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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생 Nov 27. 2019

그녀의 몰입

루이스 부르주아

내게 답하는 스물일곱 번째 편지


27일 차 주제. '몰입'


무언가에 흠뻑 빠져 있는 심리적 상태. 개념을 처음 접한 건 대학 3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수업 필독서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flow)>이었습니다. 최근 친구가 공유한 황농문 교수 강연을 통해 몰입을 또 한 번 마주했습니다. 여전히 일과 일체 되는 경지의 몰입은 멀게 느꼈지만, 몰입의 삶을 살았던 한 예술가로 제 속은 뜨거웠습니다. 


창의적 업적을 이룬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몰입했고 동기가 같았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발견한 이 공통점은, 삶의 한시성을 인식하는 것이었다. 1년 뒤, 10년 뒤에도 이 일을 할 가치가 있는지를 생각하면, 삶의 껍데기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 남는다.

루이스 부르주아, “나는 오랫동안 깊이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말해야 할 게 무엇이며, 또 그것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황농문_몰입 강연 내용 중]




루이스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



Louise Bourgeois: art is a guarantee of sanity, Cell 1


<아버지의 파괴>


<마망>



황농문 교수가 몰입했던 인물로 마지막에 언급한 루이스 부르주아, 저는 그녀의 몰입에 대해 멈추어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깨달았습니다. '내가 몰입하고 있는  상처구나.'


그녀의 삶이 어떠하였을지 피부로 느껴지듯 했습니다. 붉은빛이 도는 <아버지의 파괴>, 생존을 위해 거미처럼 실을 짓는 어머니를, 뱃속에 품은 알을 보호하듯 모성애를 표현한 <마망>. 모두 불우했던 유년 기억을 토대로 한 작업입니다. 전제 군주라고 칭할 정도로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아버지와, 포용하는 어머니 사이 잉태된 상처의 실체입니다.


예술은 정신의 건강함을 보증해준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해왔던 가장 중요한 얘기다.

그녀는 작품으로 살아있던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몰입을 알 것 같았습니다. 쌓아둔 무형의 고통을 자신의 언어로 번역한 루이스 부르주아. 사진 속 그녀가 오늘따라 애달프게 보입니다.




사진 출처: crystalbridges




나를 찾는 여행 중,

내일은 스물여덟 번째 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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