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편지
악몽을 자주 꿨고 학창 시절엔 꾸준히 가위를 눌렸으며, 유체이탈을 경험했다.
내게 답하는 열세 번째 편지
13일 차 주제. '수면'
수면: 피로가 누적된 뇌의 활동을 주기적으로 회복하는 생리적인 의식상실 상태.
자기 전까지도 생각이 많아서인지 단순히 스트레스 영향이었을지, 잠자는 동안 '의식 상실'이 안 될 때가 많았다. 최근 현저하게 줄어든 걸 보면 심리적인 영향이 컸지 않았나 짐작한다.
오늘 주제를 계기로 기이했던 내 수면 경험을 기록한다.
가위눌림
학창 시절 특히 가위에 자주 눌렸다. 어두운 형체가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 아무리 눌려도 익숙해지지 않았고, 몹시 불쾌했다. 가위 안 눌려본 사람이 흔히 상상할 목이 졸리는 가위는 아니었다. 다만 조를까 봐 조마조마하게 가슴 위쪽을 짓누르는 느낌, 둘 이상의 누군가가 귀 주변에서 나를 비웃고 수다를 떠는 식이었다. 가위눌리기 전에 머리통 막이 얇아지듯 싸한 느낌이 있다. 그때 재빨리 침대에서 벗어나야 가위를 피할 수 있다.
유체이탈
고등학생 때 유체이탈을 경험했다. 소파에서 낮잠을 자는데 여느 때처럼 가위눌리기 전 싸한 기운을 느낀 동시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차 한발 늦었다 했는데, 스르르 시선이 천장 쪽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억나는 건,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향해 누워있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누워있는 나의 집게손가락을 ET처럼 맞대었다가 살짝 감싸고는, 다시 누워있는 시선으로 돌아갔다.
반복되는 악몽
이상한 외계 생물체한테 끌려가 인체 실험당한다거나, 전쟁터에서 포로로 끌려가는 등의 꿈을 많이 꿨다. 다행인 건 악몽을 너무 자주 꿔서인지 어느 정도 의식이 있을 때가 있었다. 가령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려 할 때 '이건 꿈이야, 꿈이야! 반드시 깰 거야!' 반복하면서 악을 쓰면 깨기도 했다.
자각몽 (루시드 드림, Lucid Dreaming)
유체이탈을 한번 경험하고 그 신기한 경험이 일종의 자각몽이라는 걸 알게 됐다. 영화 <인셉션> 배우들이 꿈속에서 세상을 설계하듯, 자각몽은 자신이 꿈꾸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꿈을 통제할 수 있는 현상을 말한다. 주로 렘수면(얕은 수면) 상태에서 경험하기 쉽고, 나는 꿈에서 '하늘을 날겠어!' 하고 높게 점프하면서 중간중간 날아다닌 적이 있는데, 그게 여기에 속할지 모르겠다.
잠버릇도 유전인가
"불이야!" 소리 지르며 소파에서 떨어진 아빠 때문에 악몽에서 깬 적이 있다.
내 경험상, 자기 직전까지 핸드폰을 쥐고 있었거나, 걱정거리를 침대까지 끌고 와 붙들고 있으면 악몽을 꾸거나 잠을 설치는 경우가 잦았다.
반대로 스트레스 같이 통제하기 어려운 요인은 제외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잠자리 환경 조성에 신경 쓰면 조금 나았다. 핸드폰 거실에 두고 자기, 취침 1시간 전부터 전자기기 사용 안 하기, 핫팩이나 따뜻한 티로 몸 데우고 자기 등.
아침부터 흐린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에 창문이 뿌옇고 으스스한 날이다. 본의 아니게 글이 조금 공포스러웠던 것 같다. 요즘 적정 시간을 자도 개운치 않고 의식도 뿌옜다. 오늘부터 수면 관리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오늘 밤 모두 숙면하세요.
나를 찾는 여행 중,
내일은 열네 번째 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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