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보장하지 않는 기본적인 권리, 국가에게 외면 당하고 있는 권리.
지난 19일 환경부의 홈페이지를 통해 '일회용 생리대의 건강영향 예비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이는 작년 특정 생리대를 사용한 후 생리 불순, 생리양 변화 등의 건강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들이 결국 생리대 안전성 검사에 대해 국민청원한 것에 대한 환경부의 예비조사 결과다.
하지만 환경부는 이미 몇 달 전에 끝난 조사 결과를 별도의 발표도 없이 홈페이지 구석에 자료공개만 해두었을 뿐이다. 일회용 생리대와 건강영향 간에 유관성이 드러난 이 결과가 생리대가 안전하다는 식약처의 발표와 충돌할 것을 우려한 것으로 심히 의심이 드는 상황이다.
여성에게 생리대는 마음대로 불매할 수 있는 그런 사치품이 아니다. 물론 생리컵, 천생리대 등의 대체품이 있긴 하지만 개인에 따라 생리컵의 경우 부작용, 이물감 등의 문제로 인해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으며, 매번 손빨래를 해주어야 하는 천생리대의 경우 직장 등 일상생활 중에 처치하기엔 곤란한 상황들이 많아, 사용하기엔 다소 무리가 많다.
결국 여성에게 생리대는 꼭 사용할 수밖에 없는 필수품이며, 그렇기에 생리대와 연결된 여성의 건강 문제는 기본적인 건강권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다.
그런데 식약처는 여전히 유해성이 없다는 발표만 내놓고, 환경부는 해당 생리대와 건강 간의 유관성이 드러났다는 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도 아닌, 홈페이지 한 구석에 자료만 공개 해 놓고 있는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은 건강권을 외면당하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나도 최소 5년 이상 문제가 되었던 해당 업체의 생리대를 사용했었다. 당시 환불 조치를 이행해준다고 해서 보낸 것이 한 상자였다. 그런데 몇 달이 넘어서야 겨우 받은 돈은 구매한 돈의 절반에도 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식약처의 발표 결과 유해성은 없는 것으로 나왔지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사과 같지 않은 사과의 문자와 함께. 몇 푼이라도 환불을 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할 상황이었다.
이후로는 유럽산 생리대를 두 배의 돈을 주고 직구 해 사용하게 되었다. 일단 생리대를 바꾼 후로 분명히 지난 5년간 서서히 줄어들었던 생리양이 처음처럼 늘어나는 것을 경험했다. 정말 생리대 때문인지는 모른다. 나는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그리고 작년의 나는 갑작스러운 복부의 통증으로 쓰러져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까지 가는 경험을 했다. 알게 된 내 병명은 자궁내막증을 동반하는 자궁내막종. 자궁 내막에 있는 종양은 양성인지 악성인지 지켜봐야 한다고 해 지금도 1년째 대학병원을 다니며 경과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를 낳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수술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를 치료해주고 싶다며 의사선생님께서는 약물 치료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 내 건강을 지켜봐주고 계신다.
환경부 의뢰로 가톨릭의대 연구팀이 진행한 해당 조사 내용에 따르면, 이 조사의 대상은 20~30대 여성으로 모두 일회용 생리대 사용 후 생리통, 생리양의 변화, 덩어리혈 증가 등 생리관련 증상 및 통증이나 가려움증 등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연구팀은 생리대 안에 포함된 전체 화합물이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이와 같은 증상들이 생리대 사용과 연관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와 달리 지난번 '유해성이 없다'고 한 식약처의 발표는 생리대 안의 '전체 화합물'이 아닌 특정화학물질을 따로따로 검사해 인체 유해성 여부를 따진 결과였다.
내 부족한 의학지식으로는 내 병과 내가 사용해 온 생리대 간의 연관관계를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정말 해당 생리대가 나의 질병에 영향을 미친 것인지, 다른 원인에 의해 걸린 병이 때마침 시기에 맞게 발병한 것인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용하고 싶지 않아도 달마다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생리대를 지금도 사용하면서, 내 병에 이 생리대가 연관관계를 끼칠지 아닐지 아무 것도 모른 채 걱정만 하며 사용해야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플 뿐이다.
수많은 여성들이 생리대를 사용하고 비슷한 증상들을 경험했다. 그런데 그 많은 여성들에게는 자신이 분명 자신의 몸으로 경험한 일들과 일회용 생리대 간의 인과관계를 증명을 해 낼 도리가 없다. 분명히 몸으로 겪었어도, 식약처에서 "문제가 없다"하면 없는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국가는 계속해서 줄어드는 출산율이 문제라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줄어드는 출산율에는 다른 수많은 사회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것이지만, 출산의 주체가 되는 여성들의 가장 기본적인 건강권부터 이렇게 등한시된 채로는, 출산율을 높이려는 모든 노력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식약처는 이번 환경부의 조사결과를 충실히 반영하여, 일회용 생리대 위해성 조사방법을 전면 재검토하고, 재조사해 본조사 결과를 시민들에게 공개 발표해야 한다. 정부 역시 이를 좌시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노력에 나서주기를 당부한다.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지킬 의무를 지닌다. 월경은 여성으로 태어난 이상 겪고 싶지 않아도 겪을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신체적 현상이기에, 부디 적극적인 노력으로 여성의 건강권을 지켜주길 바란다. 별 게 아니다. 그저 '안심하고 생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