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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ribe Mar 02. 2023

Why Am I?

히브리 성서를 통한 인간 탐구

프리츠 야코프 하버(Fritz Haber, 1868~1934)독일계 유태인 화학자였다. 유럽이 재앙적인 식량난을 겪을 위기에 놓이자 그는 1909년, 공기 질소를 이용해 암모니아를 합성(하버법)하는 절차를 통해 화학비료를 대량으로 생산있게 되었다. 공로를 인정받아 1918년 노벨 화학상수상했는데, 그때 이미 하버는 수많은 생명을 식량난으로부터 살리기도 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의 암살로 시작된 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저명한 과학자들은 학자이기 이전에 독일 민족주의자이기에 독일의 승리에 기여하겠다고 헌신했다.  하버 역시 독일군 장교가 되어 적지에 투사할 있는 독가스를 개발하여 훗날 "화학전의 아버지"기억되기도 한다. 


프리츠 하버 (1919년)

인간이 본질적으로 과연 선하냐 악하냐는 질문에 대해 수많은 이론과 난무하지만 프리츠 하버의 사례를 봐서도 알 수 있듯, 모든 인간은 놀라운 선을 베풀 수 있음과 동시에, 입으로 표현할 수 없는 잔혹함도 보일 잠재성을 안고 있다.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 "전쟁 영웅"의 말년이다. 프리츠 하버가 1차 세계대전 당시 너무나 적극적으로 독일군을 도왔던 데는 독일인 특유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들 수도 있다. 실제로 유대인이었던 하버는 독일군 장교가 되기 전에 기독교로 개종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드러 섰을 때 그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독일 애국자이자 참전용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쫓겨나듯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도중 사망하고 만다.  


이처럼, 인간의 내면뿐만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더 넓은 세상에 대한 질문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철학자들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인간의 존재 이유와 목적 즉 인간상태(The Human Condition)에 대한 고찰을 한다.  인간의 현실은 어떠한가? 인간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 문제는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인가? 이 질문들, 세상 속이라는 내러티브 안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를 종합해서 우리는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히브리 성서의 세계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그들의 세계관에 반영했다. 인류와 히브리 민족의 기원을 다루는 창세기에 기록된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예전 글에서 인간은 신의 대리 통치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한 신의 형상대로(창 1:27) 만들어진 생명체였다. 


여기까지는 인간은 굉장히 긍정적이고 행복한 여정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야훼는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이라는 사는 동안 지혜의 나무의 열매는 먹어서는 안 된다고 명하는데, 먹을 경우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생명체 중 가장 간교("a-rum" עָרוּם)했던 뱀은 여자에게 접근해 그 열매를 먹으라고 유혹한다. 인류는 최초의 죄를 범하게 되고 이로 인해 낙원으로부터 쫓겨나 심판을 받게 된다. 


야훼는 먼저 여자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고 남편이 그녀를 다스릴 것이라고 말한다(창 3:16). 남자에게는 그의 행동으로 땅이 저주를 받고 앞으로 평생 수고하여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창 3:17, 18). 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금지된 열매를 먹은 결과 이들은 물리적 고통, 성 갈등, 생존을 위한 가혹한 노동,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보이지 않게 지켜보고 호시탐탐 인간을 노리는 죽음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성서 어디에도 신이 마법이라도 부린 듯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내린 심판이라는 말은 없다. 창세기의 저자는 지금 인류가 겪는 불행한 현실은 최초의 인류가 스스로 선택하고, 자초한 당연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 3:6) 


신이 만든 우주의 창조적 질서가 무너지는 순간을 담은 문장이다. 이 짧은 문장의 요소를 분석해 보면 죄를 범하도록 유혹하는 "뱀", 유혹의 대상이자 범죄자인 "여자", 죄를 범하기 직전에 "보다"(ra'ah רָאָה)는 액션, 그리고 "먹음직"(문자 그래도 먹기 "좋은"/"tov"טוֹב)한 죄의 유혹, 실질적인 죄인 "열매를 따먹"는 행위가 있다. 


죄의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훗날 이들의 조상, 그리고 세상의 질서 자체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열매를 먹은 순간 인간은 벗은 상태라는 걸 알게 되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렸다(창 3:7).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면 본능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게 되고 그것을 어떻게든 감추고 싶어 한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벗은"("e-rom" עֵירֹם )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뱀을 묘사하는 형용사 간교("a-rum" עָרוּם)와 어근이 동일하다. 마치 범죄의 부끄러움과 수치심과 더불어 이들을 유혹한 뱀처럼 더 큰 죄를 저지를 "지혜"가 생긴 듯하다.  


창세기 3장 6절은 이후부터 시작되는 히브리 성서의 수많은 내러티브에 다시 등장하게 되는데, 이 세계관이 바라보는 인간상태의 현실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원죄의 파급효과

창세기 3장은 지상의 인간들에 의한 범죄였지만 창세기 6장에는 천상계의 질서가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창 4:2~4)


여러 가지 해석과 논란이 많은 문장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야훼와 함께 천상계를 살아가는 생명체, 한 마디로 천사들이다. 이 천사들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보고" 이들을 "아내로 삼는 걸" 볼 수 있다. 이제 천사들이 에덴동산의 하와, 인간 여자들이 금지된 열매의 위치에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행위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하와와 천사들이 열매의 먹음직함, 여자들의 아름다움을 본 것이다. 


이번에는 인간과 천사의 범죄로 네피림("거인")들, 고대에 명성 있는 사람들이 자식으로 태어났는데, 실제로 고대 근동의 명성 있는 자, 즉 왕들은 모두 자신이 신적인 존재라고 믿었고 백성들에게 선전했다. 당시 바벨론의 지배를 받고 있던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살아가던 세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인간의 범죄의 파급효과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야훼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사...(창 4:5~6)


이 네피림으로 인하여 세상 가운데 고통과 악만 커져간 걸 볼 수 있고 신은 결국 홍수라는 재난을 통해 인류를 멸하겠다는 계획을 품게 된다. 


네덜란드 화가 헤이로니무스 보스 작품, "네 가지 종말"(1514년) 중 천사들의 타락(좌)과 홍수(우) 장면 (위키백과)


죄의 유혹과 대가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정말 없는 듯한데, 이는 야훼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소위 선택받은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노아의 홍수 이후 야훼와 처음으로 친밀한 관계를 가지게 된 아브람과 그의 아내가 이집트로 이주하는 일화가 있다. 창세기 12장에 기록된 이 일화를 보면 아브람은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사래를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거짓말한다. 

아브람이 이집트에 이르렀을 때에 이집트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함으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창 12:14, 15) 


이 문장을 조금만 면밀하게 관찰해도 타락의 요소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리따움"이 충만한 "그 여인"(사래)라는 금지된 열매를 "보고", 유혹을 받는 "이집트 사람들", "바로의 고관들", 그리고 죄의 행위("궁으로 이끌어들여")가 다 있다. "바로"는 파라오라고 고대 이집트의 왕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의 신 라의 자손이라고 믿었다. 한 마디로 네피림 중 하나다. 


이 일화에는 에덴동산의 뱀처럼 바로와 고관들을 유혹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자신의 아내를 누이로 속인 "아브람"이다.  신의 선택받은 인간이 오히려 뱀의 역할을 수행하는 걸 볼 수 있다. 이 역시 원죄의 결과로, 지금까지 분석한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히브리 성서의 내러티브는 이렇게 유혹, 죄, 그리고 타락의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걸 알 수 있다. 아브람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 다윗 역시 자기 장수의 아내, 밧세바아름다움으보고 그녀를 취하고 그 대가로 야훼는 그의 자식을 죽인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4)


큰 사람, 작은 사람, 지상과 천상계의 누고도 죄의 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걸 볼 수 있는데, 실로 죄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 보여주는 구절이 있는데(삿 21:24),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은 "자기의 소견대로", 문자 그대로 혹은 비유적으로 "자신이 보기에" "좋은" 선택을 고집하여 야훼로부터 관계가 단절되어 있는 한 인간의 불행, 고통,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결코 해결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희망 

하지만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다. 히브리 성서의 첫 두루마리 창세기 때부터 이미 인간에게 희망이 보인다. 신에게 거역한 인간도 신에게 돌아온다면 죄와 타락의 악순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다시 아브람의 이야기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조카 롯과 땅 나누는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다. 두 사람 재산과 가축이 너무 많아져 서로 다른 가는 길을 가는 게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는데, 아브람은 조카 롯에게 먼저 땅을 고를 수 있도록 선택지를 주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야훼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이집트 땅과 같았더라(창 13:10) 


이번에도 롯은 자신의 "눈을 들어" 그 땅을 "보았다". 그의 눈에는 물이 잘 흐르고 에덴동산, 그리고 나일 강이 살 찌운 이집트처럼 풍요로워 보이는 땅을 선택해서 이주했다. 그러나 그곳은 머잖아 신의 심판으로 소멸될 소돔과 고모라 인근이었다. 


이번에는 아브람의 차례였다. 하지만 그가 어떠한 말을 하거나 선택을 하기 전에 야훼가 그에게 말을 한다. 

...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4~15)  


롯과 똑같이 야훼는 아브람에게 "눈을 들어... 보라"고 명령한다. 창세기 3장의 뱀의 꾐이나 롯처럼 이성이 아니라 이번에는 야훼가 보여주는 모든 가나안 땅을 보게 된다. 성서에서 아브람의 내러티브가 끝날 때까지 그는 땅이 없는 방랑자 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지만 야훼는 그와 한 약속을 기억하고 아브람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을 건국하게 되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쩌면 여기서 아브람은 하와가 저지른 실수와 반대되는 야훼를 신뢰함으로써, 인류 구원의 통로로서의 목적을 감당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이처럼, 성서는 타락한 인류 중에서도 여전히 인간을 이용해서 역사를 일으키는 걸 볼 수 있는데, 결국 인간은 진정으로 행복을 뛰어넘어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절대적 진리 혹은 최소한 나의 안녕과 행복보다 더 큰 목적을 따라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일 수도 있다. 


Next Theme 

지금까지 우리는 히브리 성서에서 죄가 개별적인 인간의 상태를 탐구했지만, 다음에는 그 타락한 인간이 모여서 공동체, 사회, 그리고 나라를 형성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히브리 성서의 국가관과 세계관을 더 깊이 있게 파고들 것이다. 


바벨탑 (Lucas van Valckenborch, 1594년,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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