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름달 Jun 04. 2023

그래도 우리 아직, 이렇게 살아 있어요.

스틸라이프(Still Life)


Still Life : 정물화. 과일·꽃·그릇·어류 등 정지된 물체를 배치하여 구도를 잡아 그리는 그림.
주제가 되는 모든 것이 자기의 의사로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특징


영국 런던의 구청 직원인 주인공 존 메이는 영화 제목, Still Life(정물화)처럼 단조로운 일상을 살고 있다. 벽에 걸린 그림처럼, 그의 삶은 고요하다. 존은 고독사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르고, 그들의 지인을 장례식에 초대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고독사한 이들 대부분은 오래전 가족, 친구와 절연한 상태다. 간신히 연락이 닿은 사람들도 장례에 참석하기를 꺼려한다. 존은 매번 거절당하지만, 고독사한 이의 장례식이 외롭지 않도록 연락을 멈추지 않는다.

존은 고독사한 이의 유품을 세심히 살펴보며, 그들의 삶을 추측한다. 그리고 외롭게 죽어간 이를 위해 추도문을 작성하고, 섬세하게 장례 음악을 고른다. 아무도 그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지만, 존은 망자에 대한 사명감으로 장례식을 준비한다. 외롭고, 소외된 이들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유일한 사람 역시 존 혼자다.

그는 사건을 마무리하며, 앨범에 죽은 이의 사진을 소중히 모아둔다. 그의 앨범에는 22년 동안 그가 장례를 치러준 사람들의 사진들로 가득하다. 그는 이렇게 그만의 방식으로 죽은 망자를 위로하고 기억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존의 업무 처리 속도와 예산 사용을 못마땅 여긴 구청이 그를 해고한다. 이제, 고독사한 빌리 스토크 사건을 마지막으로 22년간의 그의 업무와 사명감이 종료된다. 빌리는 존의 맞은편 아파트에 살던 사람으로 알코올중독으로 고독사했다. 가까운 곳에서, 어쩌면 마주쳤을지도 모를 빌리의 죽음으로 잔잔했던 존의 일상에 큰 파도가 몰려온다. 마지막 망자를 위해 존은 정적인 일상과 업무 처리 방식에서 벗어나 살아 움직인다.


존은 더 많은 사람들을 빌리의 장례식에 초대하기 위해 빌리가 생전 만났던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그러던 중, 그가 포틀랜드 전쟁에 참전했으며, 그 트라우마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을 노숙자들을 통해 듣는다.

그리고 그가 젊은 시절 만났던 연인 사이에서 낳은 딸(켈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존은 그의 딸을 찾아 고독사한 아버지 장례식장에 와 줄 것을 부탁한다. 존의 정성에 감동한 켈리는 그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로 한다. 둘은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함께 차를 마시기로 약속한다. 이제 무색무취였던 그의 일상에 봄바람이 불어온다. 매일 걸었던 똑같은 거리, 건물, 새소리마저 그에게 새롭게 느껴진다. 무채색인 그의 일상이 그녀로 인해 알록달록 물들기 시작한다.

존은 그녀와 차를 마실 때, 사용할 컵을 구입하고 마트에서 나선다. 설레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에 치여 그 자리에서 죽는다. 늘 무표정이었던 그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며, 홀로 숨을 거둔다.

이제, 여기 홀로 고독하게 죽은 존이 있다. 그의 장례식은 여느 고독사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쓸쓸하고 고요하다.

같은 날, 존의 마지막 노력으로 고독사한 이들 중 유일하게 빌리의 장례식은 그를 추모하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존의 죽음을 알 리 없는 켈리는 아버지 장례식에서 존을 기다리며 주위를 살핀다. 존은 이제 더 이상 그녀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다.

이제부터 22년 동안 고독한 장례식을 지켰던 존의 장례식이 시작된다. 그의 장례식에는 관에 흙을 뿌려줄 지인 한 명 보이지 않는다. 인부 둘은 바삐 흙을 덮어 그와 그의 장례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빌리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사람들과 켈리가 보인다.

어둑어둑해진 텅 빈, 존의 무덤에 한 명, 두 명 사람들이 찾아든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하나가 낯선 듯 익숙하다. 살아생전 존이 직접 장례를 치러줬던 망자들이다. 늘 혼자였던 존의 무덤에는 22년 동안 그를 거쳐간 망자들로 가득하다. 고독한 그들의 장례에 참석했던 존처럼, 망자들은 존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

이제 그 어느 장례식보다 많은 추모객이 모인 그의 무덤가를 비추며, 영화는 끝이 난다.

스틸 라이프(still life), 스틸 어라이브(still alive)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 작년의 거센 태풍과 홍수 속에서 살아남았고, 무수한 교통사고를 피해 갔으며, 지독한 전염병을 이겨내고, 지금 여기 살아있다. 무수히 다행이었던 행운 속에서 평온함을 깨닫지 못하고, 당신과 나 이렇게 살아있다. 정지된 하루 속, 당신과 나, 어제의 얼굴로 오늘 여전히 살아 있다.


죽음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애야, 밥 먹어라” 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김지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에서> p.154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행복까지는 며칠이 남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