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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일 Oct 09. 2024

따뜻하고 솔직하고 소중해

유년을 기억하는 말

하루 건너 하루 사이로 빨간 날이다. 어딜 가든 계절의 온화한 얼굴을 볼 수 있는 요즘, 나들이가 수월한 휴일이 반가웠다. 가까운 산을 오를까, 공원에 텐트를 칠까. 공휴일 오전. 행복한 궁리를 하고 있는데 큰 아이 휴대폰이 울린다.



"응, 알았어. 거기로 갈게."



친구와 짧고 굵은 대화 몇 마디를 주고받은 아이는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나갈 태세다. 친구들과 근처 성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서너 명이 모이는데 각자 용돈 만원 씩 챙겨 와서 맵기로 유명한 떡볶이를 함께 먹는단다. 만남을 주도한 아이 친구 목소리가 어찌나 씩씩한지 휴대폰 너머 내게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큰 아이의 외출은 이틀 뒤 공휴일에도 이어졌다. 열두 살 아이가 친구들과 논다는 건 자연스럽고 반길 일이지만 한편으론 허전하기도 했다. 큰 아이를 빼고 남편과 나, 작은 아이는 놀거리를 챙겨 근처 공원에 텐트를 쳤다. 큰 아이는 친구들과 헤어지면 공원으로 불러야겠다 생각하고서.



오후의 금빛 햇살이 커다란 구름 사이로 번졌다 사라졌다 반복했다. 공원 중앙 광장 너머로 텐트 자리를 보러 걸어가는데 멀리서 누가 부른다. "언니!" 큰 아이 친구 엄마였다.



"은호는 친구가 불러서 다른 데로 놀러 나갔어."

"응? 은호 저기서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그녀가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멀리 광장에서 큰 아이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있었다. 공을 차느라 열중한 모습을 보니 전화를 해도 받지 않을 듯했다. 아는 척 않고 아이를 지나쳤다. 두세 시간 후.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러 번 통화를 시도해도 아이는 묵묵부답. 여전히 노는 중인가 싶어 궁금하던 찰나. 공원 인도로 큰 아이와 친구들이 우르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공원 끝에 있는 놀이터로 가는 모양이었다.



몇 시간 만에 내 눈앞에 나타난 아이가 반가워 "은호야, 은호야!" 목청껏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아이는 내 목소리도, 내 모습도 얼른 알아채지 못했다. 한 번 부르면 들릴만한 위치에 나와 아빠, 동생이 나란히 서 있었음에도 말이다.



곁에 있던 남편의 2차 시도. 공원이 울릴 만큼 큰 소리로 아이 이름을 불렀다. 그래도 아이는 알아듣지 못했다. 시선은 자기 곁의 친구들에게만 향해있고 무슨 대화를 하는지 낄낄대며 웃는 표정의 아이.  



아아,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친구에게만 팔려있는 정신이여. 외출 후 전화 한 번 안 받고 몇 번을 외쳐도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던 아이가 순간 야속했다. 다른 아이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남편과 내가 몇 번 더 큰 소리를 내지르자 그때서야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져 고개를 돌렸다.  






나는 언제부터였을까. 부모에게만 머물던 시선이 또래 친구에게로 옮겨진 때가. 나 역시 큰 아이와 비슷한 나이였을 땐 친구가 제일 우선순위였다. 그러니 엄마도 나와 비슷한 심정을 느꼈을까. 엄마만 찾던 아이가 친구와 시간 보내는 걸 즐기는 아이로 바뀌어가는 모습에 이상하고 먹먹한 기분이 들었을까.

  


최근 어릴 친구와 연락을 했다. 열한 살, 초등학교 4학년 만났으니 무려 삼십 년째 친구다. 사실 친구의 얼굴을 지는 십오 년도 넘었다. 그녀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고 년에 두어 카톡을 주고받는 우리가 소통하는 전부다. 그런데도 오랜만에 안부를 전할 때면 어제 것처럼 어색함이 없다는 신기하다.  



-너와의 기억은 다 따뜻하고 솔직하고 소중해.



그날도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친구가 대화 중에 이런 문장을 카톡에 올렸다. 나와의 기억을 따뜻하고 솔직하고 소중하다는 한 문장으로 표현해 준 친구가 멋졌다. 뾰족한 곳 없이 둥글려진, 친구의 뭉툭한 말에 아련해졌다. 오랜 기억의 뭉치를 삼십 년의 시간이 깎고 다듬어 딱 한 문장으로 남긴 듯했다.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매일같이 함께 보낸 친구였다. 편한 사이니 말도 가리지 않았고 어떤 표정도 숨길 수 없었다. 그래서 가끔은 오해가 쌓이기도, 서로 토라지기도 했는데. 이제는 선명한 기억보다 지워진 기억이 더 많다.



내게 유년의 기억이란 밤하늘의 별 같다. 이제는 정확한 형체가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 작은 빛 같다. 그러나 언제나 제자리에 있는 빛. 영원한 별이다. 친구의 문장 안에서 그때, 그 시절이 영영 사라진 게 아니라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부모에게서 친구에게로. 시선이 바뀐 아이도 사실 새로운 눈을 뜬 것임을 알았다. 우정이란 게 얼마나 좋은지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것일 테다. 아이의 유년 시절도 진실하고 좋은 친구와 함께이기를. 먼 훗날 유년의 기억을 별처럼 품고 사는 어른이 되기를. 따뜻하고 솔직하고 소중한 기억들로 아이의 밤하늘이 총총 빛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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