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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생 Nov 19. 2019

조급해도 잘 지내요

레이싱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야

내게 답하는 열아홉 번째 편지


19일 차 주제. '조급한 마음'




한 달 전, 수영대회에 나갔다. 대회 시작 30분 전 수영장에 도착했을 땐 그냥 집에 갈까 했다. 눈앞에 돌고래 무리 마냥 다이빙하는 사람들을 보는데, 기가 팍 죽었다. 그렇지만, 다음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질렀다. 결과와는 상관없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출전한 사람들의 자세였다. 초급 발차기 종목에 나온 사람, 격차를 크게 벌리며 꼴찌로 들어온 어르신, 실수로 출발 신호 전에 스타트를 끊었는데 삑삑 호루라기 소리를 못 듣고 완주해 박수갈채를 받던 아주머니. 모두가 스스로와 싸우는 중이었고 초급이든 상급이든 지금의 자신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들 덕분에 나도 이내 긴장을 내려놓고 대회를 그저 즐길 수 있었다. 지금의 나, 속도, 최선. 물 밖에서도 이 생각 근육을 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게 쉽지 않다. 더는 레이싱이 아니던 물 위에서의 느낌을 자꾸 생각한다.



윗글은 한 달 전 인스타그램에 쓴 글의 일부다. 일을 쉬고 있는 상황에 맘이 조급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미세한 변화지만 내가 행동함으로써 얻은 몇 가지가 있다.



'내려놓음'이 생겼다.

글쓰기 모임만 아니었다면 그대로 작가의 서랍에 처박았을 글, 인스타그램에 절대 올리지 않았을 그림을 올리고 지낸다. 처음엔 눈을 질끈 감았지만 점점 무뎌지고 있다. (모임 끝나면 지울지도)


'무작정'이 생겼다.

이현진 작가님의 강연을 들은 날, 작가님께 질문했다. 내가 언젠가 쓰고 싶은 글은 다수가 공감할 수 없을 글인데, 해주실 수 있는 조언이 있을지. 이에 "지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운을 떼시곤 계속 쓰라고 하셨다. 작가님께선 쓰기 시작한 게 고등학생 때부터라고 하셨다. 음, 조금 민망했다.

눈여겨보는 그림 작가님들의 작업량이 요즘 새삼 눈에 들어온다. 이전에는 잘할 수 있는 치트키를 찾았는데, 방향을 틀었다. 좀 구려도 지속해보잔 생각이다. 그래서 글쓰기 프로젝트와 시너지를 일으켜 무작정 쓰고 그리고 있다.


'감탄'이 생겼다.

어쩜 세상에 이렇게 글 잘 쓰고 잘 그리는 사람이 많은지 감탄하는 나날이다. 곤두세웠던 '잘해야 해' 센서를 내려놓아서인지, 모든 그림, 글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한지 깨달아서인지.




한 달 전 수영대회를 다시 떠올렸다. 적어도 요즘 내가 레이싱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다. 저 조급하지 안지는 않지만 잘 지내요.




나를 찾는 여행 중,

내일은 스무 번째 편지를 씁니다.


https://brunch.co.kr/@chograss/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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