은 새 봄의 나뭇잎처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을 터였다.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그 신비롭고 찬연한 장면을 두 눈에 담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제 막 엄마의 삶을 시작한 친구가 그리웠다.  



친구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소나기가 내리던 날, 우리는 합정역의 어느 브런치 카페에서 만난 후 헤어졌다. 비가 그치고, 카페를 나와 역까지 함께 걷던 골목길은 습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청량한 공기가 가득해 걷기 좋았다. 나는 친구와 더 걷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제 헤어지면 출산과 신생아 육아로 한동안 만나지 못할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내 눈에 띈 건 친구의 부른 배보다도 샌들 위로 부어오른, 그녀의 두 발이었다. 이곳까지 나를 만나러 나온 것만으로도 친구의 몸엔 무리가 간 것이 분명했다. 더 이상 걷자고 말할 수 없었다. 카페 안에서 한참 수다 떨 동안에도 나는 친구가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우리는 대학 시절 한 방에서 잠깐 하숙을 했다. 원래 친구가 혼자 지내던 방이었다. 나는 졸업 전, 한 학기만 하숙을 하고 싶어 했고 그런 내게 친구는 자신의 공간을 나누어 준 것이다. 하숙집 아주머니의 허락 아래 방 값을 반반씩 내고 우리는 몇 개월을 함께 지냈다. 방 안에는 싱글 침대가 하나 있었다. 친구가 자던 자리였다. 내가 하숙집에서 함께한 첫날, 그녀는 자신이 쓰던 침대를 주저 없이 내주었다. 자신은 바닥에서 자도 편하다면서. 가끔씩 서로의 옷이 마음에 들면 바꿔 입기도 하고, 졸린 눈 비벼가며 서로의 과제를 새벽까지 도와주고, 밤낮없이 붙어 다니며 비슷한 꿈을 펼쳐가던 이십 대 초반의 우리. 브런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을 땐 그때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버린 뒤였기에 오히려 친구의 현실이 와닿지 않았다. 갈색 가죽 샌들 사이로 붉게 부어오른 친구의 발을 내려다보며 그제야 엄마가 된다는 것의 무게를 가늠했다. 가녀린 몸에 생명을 품고서 천천히,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나가던 친구의 뒷모습이 동안 잊히지 않았다.



꼬박 시간이 지나서야 친구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쌍둥이 남매가 함께하는 보금자리에 당도했다. 친구의 신혼집은 두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일에 최적화된 모습으로 놀랍게 변신해 있었다. 아기들 다치지 않게 세면대는 푹신한 쿠션 테두리를 둘러놓았고, 기저귀 갈이대는 욕실 바로 옆. 기저귀와 가제 수건, 각종 보습제가 착착 정돈되어 있었다. 처음 본 자동 분유 제조기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깨끗이 소독된 젖병들은 얼마나 든든해 보이던지. 아기 체육관과 국민 애벌레 인형, 알록달록 소서 두 개가 놓여있는 거실은 내가 지나온 시간을 다시 추억하게 했다. 아기들 눈부실까 봐 식탁 위 조명은 흰 천으로 감싸놓은 모습에는 감탄이 나왔다. 쌍둥이를 키우는 일은 두 배가 아니라, 열 배쯤 힘들다는 말을 들었는데. 한 번에 두 명을, 육아가 처음인 친구가 어떻게 키울까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는데. 이토록 똑똑하고 야무지게 해내고 있을 줄이야.



두 아이는 낮잠 중이어서 집 안은 더없이 안온하고 고요했다. 아이들이 자는 동안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회포를 풀었다. 못 본 사이 쌓아 올려진 서로의 일상과 감정을 나누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지만. 헐렁한 셔츠와 츄리닝 바지를 입은 채 온 시간과 마음을 아이들에게 쏟고 있는 친구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지면서도 동시에 벅차오름을 느꼈다. 친구는 아이들이 참 예쁘다고, 그 예쁨을 순간순간 느끼며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내게는 '행복하다'는 단어로 번역되었다. 아이들이 커가며 엄마로서 겪어나갈 일들은 겹겹이 쌓여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밝고 씩씩한 친구는 '기쁨'과 '즐거움'같은 긍정 카드를 힘차게 꺼내 들며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지하철 안에서 노선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색색의 서로 다른 노선들이 서로 교차하기도, 평행하기도, 서울 외곽으로 제각각 뻗어나가 있기도 한 모습이 우리의 삶과 닮아 있었다. 친구와 이렇게 만나는 날들은 잘해야 일 년에 한두 번. 그 나머지 날들은 서로 교차하는 일 없이 각자의 삶을 걸어 나갈 것이다. 규칙적으로 놓인 역마다 빠짐없이 정차했다가 이내 다음 역으로 출발하는 열차처럼 자기 앞에 놓인 생에 성실하면서. 삶은 앞을 향해 전진하는 한편, 무언가를 뒤에 남겨둔다. 우주 너머로 소멸한 시간은 내 안에서 다시 별이 된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는 이름을 가진 별. 한참의 시간이 또 흐른 뒤, 친구와 나는 그 반짝이고도 영원한 이야기들을 마주 앉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는 시계를 보지 않고 함께 걷고 싶다. 어디가 좋을까. 이왕이면 따스한 볕이 있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로수 아래나, 강가라면 좋겠다. 많은 날들을 살아낼수록 가볍고 자유로워진 마음을 한가득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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