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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저녁꽃 Jul 08. 2024

천왕성에 묻다

천왕성에 묻다


타고난 운명을 믿지 못하겠다면 천왕성을 보라

정해진 길을 걷지 못하고 역성을 꿈꾼 자

모두 거기 영하 224도에 밀봉돼 있다


자전축이 98도나 황도에 기울어진 채

공전 방향과 수직으로 자전하는 역행의 별

천왕성 북반구는 하루가 84년이다


그곳에서 나는 너를 기다리며

42년의 낮 동안 편지를 쓰고

그만큼의 어둠 속에서 당신의 답장을 기다렸다


30년 전 지구에서 출발해 꼬박 60억km를 날아온

보이저2호편에 부친 당신의 편지


"태양계를 떠나려니 따스한 햇살이 그립군요"


다음 문장은 채 읽지 못한 채 새벽이 왔고

나는 눈물과 함께 사파이어빛으로 얼어갔다


천왕성을 망원경으로 처음 발견한 윌리엄 허셜 얘기다

그 역시 낮과 밤을 마흔 두 해씩 보내고

84세를 끝으로 우라노스의 별이 됐다.


#지구를 출발해 태양계를 떠난 보이저2호가 방금 내게 소식을 전해왔다. "명왕성을 지나자마자 암흑 같은 어둠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빛을 향해 계속 유영을 하고 있다. 너무 추워서 태양과 지구를 향해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 따스함이 그립다. 우주선을 가동하는 에너지는 방전된 지 오래다. 그리움이라는 에너지를 품에 안고 미지의 세계를 향하고 있다. 가다 보면 또 다른 은하계가 우릴 맞이할지도 모른다. 시간은 빛의 흐름이고, 거기에 맡겨 흘러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 상실의 바다를 계속 항해할 것이다. 나를 있게 한 태초의 자궁 속으로 거슬러 올라갈 찬란한 죽음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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