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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빈 Jun 22. 2021

속초 기행

2020년 2월 9일

어제도 어김없이 새벽에 눈을 떴다. 잠든 시간은 중요치 않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새벽 5시가 조금 넘으면 눈이 떠진다. 언제부턴가 내 몸은 그 무렵을 자는 시간이라 생각하지 않게 된 걸까. 아무튼 오늘 예정된 일정은 어제 다 둘러보지 못한 MMCA를 다시 가는 것이었다. 그러고 집으로 돌아오면 책을 읽겠지. 요즘 부쩍 책 읽는 게 다시 재밌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 이유 때문에 계획이 뒤집어질 줄은 몰랐다. 샴푸칠을 하던 도중 바다 앞에서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리고 싶단 생각이 바짝 들었다. 그로부터 세 시간 뒤, 이미 속초에 도착했다.



속초가 이렇게 좋은 위치였던가. 긴 도로 끝에는 수평선이 펼쳐지고 뒤돌아 끝에는 설악산이 높게 솟았다. 눈이 내린 설악산의 꼭대기는 구름에 가려 희끄무레하게 보였고, 먼 탓인지 대기의 푸르뎅뎅한 색을 띠고 있었는데 그 빛깔이 마치 반대편의 바다와 같았다. 사실 자연도 자연이지만 설악산만큼 위를 치켜든 크레인이 이방인을 더욱 반겼다. 단언컨대, 속초는 크레인의 도시다. 내가 내린 버스터미널의 주변이라 그런지 ‘편리한 교통’을 내세우는 신축건물들이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콘크리트와 비계, 앙상한 크레인이 속초 풍경을 감싸고 있다.


속초는 크레인의 도시다.

이유야 뻔하다. 앞에는 바다가 뒤에는 산맥이 펼쳐지는데, 전망을 확보하기만 하면 그 장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이기 때문. 호텔레지던스든 주거시설이든 간에 투자가치가 충분했다. 문제는, 혼자만 우뚝 서면 기대만큼의 풍광을 보여주겠지만, 너도나도 빌딩을 올렸다는 것이다. 결국 서로 전망을 차지하려다 풍경만 해치게 되었다. 나도 두 눈에 바다와 산을 단숨에 담고 싶었지만, 그들 때문에 스카이라인이 답답했다.



그렇다고 개발을 반대하고 보전을 바라는 건 다소 폭력적이겠지. 반박의 여지가 없는 학문은 죽은 학문이나 다름없듯, 개발의 여지가 없는 도시는 죽은 도시나 다름없다. 자본이 꾸준히 유입되어야 청년 인구의 유출이 없을 터. 자연 풍경만 바라는 것은 철저히 이방인의 사고방식임에 멋쩍은 씁쓸함만 지을 수밖에 없다.



도시 걱정은 그만하고,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시내버스를 탔다. 어렴풋이 인식되는 정류장의 불규칙한 간격과 낯선 경로, 더불어 창밖에 집중하고 있는 나 자신, 내려야 할 곳에 내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고 정확하게 내리기 위해 휴대폰 지도에 집중하고 싶진 않았고, 불길한 기운 그대로 내려야 할 곳을 놓쳤다. 그러려니 한 정거장 지나 내려 당연스레 걸었다. 남이 봐도 내가 봐도 원래 그곳에 내릴 생각이었던 것처럼. 생각보다 멀게 내려 당황스러웠지만, 휴대폰에 나오는 길은 약 20분. ‘큰길우선’이라는 문구를 보자마자 곧바로 지도를 확대했다. 작은 길로 가야지. 결국 산길을 꼬불꼬불하게 오르며 염소도 만나고 강아지도 만난 뒤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번쩍이진 않지만 내 분수에 호텔이라니. 평일에다가 각종 할인을 탈탈 털어 싼값에 방을 얻었다. 뷰까진 바라지 않았지만 베란다 밖으로 동쪽 바다가 훤히 보이는 좋은 방이었다. 운이 좋았다. 아침에 큰 조명이 뺨을 때리겠구나.



숙소에 배낭을 두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기도 했고, 다음에도 책 한 권은 꼭 들고 다녀야겠다 싶었다. 배낭을 메고 여기저기 둘러보고 다니는 사람은 영락없는 관광객이겠지만, 책이나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다른 기운을 뿜어낸다. 여행을 온 건지 산책을 나온 건지, 속초 시민 같은 행색은 오히려 내가 속초에 풍덩 담긴 듯한 위안을 주는 것 같았다.



책을 지니면 또한, 여행을 왔으니 무언갈 많이 해야겠다는 강박에서도 조금은 거리를 둘 수 있다. 다양한 경험은 좋지만 긴장한 상태에서의 그건 조금은 스트레스다. 무거운 배낭까지 메고 있다면 피로는 배가 된다. 고생의 추억은 짙게 남겠지만, 일상에서의 고생을 더 큰 고생으로 위로받고 싶진 않았다. 마치 전날 마신 술을 술로 해장하는 느낌. 너무 싫다. 나는 심심한 북엇국만 있으면 된다. 한 손에 들린 종이 무더기는 말 없는 친구이기도 했다. 짐은 가벼운 반면 들어 있는 정보는 많으니 오히려 든든했다.



밥을 먹고 나오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식당 바로 앞이 바다였으므로, 그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먹구름도 그리 넓게 드리우진 않았다. 방금 모둠물회를 먹고 나왔는데, 구름도 모둠이다. 하늘 캔버스에, 모둠구름의 컴포지셔닝과, 눈의 시퀀스. 내 사고 회로가 아무리 유물론 기반이어도 디자인 전공생이 여기에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여자친구가 없으니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생각해보니 여자친구가 있었다면 같이 왔겠지). 엄마가 너무나 좋아할 법한 시퀀스였다.



파도가 모래 알갱이에 부서지는 소리도 좋았고, 방파제에 부서지는 것도 좋았다. 저쪽 바다에는 아래에 다른 지형이 깔려있는 건지, 파도가 바다 한가운데에서 따로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그것도 좋았다. 해변에는 사연 있어 보이는 남자가 쪼그려 앉아 상념에 빠져있었고 나는 저 등대가 있는 곶으로 향하고 있었다.



곶이라 하기엔 인공적인 방파제가 좀 더 적합한 표현일까. 둑을 따라 최대한 바다에 가까이 가보니 이곳이야말로 이번 여행의 목적 장소가 아닌가 싶었다. 해는 설악산 가까이 기울고 있기에 낮은 고도와 색온도, 청각적으로는 방파제에 부서지는 파도의 소음으로 가득 차 있고 시각적으론 푸른 바다에 둘러싸였다. 하얀 등대가 마련해준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을 때의 쾌감이란, 눈에 담기에도 아까운 풍경을 그저 책 읽기 위한 노이즈로 사용한다는 거만함에 어찌나 흥분되던지. 지적 허영과 허세가 절정에 달한, 한 달 조금 넘은 올해 중엔 최고의 순간이었다. 해가 어느덧 구름에 가려지고, 손이 시려 일어났을 때는 앉은 지 30분밖에 지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지지부진하던 책장 넘기는 속도에 비하면 한 시간 치는 읽었다. 근처 카페로 가서 커피와 함께 좀 더 읽다가 저녁을 먹으러 시내로 향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여느 관광도시와 같은, 많은 ‘원조’ 식당이다. 너도 나도 내가 ‘진짜’라고 호통치는 간판들. 함께 걸린 현수막을 읽어보면 전국이 놀라고 매스컴이 주목까지 한다. 식당을 다녀가는 프로그램은 한국에 어찌나 많은지. 이곳에는 ‘생생정보통’이, 저곳에는 ‘맛있는녀석들’이 방문했다. 각 프로그램의 PD들이 이번 회에는 방송에 나오지 않은 식당을 가자고 다 함께 약속이라도 한 걸까. 저마다 해당 방송 장면을 캡쳐떠서 현수막과 간판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사실 그 장소가 이 장소인지 구분하기도 힘들다. 이 소리 없는 아우성이 펼쳐진 풍경에 낮에 본 크레인이 겹쳐 떠올랐다. 가치를 높이려 서로가 높이 쌓아 올리다 되려 그 전망의 가치가 떨어진 상황. 홍보를 하려고 서로가 현수막을 내걸다 보니 되려 홍보 효과는 홀랑 사라지고 시끄러운 현수막만 남았다.



한편, 속초에 도착해서부터 보이던 것이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니는 커플’이다. 커플 자체도 세트(set)지만, 그 들고 있는 무언가도 함께 세트다. 속초에서 유행하는 패션인가 싶었지만 이내 ‘만석닭강정’임을 알아차렸다. 방문증을 패용하듯 다들 닭강정 한 박스씩 들고 다니는 것이다. 중앙시장에 근접해 갈수록 그런 ‘세트’가 더욱 많이 보였다. 개미 행렬을 거슬러 올라가듯, 따라 들어가 보니 그 방문증의 발원지를 만날 수 있었다. 2018년 여름, ‘만석닭강정’은 식약처 점검에서 위생 취급기준 위반이 지적돼 과태료를 냈다. 그 이후 문제 해결과 이미지 탈피를 위해 ‘만석반도체’로 불릴 만큼 복장과 시설을 바꾸었다고 들은 바 있다. 실제로 보니 과연 반도체라 불릴 만하다. 직원들은 죄다 방진복을 입고 있었고 새하얀 가게 안의 경량랙에는 닭강정 박스가 진열되어있었다. 전통 시장 안에 이런 미래주의가 있다니. 마스크까지 끼고 눈만 내어놓고 있으니 흡사 니캅(Niqab, 이슬람 전통 의상) 같았다.



만석닭강정을 필두로, 시장 안에는 전파를 탄 맛집이 여럿 있나 보다. 종종 사람이 몰려있는 순대나 튀김집이 있었고, 고용된 동남아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입력된 말을 반복했다. 가령, 아바이 순대를 고르면 ‘안에 고기, 들어가 있어요.’라 하고, 오징어순대를 고르면 ‘안에 찹쌀, 들어가 있어요.’라 답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드시고 가세요. 안에 자리 있어요.’를 외친다. 나는 아바이 순대와 새우튀김을 주문했다. 그러자 직원은 알겠다고 한 뒤 “옆에 소스, 있어요.”라고 말했다. 사실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나는 열심히 살지 않음에 부끄러워진 것이 아닌, 치열한 삶의 반경에 관광객으로 앉아있는 것이 편치 않았다. 근데 아마 그들은 나보다 훨씬 돈이 많을 거다. 못난 한국인 사장이 시급을 떼어먹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맥주 한 캔을 사들고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나를 찾지 말란 의미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렸다. 그러고는 노트북을 펴 글을 쓴다. 책 읽기 위한 환경을 찾아 여행을 왔고, 영감을 얻어 글을 쓴다니, 마치 작가의 삶이다. 작가들이 그래서 여행을 많이 다니는구나. 고료만 안정적으로 나온다면 이만큼 좋은 삶이 없겠다. 어느 정도 써 내려가다가 이내 잠들어 버렸다.



눈을 뜨니 역시 새벽 다섯 시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몰라도 이번엔 마침 잘 됐다. 바로 앞의 해맞이 공원에서 일출을 볼 예정이었다. 숙소 안 사우나에서 샤워를 말끔히 하고 옷을 동여맨 뒤 해안가로 나섰다.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을 가로질러 해를 맞이했다. 소원 따위는 빌지 않는 성격이지만 나름대로의 감동은 있다. 가만히 해를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지구의 공전을 그리는 거다. 겨울이니 대충 지구가 그곳에 위치할 거고, 자전축이 어떠하며 지금 저 빛은 대기에 굴절되어 붉은 등등. 온갖 과학적 상상을 하면 추운 새벽은 널찍이 사라지고 없다.



오늘은 원주로 향해 간다. ‘뮤지엄 산’을 들릴 예정이다. 말로만 듣던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을 직접 보는 건 이번에 처음이다. 이렇게 일찍 만나게 될 줄 알았으면 평소에 건축 공부 좀 해둘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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