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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Sep 01. 2020

열정을 배운다는 것

우리가 책을 할 수 있는 일들

열정을 배운다는 것

_<침묵으로 가르치기>를 읽고


도널드 핀켈 교수가 쓴 <침묵으로 가르치기>라는 책이 있다. 핀켈은 이 책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선생이 필요한가’에 대해 묻고 있다. 제목에도 드러나지만, 핀켈은 현란한 말솜씨로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전달하는 선생보다 ‘학생들을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선생이 되고자 노력했고, 그 방법으로 ‘침묵’을 택했다. 그는 자신이 침묵하는 대신에 ‘다른 것’들이 말하도록 했다. 고전 같은 위대한 문학작품이 대신 말하도록 하고, 학생들이 말하도록 하고, 글쓰기로 말하도록 하고, 동료 교사가 말하도록 하고, 학생들이 탐구하도록 했다. 이상적인 교육 현장의 모습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핀켈은 그 배움의 경험을 각자 떠올려 보라고 권한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고 가장 중요한 지식을 배운 경험 두세 가지를 떠올려본다. 이를테면 살면서 오래도록 중요한 영향을 미친 배움의 순간이나 사건을 적는다.(p.29)


나는 지난 주 이 책을 읽다가 문득 한 명이 생각났다.


5년 전쯤 열흘짜리 출판인 해외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다. 어찌어찌 서류와 면접에 통과해 편집자 3명, 마케터 1명, 관계자 1명, 그리고 선배이자 리더, 이렇게 6명이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와 그 안에서 운영되는 ‘비즈니즈 클럽’에 참석했다. 비즈니스 클럽 안에서는 출판과 관계된 세미나와 강의가 하루 종일 열렸고, 그곳은 온통 책과 출판 이야기뿐이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책과 출판에 대해 고민하고 말하고 들었다.

각자가 정한 주제와 관련된 강연이나 세미나를 정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아침 식탁에 6명이 모여 앉아 푸석한 얼굴로 하는 ‘출판’ 이야기라니…. 누가 시켜도 그렇게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우리는 책과 출판 이야기에 ‘몰입’했고, 그 몰입이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10분 거리의 북페어 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도 자료를 읽었을 정도니.

나는 그때 좋아하는 일을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 뭐가 좋냐고 하겠지만, 회사에서 나눴던 이야기들과는 많이 달랐다.(그 이야기들도 소중하지만;;) 나는 책과 출판 앞에서 순수해졌다. 매출, 판매, 마감이라는 단어가 지워졌고, 책 본연의 얼굴이 내 앞에 드러났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북페어 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강연을 듣고 메모하고 질문하고 받아 적으며 공부했다. 그렇게 반나절 각자 돌아다니며 공부를 하다가 점심시간에 잠깐 만나서도, 오후 일정이 끝난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책과 출판 이야기는 멈출 줄 몰랐다.


사실 우리를 하루 종일 달리게 한 사람은 함께 간 리더이자 선배였다. 그는 우리 넷의 주제를 우리보다 더 빠삭하게 꿰고 앉아 그때그때 방향을 잡아주었다. 아침이면 어떤 강의와 세미나를 들을 건지 물었고, 그것이 각자의 주제와 맞는지, 더 좋은 내용은 없는지 함께 고민해 주었다. 그는 매 식사 자리에서, 세미나 중간 중간에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키워드를 슬쩍 던져주었고,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신나게 떠들었다. 틈틈이 좀 쉬려고 하면 각자 들은 내용을 서로 공유하고 토론하도록 했다. 억지스럽거나 강요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물론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 이 선배는 책과 출판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진짜구나.’

그런 마음과 열정이 흘러넘치니 같은 일을 하는 후배들에게도 관심과 애정이 드러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본 그는 선생의 자질이 타고난 사람이었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우리를 몰두하고 몰입하게 만들었으니까.


앞에서 말한 <침묵으로 가르치기>의 저자 핀켈은 선생은 ‘침묵’하고 다른 것들이 대신 말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학생들이 입이 열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자면 선생도 자신의 과목이나 콘텐츠를 진짜 좋아해야 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이나 수강자들은 그 마음과 행동을 늘 눈여겨본다. 선생이 가르치기 위해 억지로 공부하는지, 정말 좋아서 공부하는지. 또 살아 있는 호기심인지, 박제된 지식으로 (좋아하는 척하면서) 우려먹는지 말이다.

우리를 이끌고 북페어 장을 누비고 다녔던 그 선배는 ‘말하기’에도 열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핀켈이 말하는 침묵하는 선생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소중한 배움의 경험을 떠올리며 그가 생각난 것은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가 좋아하고 때문인 것 같다. 또 그 열정이 진짜라서 그렇다.


우리를 움직이게 해준 선배의 열정이 오늘따라 무척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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