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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져니박 Jun 28. 2023

마감 1분 전

23:59와 00:00 사이


23:59 


나를 진저리를 치게 하는 숫자 4개이다.
귀에 대고 장구 치는 것 같이 심장이 뛰는 소리,
좌우로 진자운동을 해대는 눈동자,
너무 긴장하다 움츠린 상태로 뻣뻣하게 굳어버린 뒷목.


항상 이런 식이다.
좀 더 적절한 표현, 좀 더 명확한 논거를 만들겠다고

퇴고에 퇴고에 퇴고를 하다 보면 어느새
마감 1분 전, 지원 기간 마지막 날 23시 59분.
 

때로는 놀랍기도 하다.
미리 주제 문장도 다듬어 놓았고, 글감도 모아놓았고,

그 글감을 이렇게 저렇게 배치해서 서론ㅡ본론ㅡ결론도

다 구성해 놓았고, 준비에 준비를 거듭했는데...
23:59 같은 숫자를 마주하게 된다.


며칠 전 지원서를 처음 다운로드하였고,

몇 번이나 임시저장을 했는지 상관없이 말이다.


"제출" 버튼을 누르고 질끈 눈을 감는다.

.

.

.


세이-프!

지원정보에 기재한 이메일 주소로

'제출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이메일을 확인하고,

휴, 긴장이 풀린다.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

수많은 경우의 수를 되짚어 보면서 스스로를 탓한다.
 

3일 전에, 아니 공고가 뜨자마자 시작했어야 했을까?
서론, 결론도 아닌 예시 하나에 왜 몇십 분씩 할애했을까,
요즘 야근한다고 피곤한데, 굳이 왜 쓰기 시작했을까?


시합에 나서기 전에 장수가,

온갖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돌리며,

칼을 열심히 닦고 열심히 갈고 하다 퍼뜩,
고개 들어 보니 시합 이제 시작한다,

끼익문을 닫으려고 하길래 헐레벌떡 뛰어드는 꼴이다.


이 경우 둘 중 하나다.

불행 중 다행으로, 황급하게 칼을 뽑느라 팔에 쥐가 났지만, 어쨌든 멋지게 실력을 발휘한다.
불행 중 불행으로, 끝내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빛을 보지 못하고 칼을 도로 칼집에 넣는다.



00:00


다행히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그런데 세상에 보여줄 일 없이
칼집에 그대로 내 경험과 주장이 처박히는 경우는

이제는 거의 없어졌다.


그래도 몇 번 학습된 경험 때문일까.
23시 59분에서 다음날 0시 0분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은 썩 유쾌하지 못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진절머리가 난다.

때로는 혼란스럽고 스스로가 가엾기도 하다.
마지막 1분을 남기고, "제출" 버튼을 누르는 순간.
몇 시간 전, 며칠 전 지원서 쓰기 시작했는데
왜 중간고사 전날 벼락치기했던 기분을 내가

이 나이에 느껴야 하는지.


그럼에도 황급하게 칼을 휘두르고 출전할 수 있었던,

불행 중 다행이었던 순간들이,

더 나아가 뿌듯한 성취,

새로운 기회로 연결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하니까

이제는 떨지 않고, 23:59라는 그 시간을

자신 있게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거린다.


알 이즈 웰~


그래서, 이제는 마감 전 1분을 남긴 순간, 나를 지치게 하는 도돌이표 긴장과 미련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나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충분히 준비하였어.
저번 글보다 훨씬 논리적이고, 매끄럽고, 매력적이야.
이 정도면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 가보자고~


물론 나의 완벽에 대한 집착,

그리고 계속되는 퇴고는 또 나 자신을

마감 전 마지막 1분까지 몰아세울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는데,

달라질 게 있겠어.


하지만 좀 더 자신 있게, 홀가분하게 맞이할 것이다.

어차피 마지막 1분을 남기고 "제출"할 거라면,

이왕이면 좋게 좋게 끝을 내는 게 좋지 않겠어.


실제로 마지막 1분을 남기고 내 모든 것을 쏟아낸 후,
감사하게도 좋은 결과를 얻게 되면
기쁨이 배가 되기도 하더라.

문 닫고 들어왔네, 운도 좋지.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야지.



00:00은 하루의 끝이면서
다가올 하루의 시작이다.


져니박 씀.


커버 및 본문 사진 :  Unsplash의 Benhan Norouzi, Keith Johnston, Gioele Fazzeri, Kai Pil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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