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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유코치 티아라 Nov 29. 2021

인생도 수유도 같다, 결국 나만의 방식을 찾아야한다고

< 젖몸살이 출산보다 더 아팠어요..>


“ 나.. 가슴이 너무 아파.. ”     


제왕절개로 겨우 걸을 수 있게 된 뒤, 내가 한 말이다. 하늘이 노랗게 보여야 아이가 태어난다는 출산의 고통은 수없이 들었지만 그다음은 알지 못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그렇게 젖몸살이 시작되었다. 가슴에 시멘트를 부어놓은 것처럼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고 망치로 때리면 깨지며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다. 내 평생 겪어보지 않은 아픔이었다. 제왕절개의 아픔 따위 비교할 수 없었다. 이렇게 아픈데 간호사 선생님부터 친정엄마까지 원래 아픈 거라고 당연하다는 이야기만 하셨다.   

  

이렇게 아픈데 이게 정상이라고?

이 생각을 젖몸살이 괜찮아질 때까지 계속했던 것 같다.    

 

젖몸살이 무엇인지? 젖몸살이 왜 생기는 건지? 어떻게 하면 괜찮아지는지...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냥 이겨내야 한다고만 강조했다. 난, 적군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이 바로 전쟁터에 떨어진 신입 병사였다.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뭐든 해야 했다. 젖몸살을 이겨내기 위해 사람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모두 해보았다.     


1. 직수(아기에게 직접 모유 수유)를 자주 하세요     

이게 정답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난 이걸 할 수가 없었다. 36주 5일에 양수가 새어 나와 2박 3일 진통 후 결국은 제왕절개로 만난 우리 아기는 이른둥이였고, 태어나자마자 호흡이 불안정하고 자가호흡이 되지 않아 출산 직후 큰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아기만 퇴원하고 오면 나의 젖몸살은 모든 게 다 해결될 줄 알았다.    

 

2. 유축하세요     

직접 모유 수유가 불가능한 나에게 병원의 모든 간호사 선생님들이 한 말이다. 유축하세요~

하지만, 시멘트를 발라 놓은 것처럼 돌덩이가 된 가슴으로 유축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다들 유축을 해야 한다고만 이야기했지 어떻게 유축기를 사용해야 하는지, 몇 시간마다 유축을 해야 하는 건지, 몇 분 동안 유축을 해야 하는 건지, 유축이 안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제대로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냥 가슴이 아프지 않으려면 알아서 유축을 하렴... 이런 느낌이었다.     


3. 가슴 마사지를 하세요

더 어려운 해결 방법이었다 가슴 근처에 손이 스치기만 해도 악! 소리가 나오는 가슴을 도대체 어떻게 마사지를 하란 말인가? 신랑님께서 해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신랑이 근처만 와도 너무 아파 진통할 때도 잡지 않았던 신랑 머리를 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4. 가슴 마사지를 받으세요     

가슴 마사지라고? 누가 내 가슴을 주물러 주나요?(처음 알았다. 가슴 마사지가 있다는 걸..)

산부인과 병원 건물이나, 조리원 근처에 유방 관리실이라고 적혀있는 곳이 있었다.

아름다움을 위한 관리라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젖몸살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사지를 받는 곳이었다. 아이를 낳자마자 처음 겪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방법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매일 전쟁터에 나가지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이 전쟁 같은 현실에 제일 슬픈 건, 우리 아이를 위해 모유를 짜서 병원에 가져다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가슴을 살리기 위해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도 꼭 전쟁에서 이겨야 했다. 더 이상은 아프다고 울고만 있을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입에 수건을 물고 손으로 가슴을 마사지하고 유축기를 끊임없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모유 수유 센터에 가서도 수건을 물고 마사지를 받았다. 돈을 내고 이렇게 아픈 마사지를 받아야 한다니... (그땐 아프지 않은 가슴 마사지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였다.)     

조금씩 유축이 되더니, 그때부터는 유축을 하면 400미리는 거뜬히 유축이 되는 엄마였다. 병원에서 젖양으로 1등을 했다. 1등은 언제나 좋은 거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

젖이 차오른 다는 건 다시 가슴이 딱딱해진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유축을 하는 그 순간만 살 것 같았다. 30분만 지나도 다시 가슴은 시멘트를 바르고 있었다.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 내 가슴은 늘 시멘트를 바를까 봐 너무너무 무서웠다.  



   

출산을 하고 아이를 가슴에 안고 행복하게 모유 수유를 하던 그 모습들은 다 거짓인가?라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아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나는 나쁜 엄마인가?라는 생각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자연분만에 실패하고 모유 수유도 못하는 엄마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힘든 모유 수유 따위 때려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시멘트가 부어져 돌덩이로 변해가는 내 가슴을 보니 때려치울 수도 없었다. 이 전쟁은 끝이 날까?    

 

수유실에서 다들 잘하는데 나만 늘 못하는 것 같았고 나만 아이를 울린다고 생각했다. 나만 못해서 엄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유 코치가 되고 현장에서 만나는 엄마들이 대부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초보 엄마들이 하는 생각은 똑같았다.     


, 모유 수유할 수 있을까?


하루에도 열두 번 모성애를 의심하는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모유 수유는 엄마가 100명이면 100가지의 방법이 있는 거라고!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나도 나만의 방법으로 내 가슴을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이게 첫째 18개월 모유 수유의 시작이자 수유 코치가 되기 위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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