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저녁꽃 Mar 16. 2024

엘에이 심청가

유미선을 위하여

엘에이 심청가


라스베가스 가는 길

차 안에서 호텔 캘리포니아며 모란이 피기까지를 따라 흥얼거리다

지난해 구례 어느 민박집 주인이 부른 심청가 중 ‘따라간다’ 대목을 듣게 되었다.


구성진 그 목소리에 빠져들어 창 밖을 보고 있노라니

30여 년 전 김포공항 출국장 풍경이 떠올랐다.


‘사철가’로 잠시 목을 푼 뒤


<아니리>

미선이 일어서며 “출국시간이 늦어가니 어서 건나 가것네다” 하직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친정식구들은 말리고 부친은 뛰고 우니 미선은 하릴없어 동네 어른들께 부친을 의탁허고 길을 떠나는디


<중모리>

따라간다 따라간다

남편을 따라간다

끌리는 초마자락을

거듬 거듬 거더안고

피같이 흐르난 눈물

옷깃에 모두 다 사무쳤네


엎더지며 넘어지며 천방지축

따라갈제 건너마을 바라보며

황진사댁 작은 아가

작년 오월 5.18 전야제의

걸개그림 그리고 노던 일을

니가 행여 잊었느냐 금년 칠월 칠석야의

함께 걸교(乞巧) 하잤더니 이제는 하릴없다

상침질 수 놓기를 뉠과 함께 허랴느냐


너희는 양친이 구존허니 모시고 잘 있거라

나는 오날 우리 부친 슬하를 떠나

남편 있는 LA로 가는 길이로다

동네 남녀노소 없이 눈이 붓게

모다 울고 하날님이 아옵신지


백일은 어데 가고 음운이 자욱하여

청산도 찡그난 듯 초목도 눈물짓듯

휘늘어져 곱든 꽃이 이울고저 빛을 잃고

춘조난 다정허여 백반제송(百般啼送) 허는 중에

묻노라 저 꾀꼬리 뉘를 이별 허였간디

환우성(喚友聲) 지어 울고 뜻밖의 두견이난

귀촉도 귀촉도 불여귀不如歸라

가지 우에 앉어 울것마는

남편 따라 가는 몸이 내가 어이 돌아오리


LA공항 당도허니 광풍이 일어나며

해당화 한송이가 떨어져 미선 얼골에 부딪치니

꽃을 들고 허는 말이 약도춘풍(若道春風)

불해의(不解意)면 하인취송 낙화래(何因吹送落花來)라

한 무제 수양 공주 매화장(梅花粧)은 있건마는

남편 따라 가는 몸이 언제 다시 돌아가리


오고 싶어 오랴마는 수원수구(誰怨誰咎) 어이허리

걷넌 줄을 모르고

울며 불며 입국심사 끝내고 톰브래들리 게이트로 나오니

성운 차문을 열어 놓고

미선을 다소곳이 인도 허는구나



차는 어느새 라스베가스 이정표를 앞두고

성질 급한 사람들이 찾는다는 라스보가스를 지나 환락의 도시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래 샌프란시스코 101번도로에 핀 쌍무지개처럼

누가 먼저 손을 내밀었던 무슨 상관이랴

힘들었지만 아이 낳아 잘 키우고 밥 세끼 먹을 만하니 그만 아니던가


솔뱅에서 폭우 속 앞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맨 앞에 가면서도 위안이 되는 것은

함께 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고

내 후미등을 보고 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것은 순서 없는 한 권의 무서록이며

저마다 그때그때 좋은 몫을 선택하며 사는 것이니까.



*걸교: 음력 칠월 칠석날 저녁에 부녀자들이 견우와 직녀 별에게 바느질과 길쌈을 잘하게 해달라고 빌던 일

*백반제송: 온갖 것들이 모두 울며 떠나 보냄

*환우성: 짝을 그리워하며 우는 소리

*불여귀: 돌아가지 못함

*약도춘풍 불해의: 만약 봄바람이 내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하인취송 낙화래: 무슨 연유로 지는 꽃을 불어서 보냈을까

*매화장: 조선시대 부인들이 멋을 내기 위해 이마에 매화를 붙이는 것

*수원수구: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탓하랴



작가의 이전글 수국선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