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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Apr 12. 2020

nobody

또다시 지독한 우울에 잡아먹혔다. 걸음걸음마다 음습한 기분이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불쾌하다. 당장이라도 떨쳐내고 싶은 그 기운이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처럼 내 발꿈치에 얄팍하고 구차하게 딸려온다.


성인이 되기까지 나는 꽤 자주 내 존재를 부정당해왔다. 태어날 때 그랬고 자라면서도 자주 그랬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천덕꾸러기,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매일 입을 꾹 다물고 티브이나 보는 뚱뚱한 애. 그게 내 아비가 내린 나의 정의였다. 뭔가 잘해보고 싶은 미세한 마음마저도 단숨에 매몰차게 꺾어버리는 자, 그 사람이 나의 아버지였다. 어떤 상황에 너무 오랫동안 노출되면 조금씩 그 상황에 무뎌지다가 나중에는 돌파할 의지마저 사라져 버린다고 하지 않나. 자아가 형성될 시기에 습관처럼 당한 존재 부정은 나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나는 정말 그의 말대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되어갔다. 사춘기가 없었지만 학교생활이 즐겁지 않았고, 크게 속 썩일 일을 만들지 않았지만 결코 내세울 것이 없는 그런 둘째 딸로.


23살. 그래도 내 앞가림하며 살아보겠다고 13시간의 주방 노동을 매일 견뎠으나 가족 버리고 혼자 살 길 찾는 나쁜 년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내 감정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 같은 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기가 겁이 나서 잠을 잘 자지 않았다. 기숙사용 복층 오피스텔에 사는 동안 그렇게 사흘을 버티다 간신히 잠이 든 날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듯 해 울면서 눈을 떴는데 눈 앞에 그의 얼굴이 있었다. 죽으라고, 역시 너 같은 년은 낳을 필요도 없었다며 눈을 부라리며 목을 졸랐다. 이후로 어떤 날은 낮은 천장의 네 모서리에서 그 얼굴이 날아와 눌렀고 어떤 날은 이불 속으로 들어와 내 배를 칼로 찌르며 웃었다.


쉬는 날에는 자전거를 타고 자주 탄천에 갔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는 잘 사는 동네를 가로질러 탄천으로 내려가면 건물에 가려진 곳 없이 탁 트인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을 보며 매번 드는 생각은 '살고 싶다'가 아니라 '빨리 죽고 싶다'였다.


기숙사에 살며 일주일에 하루를 쉬고 매일 13시간씩 주방에서 일을 했다. 내가 서울에 와서 일하는 것을 그가 알게 되고 1년이 지나자 사나흘에 한 번씩 그에게서 돈을 달라는 독촉 전화가 걸려왔다.

고시원과 기숙사에 살며 월급 120만 원을 받아 학자금 대출 갚으며 1여 년간 모은 돈이 600만 원 남짓이었고 그는 내게 그중 500만 원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20년간 먹이고 재워준 값으로 생각하라더니 나중에는 남동생 학교에 돈을 내지 못해서 졸업장을 못 받을거라고 했다. 학교에 전화를 해보니 밀린 학비가 100만 원이 넘었다. 학비를 덜 낸다고 졸업장을 안 줄 학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학교에 돈은 내는 게 맞았다.

그는 매일 밤 수화기 너머로 네 동생 고등학교 졸업장도 못 받은 애로 살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이기적으로 살라는 악담을 퍼부었다. 그즈음 차순은 병원에 입원을 해 있었다. 차순, 기름진 양볼에 용심을 가득 붙이고 내게 내 어미 욕을 서슴지 않고 하던 노인네까지 내 발목을 잡았다. 나는 차순의 병원비와 동생의 학비로 200만 원을 그에게 이체했다. 그가 그 돈을 정말 얼마나 유익하게 썼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고맙다 정도의 인사치레는 기대했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멍청했다. 그는 목적의식이 명확했고 돈을 받은 이후로 한동안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조그만 지역사회에 어찌 소문이 돌았는지 엄마가 그 소식을 듣고 길길이 날뛰었다. 이유는 '자기도 돈이 없어 죽겠는데 안 버리고 힘들게 키워놨더니 서울서 배부르고 등 따시게 살면서 즈 애비한테만 돈을 해줘서'였다. 어째서 분노의 화살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게로 향했을까. 어째서 그녀는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는 그런 서슬퍼런 칼날 같은 말들로 딸의 마음을 난도질할까.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어서 그리 다정했던 이가 괴물처럼 나를 갈기갈기 찢어놓을까 몇 날 며칠을 생각해보았다. 엄마의 인생이 너무 안타깝고 불쌍하지만 더 이상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100만 원을 보냈고, 전화번호를 바꾸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첫 번째는 아예 안 태어나는 선택을, 그게 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차례로 돈을 이체하는 나를 찾아가 정신 차리라고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다. 그런 다음 아무도 안아주지 않았던 나를 갈비뼈가 으스러지게 꽉 껴안아줘야겠지.


언젠가 나도 이 정도면 제법 잘 자란 어른이 되었다고 크게 착각한 적이 있었으나 역시는 역시라는 착각을 깨달을 때마다 내가 얼마나 하찮고 별 볼 일 없는 존재임을 세뇌시킨 젊었던 그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한 인간의 자아형성에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낮은 자존감이 사람을 얼마나 갉아먹고 비참하게 만드는지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나는 매번 더 아득하고 지독한 우울이 나를 집어삼키도록 내버려 둔다. 자꾸만 그릇된 선택으로 내 인생이 돌이킬 수 없이 꼬이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어설픈 연애가 끝이 나거나 시작조차 쉽지 않을 때마다. 난 진짜 왜 이렇게 바보같이 매번 병신 같은 결정만 할까, 진짜 멍청하구나 하며 스스로를 질책하게 된다.

어렵게 곁을 내어주고 누군가를 좋아했던 순수한 마음이 외로워서 생각 없이 아무나 만나는 걸로 치부될 때 내 얼굴에 그런 말을 내뱉는 상대를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까. 엉망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스스로도 지겨워 점점 무표정이 되는 자신을 느낄 때 어쩌면 아무 감정을 느끼지 않고 사는 게 지금보다는 나을지도 모를 거란 허무한 기대를 품게 된다.


유난히 일교차가 큰 봄이다. 앙상했던 가지에 새순들이 돋아나고 있다. 며칠 전 펼쳐 든 새 책의 첫 장에는 이 봄에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다정해지자는 작가의 인사말이 적혀있었다. 모두가 기다리던 이 봄이 이제 정말로 오고 있는데 나는 아직 지독한 겨울을 벗어나지 못해 눈보라 속에서 헤매는 기분이다. 매일 밤 아무것도 오지 않고 아무것도 보낼 수 없는 메신저를 수도 없이 열었다 닫는다. 보지도 않을 티브이를 음소거로 틀어놓고 지나간 사람들의 지난 사진들을 뒤적이며 시간과 나를 함께 죽이고 있다.

그리고 시시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으나 어느 누구보다 특출 나게 시시해져 버린 사람의 기분을 상상해본다.


영화 소공녀


선우정아 - 도망가자

https://youtu.be/fNrhdZwh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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