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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판적일상 Mar 14. 2019

공권력은 누굴 위해 존재하는가.

정준영, 승리, 그리고 윤지오 씨를 보며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내 친구가 남편에게 수차례 폭행을 당해 결국 경찰을 찾았을 때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정에서 일어난 개인적 싸움이고, 내용을 들어보니 남편이 감정적으로 순간 욱해서 그럴 수도 있었겠다 말하며 친구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친구는 보복으로 더 심한 폭행을 당해야했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빈 몸으로 집에서 도망쳐야만 했다.





권력자들에게 원치 않는 성접대를 당하며 괴로워 하다 진실을 밝히고자 문건까지 만들었던 장자연 씨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지만, 공권력은 그녀를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 계속해서 짓밟혀 왔던 그 진실을 밝히고자 나선 윤지오 씨를 위해서도 대한민국 공권력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땅히 이뤄져야 할 증인에 대한 신변보호 조차 이뤄지지 않아 국민들의 손으로 청원까지 행해야 했다.





그런데 불법촬영물을 공유하고, 성범죄를 일삼은 유명인 집단을 위해 공권력이 움직였단다. 불법촬영물을 공유한 이의 범죄 행각에 대한 증거를 직접 인멸해 주려 포렌식 복원업체에 '복원 불가'를 요청하는 부지런함까지 보이면서.


범죄의 온상인 그 카톡방에서 경찰'총'장이라는 인물은 너무나도 쉽게 언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고작 그 유명인들의 범죄 행각을 묻어주기 위해 움직였다. 견고하디 견고한 범죄 카르텔 속에 공권력이 존재했다.


도무지 움직일 줄 모르는 이끼 낀 바위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남몰래 구르는 돌이었다.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누굴 위해 있는가?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민인 나는, 우리는,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누굴 찾아야 하는 것인가?






친구는 아직도 남편의 보복을 두려워 하며 결혼생활이 마무리 될 수 있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윤지오 씨는 여전히 두려움을 이겨가며 진실과의 긴 싸움을 하고 있다.


몇년 전 방영되었던 드라마 '피노키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진실을 알고 있는 자가 한 명일 땐, 그 진실을 가리기 위해 한 명의 입만 막으면 되고, 두 명일 땐 두 명의 입만 막으면 되지만 진실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온 국민일 때, 과연 지금까지 그래왔듯 진실을 가린다고 가릴 수가 있을까?







추악한 진실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물론 썩어빠진 뿌리를 제대로 뿌리뽑는 데에 굉장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잘 안다. 그럼에도 모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끝까지 뿌리를 뽑기 위해 데롱데롱 매달려 있을 것이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그들을 찾아갈 수 있는 그 날까지 그래야만 한다.


이것은 그리 큰 바람이 아니다. 그저 내 친구가 똑같은 상황에서 아이를 안고 경찰서를 찾았을 때, 당장 남편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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