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일이 입추였다고 한다. 해가 지고 난 후 공기가 달라진 걸 느끼게 된 게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한낮의 뜨거운 태양으로 차 안은 섭씨 삼십팔 도에 육박하지만 뭔가 달라진 걸 느끼게 된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도 덥고 습해서 바깥공기를 들이마시는 게 습식 사우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의 느낌이 들게 한다.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더위는 더해가고 내 체력은 더 떨어지고 있다. 특히나 작년과 올해는 그 낙차가 더 크게 느껴진다. '이런 식이면 환갑 때는 일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 새롭게 만들어진 단어가 나한테는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로 <근수저>라는 말이다.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단어들을 처음 들었을 때는 단어 자체도 싫었지만, 그 단어들을 만들어낸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혐오스러웠다.
그런데 <근수저>라는 단어는 나에게 친해져야 하는 단어로 다가온다. 내 몸뚱아리를 지탱해 주고 평범한 일상을 가능케 해 줄, 소중한 근육을 차근차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게 안되면 최소한 지금의 근육량이라도 잘 지켜보자는 생각도 든다.
생각은 참 발전적인데,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차사고와 휴가, 그리고 그 후로 이어지는 기간에 발목 통증과 붓기로 운동을 못 간지가 삼주가 다 되어간다. 소염 진통제를 며칠 복용하니 차도가 있다. 다음 주부터는 운동을 슬슬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3박 4일 동안의 휴가 기간에 뜻하지 않게 먹방을 찍으며 일주일치 음식을 먹어버린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 체중계에 올라가는 게 두려웠지만 막상 올라가 보니 몸무게와 체지방이 각각 0.8킬로그램씩만 증가해 있었다. 내 예상보다 상당히 작은 수치였다. 그 이유를 찾아보니 활동양이 평소보다 월등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휴가 첫날 이만 보를 걷고, 둘째 날 만 팔천 보를 걷고, 셋째 날 만 오천보를 걸었다. 집에 돌아오는 날에는 만 보를 걸었다.
평소 저질 체력과 무기력의 콤비네이션으로 활동양이 평균 이하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단순히 체력이 약해서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시간이 많다고만 생각했었다. 이번 휴가는 우리 세 가족의 “재결합”이었다고 말할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 휴가에서 돌아와서 나는 누워있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생각해 보니 딱히 체력이 좋아진 것도 아닐테고, 어느새 나를 짓누르던 어둡고 무거운 기운들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나는 활기를 되찾았고, 더 이상 밖에서 가면을 쓰지 않아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바뀌었다.
요즘만 같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방학 동안에는 오전 9:30에 수업이 시작된다. 출근길 교통 정체를 뚫고 사십 분 또는 그 이상을 달려 세 타임씩 수업을 하고 오면 지금 이 시간에는 눈이 감긴다.
돌아오는 길 차 안 온도는 에어컨을 아무리 강하게 틀어놔도 어느 선 이하로는 떨어지질 않는다. 그래서 운전할 때 더 멍해진다. 차 안은 시원한데 밖의 더위가 느껴져서 몸이 축축 쳐진다.
오늘은 유난히 저학년들 결석이 많았다. 여름 막바지에 짧은 여행이나 긴 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많았다. 숫자가 적으니 상대적으로 통제할 아이들이 적어서 수업이 수월했다. 이런 내 마음이 너무 티가 났는지, 야무지게 생긴 일학년 여학생이 "선생님, 왜 이렇게 행복해 보이세요?" 하면서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내 팔을 쓰다듬었다. 0.1초 당황했지만 나는 “방학이잖아”라고 둘러대며 웃었다.
1, 2학년들은 어느 학교나 에너지가 넘쳐난다. 숫자도 많아서 제일 힘이 드는 반이다. 이런 아이들이 3, 4학년만 돼도 한 두 명 빼놓고는 점잖아진다. 그들의 그 많던 에너지는 학습하는데 빼앗기게 되는 걸까? 그 이유가 궁금할 따름이다.
우리 집에 있는 “먹고 대학생”-예전에 어른들이 쓰던 말이다-도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면 방학이 끝난다. 세 명이 한 가족 완전체로 지내면서 휴가 이외에는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다. 이 아무 일 없었다는 것이 나에게 큰 안정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이를 옆에 끼고 있으니 느껴지는 안정감이기도 했다.
사계절을 암막 커튼으로 꽁꽁 싸메놨던 내 방이었는데, 요 근래에는 어두운 게 싫어져서 해 뜰 무렵부터 커튼을 열어젖히고 바깥의 빛이 들어오게 하고 있다. 새벽부터 한 시간 동안 틀어놓는 음악도 느리고 어두운 곡보다는 조금은 템포가 빠르고 밝은 곡을 선택하고 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냥 내 마음이 그런 곡이 듣고 싶어진 것이다.
새로운 일상으로 가는 느린 변화가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