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재난 지원금 신청서를 작성하며 오랜만에 날짜를 썼다. 2020년.
맞다. 벌써 2020년을 3달이나 보내고도 일주일이 더 지났다. 그리고 이름을 바꾼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아직도 2020이란 숫자가, 바뀐 내 이름이 어색하고 내 것이 아닌 느낌이다.
오늘의 나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의 내 이름, 그러니까 안정된 울타리 안에서 편안하고 풍족하게 살 수 있다는 그 이름으로 나를 알고 있지만 왠지 나는 여전히 그건 나와는 먼 이야기인 것만 같다.
애사심이 넘쳤는지 너무 성실했는지 딸이 태어나는데도 숙직 근무를 하느라 와보지 않은 종태가 옥편을 뒤적여 지어 준 옛 이름은 이제 가족들과 오래된 친구 몇몇 만이 기억하고 있다.
타고난 팔자가 사납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뜻도 없고 사주와도 맞지 않은 그 이름 그대로 산다면 결혼도 못하고 빨리 죽는다고 해서 처음 들으면 다 예쁘다고 칭찬해주던 그 옛날의 이름을 버리고, 이름값 10만 원을 주고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대단히 드라마틱한 인생의 전환은 없을지라도 베베 꼬인 팔자를 조금은 풀어보고 싶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혹시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더 좋고 하면서. 결정이 어렵지 결정만 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2주 정도를 고민하다 서류를 준비해 법원에 개명신청을 했다. 1월에 개명신청을 해서 5월에 승인을 받아 법적으로 나는 새로운 이름을 갖고 살아가게 되었다.
이름을 바꾼 후로는 이상한 기대감 같은 게 계속 생겨서 동시에 실망을 하게 된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을 텐데 이름도 바꿨는데 어째 인생이 점점 더 꼬이는 것 같을 때는 마음도 같이 꼬여서 꽈배기가 되어버리는 기분이다. 180도 기름에 3분을 튀긴 노릇한 꽈배기. 요즘 내 상태가 딱 꼬인 꽈배기다.
"우리 집 꽈배기는 반죽이 좋아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해요. 설탕 발라 줄까요?"
3개에 2000원 하는 꽈배기를 받아 들고 어깆어깆 동네 여기저기를 걷다 보니 이 길에도 저 길에도 내 꼬인 팔자들이 식어서 질겨진 꽈배기 마냥 볼품없게 너부러져 있다. 윽 눈을 못 뜨겠네.
'아 이제 동네에서는 연애 비슷한 것도 하면 안 되겠구나. 집에 데려다 달라고도 하지 말고, 동네에서 산책도 하면 안 되고. 아니 왜 하필 나는 공원도 크고 카페도 많은 동네에 살아가지고는...'
이렇게나 허무하고도 큰 깨달음을 얻고 사거리 횡단보도에 섰는데 '뭘 그런 걸 갖고 또 울고 그래? 넌 울 일이 참 많아서 좋겠다!' 하던 엄마의 늙은 목소리가 환절기 찬바람처럼 스스스 지나간다. 아무한테나 그렇게 마음 주다가 네 팔자 니가 꼰다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던 매운 사람들의 서운하고도 무책임한 말들이 가슴팍을 콕콕 찌른다. 나처럼 잘 안 믿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하며 괜히 구시렁거려 본다.
아무것도 안 믿는다는 그 마음이 짠하고 그래서 왠지 미덥다는 그 마음을 믿지 않았다. 매번 잘 믿지를 못해서 매번 무언가 놓치고 마는 사람이 우습게도 새벽마다 오늘의 운세는 뭘 그리 열심히 정독을 하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속도 없고 염치도 없는 사람은 매일 밤 지나간 사람들의 이름만 우물거린다.
사실은 너무 믿어서 그랬지. 별 것 아닌 작은 것까지 너무 믿어서.
카더가든 - 꿈을 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