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서 찾은 글쓰기
삶은 고해苦海다.
내게 답하는 스물아홉 번째 편지
29일 차 주제. '글'
M.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 본문 첫 문장입니다. 정신과 의사인 그는 이것이 세상 진리 중 하나이고 이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때, 삶이 힘들다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전합니다.
삶이 힘들다는 것은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 삶의 의미가 있다. 문제에 부딪치면 용기와 지혜가 필요해진다. 사실은 이때 용기와 지혜가 생겨난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오로지 문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왜 글쓰기를 계속해야 합니까'
오늘 주제에 따른 질문을 보고, 머릿속에 떠오른 답은 '그렇게라도 해야 하니까'였습니다.
글쓰기는 제가 고통을 직면하는 방식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현실에 짓눌려 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택한 몸부림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고통을 피할 수 없고 고통을 겪어나가는 모습은 모두가 다를 것입니다.
저에겐 힘없이 손 내민 게 책이었고, 내면의 밑바닥에서 찾은 것이 글쓰기였습니다. 글을 써본 적도 나를 똑바로 표현하고 살지도 못했던 저였지만, 잃을 게 없다 느끼니 용기 내어 쓸 수 있었습니다.
문제와 이에 따르는 고통의 감정을 피하려는 성향이 정신병의 근본 원인이 된다. 우리는 누구나 크든 작든 이러한 성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크든 작든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으며, 이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건강한 상태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아픔을 쓸 때,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과정을 지납니다. 무력했던 나를 다시 데려와 대화하고 이를 기록합니다. 이는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던 내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고, '이제는 괜찮다' 눈으로 확인하는 실체를 만드는 일입니다.
고통 앞에서 내가 쉽게 변할 수 없음을 또한 마주합니다. 그때그때 인식의 변화, 감정의 승화를 맛보고 나아진 나를 간헐적으로 만날 뿐. 고통에서 성장으로의 여정은 고사하고 평생 심한 고통과 적당한 고통 경계에 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그저 하면서 살아볼 뿐입니다. 인생이 고해인 건 알겠지만 내게 다가오는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일은 평생에 걸친 노력이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아픔을 보는 것,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본질을 보는 지혜를 단련하는 것, 먼저 가고 있는 사람을 통해 용기를 얻는 것. 이 노력들이 제겐 글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저를 포기하지 않으려 읽고 씁니다. 적어도 다른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요.
나를 찾는 여행 중,
내일은 서른 번째, 마지막 편지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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