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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ribe Feb 26. 2022

스포츠? 스펙터클!

세계 3대 종교 Part 1

"종교"란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절대자 혹은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 체계를 의미한다. 그 믿음의 대상, 교리, 그리고 의식과 같은 행사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종교가 등장한다. 


이 글의 부제목만 보면 기독교, 무슬림, 불교의 태동을 다룰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유교, 도교와 같이 신이나 숭상 대상이 불명확한 종교는 있어도, 교리마저도 경전 밖에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더라도 행사가 없는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종교는 인간의 고뇌와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먹고 자란다. 야훼, 알라, 부처보다도 많은 신자들을 거느리고 훨씬 보편적인(Catholic)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대 신들이 있다. 바로 경쟁, 과학, 그리고 돈이다. 


이들에게는 어느 종교와 마찬가지로 신성한 경전, 의식을 거행하는 제사장, 숭배의 대상, 그리고 예배식이 치러지는 구별된, 거룩한 공간도 존재한다. 이번 시리즈를 통해서 인간의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치러 온 의식들에 대해 알아가고 우리 자신과 사회와 한 걸음 가까워졌으면 한다. 


전쟁의 신 하면 바로 "아테나 여신", 좀 배우신 분들은 아레스(Ares) 혹은 로마의 마스(Mars)가 생각 날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들 중에 스포츠, 혹은 운동의 신이 있을까? 놀랍게도 있다. 신들의 사자이자, 유명 의류 브랜드와 연결되는 에르메스(Hermes)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에르메스가 나그네, 목동과 운동선수들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고대 올림픽이 에르메스의 이름으로 치러진 것도 아니고, 인류가 치른 모든 전쟁이 성전('Holy War', Crusade)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인류는 그 태동기부터 서로 경쟁해왔고, 그 경쟁을 통해 얻어내고자 하는 결과, 변화를 갖기 위해서는 충분히 감수할 만한 위험과 고통이었다고 판단하며 더 단단한 굳은 살을 키워오며 성장해왔다. 


고대 아티카 도자기에 새겨진 에르메스

이번 편에서는 인류의 생존 본능이 만들어 낸 경쟁 "의식"(내면의, 그리고 종교적인)에 대해 알아보자. 


개식 선포 

호메루스의 일리아스에 보면, 아가멤논, 아킬레스, 그리고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영웅들이 트로이 전쟁을 치르는 중임에도, 잠시 싸움을 멈추고 다양한 상품을 걸고 원반 던지기, 달리기 등 경기를 치르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종목을 막론하고 스포츠는 참가하는 자, 관람하는 모든 자를 열광시키고 단합시킨다. 


최초의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단합과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제우스의 이름으로 치러졌다. 올해까지도 열렸던 현대 올림픽에서도 마찬가지다. 평화의 이름으로 참가국 선수들이 모여서 정해진 규율과 예식에 따라 치르는 대규모 행사이다. 평화가 신이고, 각국 관중들이 성도들이라면 실제로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은 어쩌면 직접 예식에 참여하는 사제들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모든 걸 계획하고 주관하는 개최국은 이 행사의 대제사장, "Pontifex Maximus"이지 않을까 싶다. 


불과 1년 전에 있었던 도쿄 올림픽이 여러 의미로 올림픽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듯하다. 올림픽이 개최국의 국가경쟁력의 Showcase로 이용되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2021년 일본, 1988년의 한국과 1936년 나치 독일마저 올림픽을 통해 이들의 문화, 국가력을 과시하고 전시했다. 하지만 이를 약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올림픽을 개최할 능력이 되고, 개막식과 같은 스펙터클("Spectacle", 화려한 볼거리)을 통해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한 일본, 선진국 대열에 합류해 북한과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대한민국, 그리고 게르만 민족의 우월함을 세계에 보여준다. 이를 넘어서서 올림픽을 계기로 이들이 추가하는 국가의 모습을 완성하고자 하는 거의 종교적인 염원을 보여준 것 같다. 대회가 끝나면 아무런 쓸모가 없어질 줄 알고도 이 신성한 의식이 치러질 대규모 경기장들이 지어지는 데, 이는 성도들이 빚을 내면서까지 화려한 예배당을 짓는 것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스포츠"라는 종교에서 신앙의 대상이 누군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신이 가인과 아벨 둘 중 한 사람의 제물을 받아들인 것처럼, 모든 신자들의 이같은 기도가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경쟁과 전쟁의 미묘한 경계선 

종목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프로 운동경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국가(國歌)가 연주되는 전통이 있다. 월드시리즈 시작 전 군인들이 대규모 성조기를 펼치고 유명한 팝가수가 부르는 "Star Spangled Banner"를 들으면 당장이라도 미국이라는 나라에 충성을 다짐하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처럼 스포츠는 국가의 안녕과 기원하기 위한, 우리의 가장 오래된 종교의식 중 하나이다.  


하지만, 스포츠는 우리 인류가 조금은 더 문명화되었을 때 생겨난, 규율 내에서만 치러지는 신사적인 형태의 경쟁 "의식"이다. 원래 인간은 그렇게 신사적인 존재가 아니다. 애써 부정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규칙을 무시하는 방법까지 고안해서 상대방을 해치면서까지 경쟁에서 이겨 나 자신, 혹은 내가 속한 집단의 번영을 이루어내야 한다. 메이저리그 혹은 NFL 경기에서 성조기를 들고 나오는 분들은 거의 항상 현역 군인이거나 참전 용사들이다. 그리고 미국 국가의 클라이맥스인 "Land of the free, home of the brave" 가사가 나올 때 꼭 전투기 편대가 멋지게 경기장 하늘을 가로지르며 관중들의 함성이 터져 나온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국민들이 지금 평화롭고 풍요로운 이 나라에서 편안하게 야구 경기를 볼 수 있는 건 타지에서 전쟁을 치르고 온 이 장병들 덕분이다. 


고대에 스포츠와 전쟁이 경계선은 늘 모호했다. 현대 올림픽에도 레슬링, 펜싱, 복싱과 같은 투기 종목들이 많이 남아있다. 중세, 근세 때까지 신사들끼리 결투를 벌이다가 상대방을 죽이는 건 불법이 아니었다. 에르메스가 운동선수들의 수호신인 건 아무도 모르지만, 그에 비해 전쟁의 신은 여러 가지 이름과 얼굴을 가진 유명인사다. 역사학자들은 모든 전쟁을 성전이라고 부르진 않지만, 전쟁이라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종교의식의 형태를 보여주는 건 확실하다. 


Jean-Leon Gerome의 작품 Pollice Verso로 콜로세움의 검투사 경기하면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이미지이다

이를 굉장히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로마의 검투사 경기이다. 로마 사회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가 콜로세움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검투사들의 경기이다. 로마 시민이라면 신분, 직업,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들어가서 무료로 온갖 구경거리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학자들에 의하면 오전에는 검투사들이 호랑이 같이 이국적인 동물들과의 대결, 그리고 오후에는 검투사들 간의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중간중간 쉬는 날에는 국가 반역자, 혹은 기독교 신자들의 처형을 구경할 수 있었다. 특별한 날에는 검투사들에게 각기 역할을 부여해서 포에니 전쟁과 같이 역사적 의의가 있는 전쟁이나, 영웅 서사시에 나오는 전쟁을 재현하기도 했다. 콜로세움 경기장을 물로 가득 채워 해전을 구현해내기도 했다. 이마저도 로마 역사가들의 과장이 아니라, 콜로세움 내부에 물을 공급하는 시설들이 발견되어 사실로 증명되었다. 


"글래디에이터"(2000) 같은 영화를 보면 검투사 경기가 아무런 규칙도 없이 그저 최후의 생존자가 남을 때까지 목숨을 건 싸움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모든 경기가 1대 1로 치러졌으며 심판도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스포츠맨십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잔혹한 경기를 통해 많은 목숨이 희생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검투사 경기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로마 황제나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시민들의 시간을 낭비하고 국가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는 있었지만,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될 때까지 시민들과 황제가 경기를 관람하러 콜로세움을 찾아갔다. 


그렇다면, 로마는 뭐 때문에 이런 잔혹한 행사를 국가 차원에서 실시하고 유지했던 걸까? 로마 종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신이 두 명 있는데, 첫 째는 사랑, 성의 여신인 비너스(Venus)이다. 카이사르를 비롯한 로마 황제들은 스스로 비너스의 후손이라고 믿어왔다. 두 번째는 바로 전쟁의 신 마스(Mars)이다. 이유는 바로 로마를 건국한 로뮬러스(Romulus)가 바로 마스의 후손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로뮬러스는 자신의 쌍둥이 동생인 리무스(Remus)를 죽이고 이웃 마을들을 정복하면서 로마의 영향권을 확대해가고, 로마는 그 정신을 이어받아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서서 온 지중해 세계를 자신의 휘하에 두게 되었다. 


로마뿐만 아니라 고대 종교의식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살아있는 생명체를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행위이다. 로마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일부 학자들은 콜로세움에서의 검투사 경기가 마스에게 드려지는 의식이라고 주장한다. 로마를 작은 늪지대 마을에서 세계를 정복한 제국으로 만들어준 전쟁의 신이 승리를 허락한 전쟁들을 재현하고, 그 과정에 유능한 검투사들과 노예를 칼로 찔러 제물로 드려지는, 모든 면에서 이는 시민들에게 로마의 국력을 현시함과 동시에 더 강력한 로마를 기원하는 신성한 의식이다. 


선전포고 

로마는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콜로세움에서는 경마 경기밖에 볼 수 없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 이때부터 올림픽마저 불법화되었다. 전쟁의 신에게 올려지는 의식은 강제로 막을 내려야 했을지라도, 로마, 그리고 기독교가 지배하는 서방세계(Christendom)에게 전쟁은 여전히 이들이 믿는 신이 요구한다고 믿었다. 유럽의 모든 국왕은 동일한 신이 자신의 편이라 생각했으며 그 신의 이름으로 이들은 치열한 전쟁을 치렀고, 이는 1차 세계대전이라는 재앙을 낳았다. 


신에게 올려지는 제물이 되는 동물은 무척이나 소중하게 다뤄졌다. 구약성서에서도 야훼는 이스라엘에게 제물을 올릴 때는 가장 상태가 좋은 염소와 양만 올려져야 한다고 명령한다. 제사장의 칼에 목이 베이기 직전에 이들은 깨끗하게 씻겨지고 여러 치장이 입혀진다. 콜로세움에서 싸우는 검투사들도 몸에 향유를 바르고 마사지까지 받았고, 페르시아 군대에 맞선 300명의 스파르타 용사들도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걸 알아 서로의 몸에 향유를 발라 전장으로 뛰어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대에서도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출정을 앞둔 군인들은 정말 성대하게 환송을 받는다. 


전쟁을 치르지 않더라도 아직까지는 군에서 복무하는 거 자체가 고귀한 희생으로 여겨진다. 그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훈련한 사관생도들은 멋진 제목에 꽃목걸이까지 치장하면서 멋지게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의 사고방식은 정말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은 응답 하는가? 

고대 그리스어로 경쟁은 "Agon"(άγόν)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이 단어가 영어로 "고통"을 뜻하는 명사 "agony"의 어원이다. 오죽하면 한 아테네의 시민은 자기 동료에게 말을 안 듣는 노예가 있다면 올림픽에 출전시키라고 충고한 기록까지 남아있다.  


인류는 실제로 다양한 형태의 경쟁을 통해 성장해왔고, 우린 경쟁 사회를 비판적으로만 바라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린 본성적으로 경쟁에 열광한다. 학창 시절 때 싸움 구경해 본 경험이 있거나, 오디션 프로그램이 기록하는 시청률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으로서 한 가지 꼭 기억했으면 하는 게 있다면, 경쟁에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어떤 경쟁에서는 악수로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지만, 전쟁을 제외하고도 그런 식으로 포장하지 못하는 형태의 경쟁 의식도 너무나 많다. 


한 가지 감사한 점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거처럼 국가대표 선수가 금메달을 따지 못해서 비난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 가장 경쟁이 익숙한 민족이지만, 인간은 그래도 승패를 넘어선 아름다운 노력과 도전을 바라볼 수 있어 오늘 하루도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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