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할 수 있다

머리띠에 새긴 응원의 말

by 혜일

"엄마, 우리 집에 흰색 천이 있어?" 저녁 설거지 중이던 내게 작은 아이가 쪼르르 다가와 묻는다.



"그게 왜 필요한데?"

"머리에 쓸 띠를 만들고 싶어서."

"무슨 띠?"

"왜 사람들이 '할 수 있다'라고 글씨 쓴 다음에 머리에 띠를 두르잖아."



그런 모습을 어디서 보았는지 의아했지만 아이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천은 없지. 대신 두루마리 휴지에 사인펜으로 글씨 써서 만들면 되지 않을까?"



설거지를 하느라 나의 시선은 쌓여있던 빈 그릇에만 향했고 생각나는 대로 아이에게 말했다. 마침 남편이 퇴근을 했고 아이는 아빠에게 같은 이야기를 건넸다. 아이의 말을 들은 남편은 곧바로 두루마리 휴지로 머리띠를 만들어주었나보다.



잠시 후, 같은 자세로 설거지를 하던 내 앞에 정말 하얀 머리띠를 두른 아이가 나타났다. 머리띠 위에는 사인펜으로 '할 수 있다!!'라고, 느낌표가 두 개나 붙은 문장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아하하. 나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렸다. 하필 지난주부터 쓰기 시작한 검은테 동글이 안경까지. 아이의 앳되고 작은 얼굴은 큰 시험을 앞둔 어른처럼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이가 머리띠를 두를 만큼 의지를 보인 건 바로 수학 공부였다. 4학년 2학기에 접어들자 아이는 학교 수학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집에서 예습을 한 적도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게다가 자기 반에는 벌써 중학교 1학년 수학을 배우는 친구도 있다고 했다. 경쟁심이 발동한 것인지,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것인지 아이는 스스로 결단한 듯 보였다.



공부 목표가 생긴 첫날, 아이는 수학 공식과 개념 원리가 쓰인 시리즈 책을 읽어나갔다.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 수학까지의 내용을 담은 책인데 로그니, 방정식이니 아직 자기에게 어려운 내용들을 말한다. 아무래도 아이가 너무 멀리 나간 것 같았다. 속으로 저러다 말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가족 중 제일 일찍 일어난 아이는 휴지 머리띠를 두른 채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공부는 아침 일찍 해야 잘되네!"



내 곁을 지나며 아이는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7시에 일어나 수학 문제집 두 장을 풀었다며. 이제 막 잠에서 깨어 몽롱한 나는 '이 녀석, 갑자기 웬일이야?' 싶다가 이내 아이가 부러워진다. 얼굴빛이 말갛고 두 눈빛은 또렷한 것이 아이의 표정은 이전엔 모르던 세상의 비밀 하나를 깨우친 듯 보였다. 그런 얼굴을 마주 대하며 나는 아이에게 계속 잘해보라고, 응원의 멘트를 날려줘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웬일인지 응원은 내가 받은 기분이었다. 엄마도 할 수 있다고. 일단 해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고 말이다.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 두 개의 상반된 문장이 오늘도 내 안에서 팽팽한 전쟁을 치른다.



며칠 째 눈이 부쩍 쑤시고 아팠다. 눈을 아끼지 못하고 컴퓨터나 휴대폰 화면을 밤낮없이 쳐다본 결과였다. 나이테처럼 인간의 나이도 육체의 어딘가엔 정직하게 새겨진다는 걸 몸소 알아간다. 몸이 쇠잔해지는 것을 느낄 때면 어쩔 수 없이 우울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 보자 계획하다가도 이내 '제대로 할 수 있을까?'싶어 주저하고 망설인다. 오랜 시간 꿈을 품고 살아왔음에도 과거와 현실 속에 나 자신을 종종 가둬버리곤 한다. 어제만 해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던 일을, 연약해진 오늘의 나는 '할 수 없다'라고 다른 사람이 된 듯 말한다.



안약을 넣고 눈을 쉬게 했다. 눈의 피로도가 높아지는 일은 당분간 할 수 없다. 대신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생각하기, 선선해진 저녁 바람을 맞으며 걷기, 남편과 아이들 얼굴 제대로 바라보기, 어제보다 조금 더 길고 깊이 대화하기. 이런 일들은 할 수 있다. 무언가 할 수 없다는 벽에 부딪혀 헤맬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벽 앞에서 너무 오래 주저앉아있진 말자고 다짐했다. 그렇기에 거꾸로 '할 수 있는' 일들도 분명히, 가까이에 있다고.



아이의 요란한 공부 의식은 며칠 째 이어지고 있다. 아침뿐만 아니라 오후에도 '할 수 있다' 머리띠는 유용하게 쓰였다. 책상 앞에 앉은 아이는 겸허한 자세로 일단 머리띠부터 두른다. 그리고는 아침에 풀었던 수학 문제집을 다시 펼쳐 풀기 시작했다. 아이가 없을 때 살짝 문제집을 들춰보았다. 개념이 설명된 곳이나 문제를 푼 곳 옆에는 '이해'라고 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씨가 자주 보였다.



제법인데. 이제는 하얀 머리띠를 두른 아이가 기특하고 대견해서 웃음이 난다. 아이는 나름의 방식을 찾아 어렵게 느껴지던 수학 공부를 정말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머리띠 효과일까. 적어도 분명해진 건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한 낮은 기온이 높지만 가을은 벌써 찾아왔다. 여름 내내 신던 샌들 대신 운동화를 신고 밖을 나섰다. 피부에 닿는 밤공기가 서늘했다. 주변은 어두웠지만 진초록 나무에 자줏빛 꽃망울들이 환하게 보였다. 배롱나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솟았다. 소소할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로 하루를 채워가보자고. 날마다 꽃송이를 더해가는 배롱나무처럼. '할 수 있다'라고 내 마음에도 하얀 띠를 두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저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