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작년 초에 시작된 초기 코인 제공 ‘ICO (Initial Coin Offering)’ 붐은 전 세계 스타트업과 투자자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17년 한 해에만 총 552개의 ICO가 진행되었고, 약 $7B 모금되었습니다. 이후 18년 5월 말, 17년 ICO 누적 금액의 2배를 돌파하면서 여전히 많은 프로젝트들이 ICO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트코인 가격이 최고점 대비 70% 이상 하락하면서 ICO 시장은 위축되었습니다. 더불어 규제의 위험을 경고하며 많은 전문가들은 ICO 버블이 곧 꺼질 것이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18년 10월 31일 발표한 Morgan Stanley 보고서는 ‘ICO들은 크게 실패하는 중이고, 실패는 빠르다. (ICO’s are largely failing, and failing fast)’라고 말하며 ICO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7년 진행한 약 64% ICO들이 잠재적으로 실패했으며 이것은 1년 이내 스타트업 실패율인 25% 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규제가 없기 때문에 많은 사기가 일어났습니다. 암호화폐 벤처 캐피탈(Venture Capital) 및 엔젤 투자자(Angel Investor)들은 저렴한 가격에 토큰을 구입한 뒤 여러 마케팅 회사를 이용하여 FOMO를 조성하였고, 공동구매팀을 통해 마치 할인 상품인 것처럼 개인에 판매하였습니다. 또한, 이들 중 일부는 개인 투자자들보다 사전에 판매하여(Front dumping) 이윤을 만들었고, 다른 일부는 의도적으로 가격을 올리고 내리는 펌프 앤 덤프(Pump and Dump)가 성행하였습니다. 이를 경험한 투자자들은 이제 ICO가 도박 게임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투자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지금껏 ICO는 이론일 뿐이며, 실제 비즈니스가 아니었습니다. 블록체인으로 세상을 바꾼다던 백서에 나온 사업계획은 대부분 추상적이거나 먼 미래의 일이었고, 투자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개발보다는 마케팅이 우선시되었습니다. 네트워크에 실제 참여자를 유입시켜 토큰 가치를 올린다고 주장하지만, 암호화폐 경제 생태계를 고려한 토큰 이코노미(Token Economy)는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투자자들을 보호할 규정도 없으며, 거래의 보안성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잠정적으로 중단된 암호화폐 프로젝트의 투자자들은 상환청구권(Recourse)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대중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99% 암호화폐는 가까운 미래에 사라질 것이며, 가격은 0에 수렴할지도 모릅니다. 현재 ICO 투자자들은 어떠한 보호장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ICO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증권형 토큰 제공 ’STO (Security Token Offering)’입니다. STO는 기존 IPO 방식과 비교하여 비용이 저렴하고 빠른 현금화가 가능합니다. 더불어 합법적이기 때문에 발행 기업과 투자자 모두가 보호되며 리스크를 줄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STO는 미국 금융감독원(FINRA)과 미국 금융감독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의해 면밀히 감시되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Utility Token과 Security Token의 개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블록체인 개발자 및 사업자, 거래소 운영자, 그리고 암호화폐 투자자는 반드시 Utility Token과 Security Token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규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이 아직도 Utility Token과 Security Token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Dapp에서 지불 용도로 쓰이는 것을 Utility Token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Utility Token을 보유 혹은 지불함으로써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Utility Token의 구매는 투자(Investment)로 여겨지기 않습니다. Utility Token이 되려면 발행 주체의 수익 보장이 없어야 하며, 오직 수요와 공급 법칙에 의해서만 가격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마치 스타벅스 선불카드와 같습니다.
Utility Token 예시: Civic, Golem, 0x, Filecoin
반면에 Security Token은 블록체인 기반의 실제 금융의 유가증권(actual financial securities)입니다. 주식, 부동산 등 소유권이 있는 모든 자산(Assets)을 토큰화하여 거래할 수 있는 디지털화된 유가증권(Digitized Securities)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즉, STO 투자자들은 회사의 지분, 부채, 배당금을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Security Token 예시: BCAP, Lottery.com, Science Blockchain
(참고로, Polymath는 Security Token 발행 플랫폼이고, Tzero는 거래소입니다.)
올해 초, SEC 의장인 Jay Clayton은 “내가 보아왔던 모든 ICO들은 유가증권이다! (Every ICO I've Seen Is a Security)”[3]라고 언급하였고, 이어서 “ICO는 유가증권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가증권을 규제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ICOs that are securities offerings, we should regulate them like we regulate securities offerings.)”라고 하며 강력한 규제 의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ICO가 UTO(Utility Token Offering)가 아닌 STO(Security Token Offering)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지금껏 대부분의 ICO는 Security Token 임에도 불구하고 Utility Token으로 간주하고 무리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왜일까요? SEC의 특정 등록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 Security Token과 달리, Utility Token은 비용이 훨씬 적게 들고 복잡한 규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어느 한쪽에 반드시 속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Utility Token이면서 Security Token 일 수도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Security Token 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까요?
Howey Test는 미국 대법원이 투자계약(Investment Contract)인지 아닌지를 판별하기 위해 만든 테스트입니다. SEC는 이 Howey Test에 따라 ICO의 증권 판매 여부를 판단하였습니다. Howey Test에서는 아래 4가지 요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을 유가증권으로 분류합니다.
1. 자본투자이다. (It is an investment of money)
ICO 투자할 때 기여(Contribution)라는 단어를 보셨을 것입니다. ICO를 모금하는 회사들은 이것이 투자(Investment)로 여겨지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토큰 소유자들에게 배당금과 같은 보상을 제공한다면, 투자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GAS를 배분해주는 NEO와 COSS, KuCoin 등과 같은 배당형 거래소 코인도 이 기준에서는 모두 Security Token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2. 투자수익이 기대된다. (There is an expectation of profits from the investment)
ICO 투자자들은 토큰을 사용의 목적보다는 수익 실현의 목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투자수익을 낼 수 있다고 광고하는 것은 증권으로 분류될 여지가 있습니다. 또한, 바로 사용할 수 없는 토큰을 ICO로 사전에 미리 판매하는 것도 STO로 분류되어 증권법 위반으로 회사가 기소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즉시 사용할 수 있는 토큰을 판매하는 것이라면, 수익보다는 사용의 목적으로 판단되어 Utility Token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3. 공동기업이다. (The investment of money is in a common enterprise)
여기서 공동기업은 투자자들이 ICO 투자를 위해 공동 출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ICO에 투자할 때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으로 지불한 코인은 프로젝트 연구개발, 운영, 마케팅 등에 사용됩니다. 따라서 ICO참여자들은 공동기업의 투자자로 여겨집니다.
4. 발기인 또는 제 3자의 노력으로 수익이 발생한다. (Any profit comes from the efforts of a promoter or third party)
발생한 수익이 투자자 노력의 여하에 상관없으면 이 항목을 만족합니다. 논란의 여지가 가장 많은 항목입니다. 탈중앙화 및 오픈소스 개념에 따라 투자자들이 네트워크에 참여함으로써 경제적인 이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량 토큰을 소지한 기관투자자와 채굴자들이 발기인 보다 가격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증권이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사실 해석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어 리플의 증권 여부를 두고 아직까지 논쟁이 많습니다. SEC가 어떤 기준으로 ST로 분류하고 규제하는지 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에 있다고 하니 주시하고 있어야겠습니다.
지금껏 미국 SEC를 기준으로 설명드렸지만, 각 나라의 ICO 방침은 각각 다릅니다. 미국은 ICO가 제공하는 모든 토큰을 유가증권으로 판단하는 반면 스위스 연방 금융감독청(FINMA)은 토큰을 지불, 유틸리티, 자산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합니다. 다만, Utility Token이 Security Token에 해당할 수 있다고 언급하였죠. 싱가포르, 몰타, 홍콩 등은 ICO를 규제하지 않고 블록체인 기업 양성에 적극적입니다. 다들 아시듯이 한국과 중국은 불법 증권을 제공한다는 사유로 ICO가 전면 금지된 상태입니다. 이렇듯 대다수의 규제 기관들(The Regulators)은 증권법에 따르지 않는 ICO가 문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ICO 규제는 개별 국가 별로 상이하지만, 세계적으로 공동출자되는 암호화폐 자본의 규제는 결국 글로벌 스탠다드가 있어야 합니다. 미국이 증권법을 들어 특정 조건 하에서 ICO를 허용한 것처럼, 국내도 단기적으로 자본시장법 안에서 ICO를 조건부 허용할 확률이 큽니다. 따라서, STO 준비가 안된 프로젝트는 법 위반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아래 2가지 예시는 이것을 잘 보여줍니다.
1) 18년 11월 8일, SEC는 탈중앙화 거래소(DEX)인 이더델타 (EtherDelta) 창업주를 Security Token 거래 사유로 기소했습니다. 앞으로 Security Token 거래소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SEC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이제 비등록 DEX에 규제의 칼날을 세울 것으로 보입니다.[4]
2) 17년 12월 11일, MUNCHEE ICO는 확실한 투자수익을 보장한다는 광고로 Security Token으로 분류되어 증권법 위반이라는 판결이 나왔고, ICO 중단 및 환불 명령을 받았습니다.[5]
3) 작년 2017년 7월 25일, SEC는 Howey Test에 따라 DAO Token을 Security Token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6]
따라서 현재 ICO를 진행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Token이 Security Token이라고 가정하고 정해진 법규를 준수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미국 증권법 기준으로 STO를 하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SEC에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승인에는 총 4가지 방법이 있으며, SEC에 회사를 등록하거나, 또는 3가지 중 한 개의 면제 조항을 따라야 합니다.
첫째, SEC에 등록합니다. 이 방법은 아래 4가지 특정 정보를 공개해야 하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하기에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1. 회사의 재산 및 사업 목적에 대한 설명
(A description of the company's properties and business purpose)
2. 제공되는 유가증권에 대한 설명 (A description of the security being offered)
3. 회사 경영정보 (Information about the company's management)
4. 독립 회계사가 인증한 회사에 관한 재무제표
(Financial statements about the company, certified by independent accountants)
둘째,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Regulation D 506(c) 면제 조항을 따르는 것입니다. 최대 모금 금액의 제한이 없으며 최소한의 공시 정보 요구로 비용이 저렴하고 절차가 비교적 간편합니다. 하지만 오직 공인투자자(연간 순이익 100만 달러 이상 or 연간 소득 20만 달러 이상)만 참여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셋째, Regulation A+는 Tier 2에서 최대 5천만 달러까지 모금할 수 있으며, 누구나 참여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2년간의 회계감사가 있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위의 Regulation D와 달리 재판매에 대한 제한이 없습니다.
마지막, Regulation CF는 연간 최대 1,070만 달러를 모금할 수 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조달할 수 있는 자본금이 작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Security Token 시장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 예측합니다. 이미 여러 기관 및 기업에서는 STO 거래 플랫폼 개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투자를 희망하는 프로젝트가 SEC 법규를 준수하는지 확인해야 하고, STO를 원하는 기업이라면 글로벌 법규 및 규정을 숙지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STO가 ICO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명확한 글로벌 가이드라인이 나온다면, Utility Token은 잘 정비된 ICO를 통해서, Security Token은 STO를 통해서 진행되는 방향으로 갈 것입니다. 2019년은 여러 선진국가와 기업들이 ICO와 STO를 시험해보는 해가 될 것입니다.
1) 18년 11월 1일, 빗썸이 미국 핀테크 기업인 Series One과 계약을 맺고 미국에 증권형 토큰 거래소를 설립할 예정입니다.[7]
2) 18년 10월 13일, 미국 나스닥(Nasdaq)이 토큰화 된 유가증권을 발행할 수 있는 암호화폐 플랫폼을 준비 중입니다.[8]
3) 18년 9월 11일, Binance는 몰타 증권거래소(MSX)와 협력하여 증권형 토큰 거래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MOU를 체결했습니다.[9]
4) 18년 8월 24일,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싱가포르 증권거래소(SGX)와 함께 토큰화 된 자산을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개발 중입니다.[10]
일부 사람들은 ICO 규제가 강화되어 암호화폐 시장이 위축됐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규제 없이 각종 사기로 인해 투자자 피해가 지속된다면, 암호화폐 투자 시장은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따라서 국내 블록체인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Utility Token과 Security Token을 명확히 구분하고, Security Token에 적용할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가 갈팡질팡 하는 사이 많은 블록체인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미국, 스위스 등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블록체인 기업 양성과 투자자 보호를 할 수 있는 균형 있는 대안이 하루빨리 마련되길 희망해 봅니다.
[1] https://cryptovalley.swiss/wp-content/uploads/20180628_PwC-S-CVA-ICO-Report_EN.pdf
[3] https://www.coindesk.com/sec-chief-clayton-every-ico-ive-seen-security/
[4] https://www.sec.gov/news/press-release/2018-258
[5] https://www.sec.gov/litigation/admin/2017/33-10445.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