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연 Mar 17. 2020

코로나 너는 대체...

얘들아 이모는 멘탈이 약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들의 일상을 집어삼킨 지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확진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며 일상적으로 누리던 것들이 더 이상은 일상이 아니게 되었다. 내 일상도 예외는 아니다. 카페에 편하게 가기 어려워졌고, 꼭 필요한 외출이 아니면 집 밖으로 나가는 행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집순이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답답하다. 여러 자잘한 불편들이 발생했지만 코로나가 우리 집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단연 '개학 연기'.


 겨울방학 기간 동안 첫째 조카를 아침마다 초등학교 돌봄 교실에 데려다주었다. 8시 반이 조금 넘어서 일어나면 아이는 학교 갈 준비를 끝내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외투를 챙겨 입고 집에서 3분 거리의 학교로 아이를 바래다주면 집에서 놀고 있는 백수의 첫 번째 미션은 클리어다. 집으로 돌아오면 모자란 잠을 자거나 집안 청소를 하곤 했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아있으니 카페에 가거나, 사람들을 만나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했다. 아이들이 돌봄 교실과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오후 6시. 나는 미리 준비해둔 저녁식사를 챙기거나 아이들과 목욕을 하기도 했다. 언니가 퇴근하는 시간까지만 내가 아이들을 케어하면 되고, 이마저도 개학을 하면 언니가 챙기게 되는 일이니 끝이 정해져 있는 보모 역할을 나는 그리 큰 부담감 없이 해낼 수 있었다.


 그런데 개학을 앞두고 코로나의 전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아이가 학교에 나간 지 3일 만에 임시 휴교령이 떨어졌다. 처음에는 봄방학을 일주일 정도 앞당긴 정도로 생각하자며 아이와 나를 달랬다. 응 괜찮겠지... 했지만 대단히 큰 착각이었다. 아이는 개학식 없이 새 학기를 맞이했다. 선생님의 이름은 알지만 얼굴은 모른 채 2학년이 되었고, 아직 교실에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엄마가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두 아이 모두 긴급 돌봄을 신청해서 돌봄 교실에 나갔다. 방학 때는 꽤 많은 아이들이 돌봄 교실에 왔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한 휴교령 이후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언니는 직장에 다니고 있고 나도 잠깐씩 일을 하러 나가기도 했으니 종일 아이들만 집에 둘 수 없었다. 그래도 돌봄 교실에 있다가 검도학원에 가는 게 학기 중 일상과 비슷하니 아이들은 그리 힘들어하지 않고 생활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다른 친구들은 오지 않는 돌봄 교실에 매일 가는 걸 조금 지루해했지만 이제는 집에 있을래? 물으면 돌봄 교실에 가는 게 그나마 덜 심심하다고 대답하는 지경이 되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자 학교뿐 아니라 학원들도 휴업에 들어갔다. 아이들의 검도장과 내가 주말마다 수업을 듣는 아카데미 두 곳 모두 수업일정이 연기되었다. 활동성이 남다른 우리 집 아이들은 검도장에서 뛰어놀며 체력을 적당히 소모하고 와야 저녁시간이 무난하게 흘러가는데 종일 실내에 있다가 곧장 집으로 오니 둘의 에너지를 내가 혼자 감당하기가 점점 힘에 부치는 기분이었다. 검도장에 갈 때 보다 귀가시간이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나 앞당겨졌고, 나는 어린이집과 학교에 매일 아이들을 픽업하러 가야 했다. 언니가 퇴근할 때까지 짧게 두 시간, 길게는 세 시간 남짓 내가 오롯이 아이들을 돌봐야 했는데, 전업맘도 직장맘도 아닌 내가 이 정도로 힘들어해도 되나 하는 자조적인 질문만이 머릿속에 맴돌 뿐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놀아주다가 일곱 살, 아홉 살의 악의 없는 순수한 말에 때때로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중 둘째 아이는 내가 하자고 하는 건 뭐든 반대로 하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울며 떼를 썼다. 처음에는 곧잘 지내던 큰아이도 집에서 화를 거의 내지 않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듣는 일이 점점 늘어갔다. 그중에서도 아이가 고집을 부리는 포인트는 승부가 걸린 게임 같은 것이었다. 승부욕이 강한 첫째는 게임에 열중하다가 점점 꼼수를 쓰고 둘째는 그게 못마땅하고, 처음에는 둘이서 실랑이를 하다가 둘이 괜찮아지면 그 짜증이 내게로 왔다. 둘 다 목소리는 얼마나 큰지 떼를 쓰기 시작하면 머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나는 '그래 너네가 다 이겨라' 하다가도 어쩔 때는 잠깐씩 진심으로 삐지는 마음이 일었다. 


 이런 일들이 몇 번 반복되니 기분이 완전히 가라앉아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월요일이 되었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엄마가 올 때까지 씻지 않겠다고 해서 나는 강아지 먼저 씻기고 나도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 그랬더니 갑자기 첫째가 샤워를 하겠다고 한다. 아니 왜? 씻자고 씻자고 할 땐 자꾸 안 한다더니 왜...?

그 와중에 아이는 자기가 둘째와 같이 씻을 테니 이모는 그냥 신경 안 써도 된단다. 가끔 둘이서만 씻기도 하니 그럼 그러라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일이 평화롭게 진행될 리가 있나.

둘째가 가지고 놀던 슬라임이 죽죽 늘어나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설거지를 끝내고 말리던 중인 그릇들 위로 날아갔다. 물기가 남아있는 싱크와 그릇들 사이사이로 슬라임이 슬슬슬... 이쯤 되니 내 멘탈도 슬슬슬 흘러내리는 것 같다. 어금니를 깨물고 다시 설거지를 했다. 그 사이 두 아이는 옷을 모두 벗고 엉덩이춤 한판을 신나게 추고 있다. 큰아이는 바지에 슬라임이 묻었다며 깔깔거린다. 나는 이성의 끈이 잘 끊어진다. 엉덩이 춤을 왜 추니... 바지에 슬라임이 묻은 게 웃을 일이니... 놀리니...


 첫째는 먼저 욕실로 들어갔다. 감기 드니까 빨리 들어가라는 말을 열 번쯤 하니 둘째가 어기적어기적 대며 들어갔는데 둘이서 또 실랑이를 한다. 흥! 칫! 하는 소리들이 몇 번 오가더니 둘째는 물기 하나 없는 몸으로 다시 나와 내 방으로 들어와서 내 이불에 괜히 분풀이를 한다. 심신의 안정을 잠깐이나마 취해볼까 하는데 아이는 왜 차가운 맨발로 내 이불속에 들어와 애꿎은 내 다리를 자꾸만 미는 걸까. 그렇게 또 한 번 내 멘탈이 파스스 무너진다.

"아...즈에발 그믄흐르그..." 

목소리의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는지 아이는 그제야 조금 얌전해진다. 엄마가 올 때까지 씻지 않겠다고 해서 먼저 씻고 옷도 다 갈아입었는데 첫째 아이가 욕실에서 나오자 둘째는 내게 목욕을 시켜달란다.(왜 그래? 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무표정한 얼굴로 둘째 아이의 목욕을 끝내고 나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아버렸다. 그동안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내가 왕년에 얼마나 잘 삐졌는지 알면 너넨 나한테 이렇게 못할 거야.. 하하하...


 언니가 돌아왔고, 나는 침묵의 저녁식사를 끝내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우리 집에서 내가 방문을 완전히 닫으면 '제발 아무도 나와 내 개를 건들지 말아 줘' 하는 신호다. 언니는 내 상태를 눈치채고 아이들이 내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단속하며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삼십 분쯤 지나 둘째 아이가 조심히 문을 열더니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자기 이름과 '이모'가 나란히 쓰여있는 꽃밭이 그려진 그림을 주는 것으로 아이는 내게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고마워' 하고 짧게 답변했고, 아이는 들어올 때처럼 얌전히 방을 나갔다. 아이들이 잠들면 우리 집의 공식적인 하루가 마무리된다. 나는 아이들이 잠든 후에야 좀 집중해서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곤 하는데 어제는 내가 좀 너무하단 마음이 들어서 그랬는지 영 집중이 안되어서 시간만 허비하다 늦은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다시 아침이 밝아왔고, 첫째 아이는 내 배웅 없이 언니와 함께 조금 일찍 돌봄 교실에 갔다. 나는 아이들이 나가는 소리를 들었지만 몸을 일으키진 않았고 한 시간 정도 더 누워있다가 공적 마스크를 사러 약국에 잠깐 다녀왔다. 밥을 먹고, 알코올을 뿌려가며 집안을 닦고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정리했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 전 내가 매일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일과들만을 한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속보가 떴다. 휴교령 연장.

앞으로 일주일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엔 끝이 있다는 노래 가사를 곱씹으며 버티던 개학 연기가 또 미뤄졌다. 그것도 2주나! 직장맘도 전업맘도 아닌 백수 이모에게 개학 연기란 대체 뭘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장을 구하는 일도 여의치 않아지니 구직사이트를 봐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 백수로 얼마나 더 살라는 거죠? 일이 하기 싫은데 일이 하고 싶다고요 이제는. 




 오늘 아이들과 붙어있으면 아직 조금 덜 여문 내 멘탈이 다시 와르르 맨션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간식을 챙겨주고 카페로 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카페로 식당으로 모여든다. 어쩌면 나처럼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은 기분에 나오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주말에 올림픽공원에 가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집에만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그나마 탁 트인 야외로 아직 겨울옷을 입은 사람들이 몰린다. 일상에서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특별해지는 건 이렇게나 순식간이다.

그래도 끝이 보인다. 며칠 사이에 확진자 수가 확연히 줄었고, 완치자 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 여럿이 함께 웃고, 손을 잡고, 뛰고, 땀 흘리는 일상이 모두 정지된 이 시간도 언젠가는 순식간에 끝이 날 것이다. 조금만 더 다 같이 힘내고 나도 힘내고 우리 조카들도 힘내고 내 개도 힘내서 모두에게 이 시간이 탈 없이 지나가기를 바란다. 



옥상달빛 - 달리기

https://youtu.be/mgG6-fOWyDU



매거진의 이전글 꽃상여와 꽃버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