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친구 두 명과 동네에 있는 꽤 큰 사설 독서실을 다녔었다. 그 당시 친구 오빠는 연대 법대생으로 같은 독서실을 다녔었고, 그곳은 남녀의 독서실 공간이 아예 분리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 또 서울대 법대생의 무리 20여 명이 다니고 있었다. 그 무리에는 여학생도 한 서너 명 포함되어 있었다. 그 무리들은 주말에 식사 때가 되면 우르르 나와서 위층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며 한참 수다를 떨다가 독서실로 들어가곤 했었다. 그 무리가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서울 법대생이라는 것은 내 친구의 오빠가 확인을 해줬었다.
그 무리 중에 한 남자를 우리 셋이 같이 좋아했었다. 이름은 가물가물 하지만, ‘신동욱’이었던 것 같다. 하얗고 갸름한 얼굴은 귀공자 분위기가 났고, 키도 크고 다리도 길었었다. 맨날 초록색 바탕에 흰색 줄무늬 스웨터를 입고, 검정색 츄리닝 고무줄 바지를 입고 다녔었는데, 그렇게 입고 다녔어도 스타일이 멋있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우리 셋은 보일 듯 말듯한 위치에서 반층 위에 있는 그를 보며 행복해했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신경이 쓰였는지 서울 법대팀은 우리 집에서 독서실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위치로 독서실을 옮겨버렸다. 그 무리들이 사라지고 나서 친구 오빠에게서 그들이 아예 독서실을 옮긴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날 우리 셋은 독서실 계단에서 같이 울었다. 그 오빠가 너무 보고 싶었고,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는 사실 때문에. 이후로 한동안, 아니 몇 달 동안 가슴이 시렸었던 기억이 난다. 그게 나의 공식적인 첫사랑이자 짝사랑이다.
혹시 80년대 말에 반포 한신아파트 근처 독서실 다녔던 그때 그 사람을 아십니까?
이 이야기가 생각난 이유는 책꽂이에 있는 책을 둘러보다가, 알랭 드 보통의 책이 눈에 들어와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