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안 되면서 청소기는 되는 게 이상한 게 아닐까?
남편이 윗집에 올라간 지 며칠이 됐을까. 그 사이 나는 정신과에서 심한 우울증 판정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이미 크리스마스와 새해 정초부터 조카까지 불러 신나게 뛴 전적이 있는 자들이라 올해 설은 미리 경고를 해두고 싶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밤마다 소리 지르며 우는 나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직접 가면 결과가 좋지 않을 듯하여 남편을 윗집 남편과 대면시켰다. 그 사이 내가 여기저기에 나의 피해를 호소한 글을 그들도 보았다 한다. 그러면서 건넨 한 마디. "우리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도 이미 아랫집과 그 윗집이 소리와 진동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알렸음에도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던 그들은 그냥 좀 나쁜 사람 정도인 걸까.
이 일이 있고 설 연휴 동안은 그래도 좀 조용히 지내는 듯했다. 윗집 남자가 늦은 시간에 귀가해 온 집을 삼시 여분 정도 쿵쿵 대고 그 집 아이가 간간이 뛰는 정도로. 문제는 설 연휴가 시작되는 일요일 아침에 일어났다. 아침 7시 44분. 걸레받이를 쿵쿵 치며 청소기를 밀기 시작했다. 평일에 간간이 청소기를 그 시간대에 밀긴 했지만, 평일이기에 그건 나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긴 연휴의 시작의 첫날 아침. 그것도 소음으로 한 달간 항의한 아랫집을 향해. 그들은 청소기를 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묵힌 감정이었을까. 나는 그들이 '일부러' 그렇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9시에도. 10시에도. 11시에도. 그들은 나가지 않았다. 그들은 꾸준히 나에게 그들의 기척을 알려주었고. 그 소음은 나란히 나의 고통이었다. 아침부터 왠지 나에게 일부러 항의하는 듯 해서 더욱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물론 아닐수도 있지만 이미 감정적으로 쌓일 대로 쌓여버린 지금의 내 감정은 나 스스로 다독이기가 어려웠다,
너무 화가 난 나는 아파트 게시판과 지역 게시판에 이 문제에 대해 항의를 제기했다. 돌아온 대답들은 반반이었다. 오전 7시 이후는 괜찮다와 일요일 오전은 아니다는 두 가지 의견이었다. 그 시간은 그렇게 뜨거운 토론의 화제가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출근 전 급히 청소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모처럼 찾아온 주말에 느긋이 늦잠을 즐기고 싶은 시간이기도 했다. 누가 맞고 틀리다는 문제로 귀결되기에는 참으로 애매한 시간인 7시 44분. 8시부터는 무언가 이해해야 할 것 같고. 7시부터는 정초 새벽부터 날벼락일 것 같은 뜨거운 논란의 시간이다.
게시판을 며칠간 모니터링하며 놀란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청소기 소리가 시끄러운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청소기를 밀면 구조상 바닥을 드르륵 지나가게 되며 특히나 걸레받이를 청소기의 헤드로 치면 당연히 진동과 소리가 난다. 이것은 부차적인 문제이고 가장 큰 문제는 모터의 소리와 진동이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저소음 청소기의 경우에도 47dB을 기록했고, 비슷한 소리를 내는 헤어드라이기의 경우 80dB에 육박했다. 모터의 진동이 아랫집을 울리게 되면 저주파로 굉장히 거슬리는 소리를 만들게 틀림없고 이런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이것은 분명히 소음을 일으킨다. 들째, 새벽 6시부터 청소기를 돌리는 집들이 있다는 점이다. 아파트 게시판에 뜬금없이 새벽 6시부터 5분씩 그간 청소기를 돌려왔는데 주의하겠다는 댓글이 달렸다. 새벽 6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부지런함의 표상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기에 당당히 6시부터 본인의 부지런함을 자랑하고 싶었던 글일까. 층간소음을 겪으며 사람의 진심과 선의를 믿지 않게 된 나는 그 댓글의 진의가 매우 궁금했다. 어찌되었든 새벽 6시에 청소기를 돌리는걸 그만하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면 다음에 이사갈 집에서 층간소음에 시달릴 확률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셋째, 여전히 나에게 전원주택이나 가라느니 늦잠이나 잔다느니 하는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조롱들은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내내 들어왔던 조롱들이다. 내 이웃이 새해 연휴 아침을 커피와 함께 조용히 맞이하기를 배려하는 나와 아침부터 청소기를 민 뒤 신나게 아이와 뛰는 윗집 중 누가 전원주택으로 이사 가야 하는지는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 아침 일찍 혹은 저녁 늦게는 되도록이면 걸레질을 하려 하고, 세탁기, 피아노, 설거지 등 진동을 유발하는 행위는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공동생활의 규칙이 아닐까. '평범한 생활' 혹은 '일반적 생활'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생활은 주말에는 빨라도 8시, 되도록 9시부터 청소를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생활 패턴들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닭장 같은 공동 주택에 모여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조금씩은 서로 배려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생각한 배려와 그들이 생각하는 정상은 여전히 많은 격차가 있다.
연휴가 끝나면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준칙을 한 번 확인해볼까 한다. 준칙이 7시라면 나도 한껏 일찍 일어나 윗집을 위해 부지런을 떨어볼까 하다가도 조용히 잘 살아주시는 아랫집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내 내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또한, 이게 만약 청소기 소리가 아니라 피아노 소리였다면 어떤 댓글들이 달렸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한바탕 소란을 치르고 나니 소음이 폭력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함이 또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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