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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본기 May 01. 2019

도시재생 전문가들의 8가지 '헛소리'

[칼럼], 프레시안, 2019-05-01

[칼럼] 『도시재생 전문가들의 8가지 '헛소리'』, 프레시안, 2019-05-01, https://bit.ly/2PHY9j0


도시재생 사업은 일종의 '도시개발 사업'이다(도시재생 사업이 '도시파괴 사업' 또는 '도시낙후 사업'은 아닐 것이다). 한 도시가 개발되면 그곳의 지가 및 임대료가 상승한다. 이는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상식이다.


그리고 임대료가 상승할 경우, 그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는 기존 터전에서 내쫓긴다. 우린 그러한 세입자 내쫓김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른다. 요컨대 도시재생 사업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은 (보통) 다음의 식을 따른다.


①도시가 개발된다. → ②임대료가 오른다. → ③세입자가 내쫓긴다.


이는 요즘 우리가 흔히 들어 아는 (일반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소위 '도시재생판'에서 전문가로 취급되는 이들 대부분은 '이런 아주 쉽고 타당한 이야기'를 대중에게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도시재생 사업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지 않는다." 등의 '헛소리'를 생산∙유통하며 도시재생 사업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축소∙왜곡한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 이해관계 때문이다. 도시재생 전문가들은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직∙간접적인 이익을 얻는 존재다(예: 관련 업체 운영 및 취업 등). 그런 그들이 도시재생 사업의 대표적 부작용인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제대로' 건드린다?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본 칼럼의 목적은 단 하나다. 바로, 그들이 생산∙유통하는 헛소리가 어째서 헛소리인지를 대중에게 고발하는 것이다. 총 8개의 헛소리를 수집∙분석했다. 갈 길이 멀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간다.


도시재생 사업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지 않는다?


금방 다룬 헛소리부터 살핀다. "도시재생 사업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 헛소리는 '허접한 고전'이다. 그 때문에 진작에 격파되었다.


누가 이런 주장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세상에 검은 고양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주장을 기각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사례가 필요할까? 100개? 1,000개? 아니다. '절대적이고 확실한' 단 하나의 사례면 충분하다. 검은 고양이를 한 마리 찾으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도시재생 사업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키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필요한 사례도 단 하나다. 그리고 지금 그러한 사례는 인터넷 뉴스 검색 등을 통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도시재생 사업은 젠트리피케이션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


이런 헛소리도 있다. "도시재생 사업은 젠트리피케이션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 첫 번째 헛소리가 무너지자마자 나온 헛소리다. 첫 번째 헛소리에 '거의'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최악의 헛소리다. 삶터에서 내쫓긴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안다면 절대로 할 수가 없는 말이다. 예컨대 우리는 용산참사를 두고 "6명밖에 죽지 않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해당 사건에서 중요한 점은 사망자의 숫자 6이 아니라 용산참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삶의 터전에서 내쫓기는 이들에 대해 논하며 '거의 내쫓기지 않는다'는 식의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우리 약속 하나 하자. 본 헛소리를 하는 전문가를 만나면 꼭 혼쭐을 내주자.


젠트리피케이션은 (서울 주요 상권 등) '핫'한 일부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다?


세 번째 헛소리를 살핀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서울 주요 상권 등) '핫'한 일부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헛소리는 다음의 주장과 연결된다. "'핫'하지 않은 여러분의 도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역시 헛소리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가령 내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은 전혀 핫한 곳이 아니다. 또한 아직까지 언론에 구로동의 젠트리피케이션 사례가 보도된 바는 없다. 그럼, 구로동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걸까? 지금까지 (세입자 내쫓김 문제에 관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내게 찾아와 '쫓겨날 위기에 처했으니 도와달라'고 부탁 한 사람 중에 '구로동 세입자'는 단 한 명도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구로동 세입자들도 핫한 다른 동네의 세입자들이 내쫓기는 모습과 똑같은 방식으로 내쫓기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돈 때문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건물주가 다음의 생각 등을 행동에 옮기면 그게 곧 젠트리피케이션이 된다. '내가 그간 방을 너무 싸게 내놓았던 것 같다. 임대료를 올리자!', '세입자를 내쫓고 내가 직접 가게를 운영하자!' 그리고 다음의 명제는 진실이다. "돈을 싫어하는 건물주만 모인 지역은 없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가치 중립적 현상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가치 중립적 현상이다." 네 번째 헛소리다. 이 헛소리를 하는 전문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지가상승 및 생활환경 개선 등의 긍정적 측면(이익)'과 '세입자 내쫓김 문제의 부정적 측면(손해)'으로 구분한다. 그 후 그 두 측면이 길항작용(拮抗作用)을 하기 때문에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현상이 결국에는 "나쁘다!"라고 평가할 수 없는 가치 중립적인 현상이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니, 도시재생 사업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이는 '책상에서 만든 헛소리'다. 이상의 말이 '참'이 되려면, 젠트리피케이션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의 대상이 되는 그룹이 같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긍정적인 효과는 건물주가 누리지만, 부정적인 효과는 세입자가 짊어진다.


한편, 본 헛소리는 '훌륭한 헛소리'이기도 하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의 본질이 계급과 정치에 있음을 드러내어 주기 때문이다. 방금 살핀 것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은 건물주에게 '좋은 것'이다. 그러나 세입자에게는 '나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리기 위해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과연 내쫓기는 세입자의 편인가? 돈을 버는 건물주의 편인가?' 난 전자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나쁘다.

 

'상생협약'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것이다?


다섯 번째 헛소리다. "'상생협약'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것이다." '임대료 인상을 자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의 약속을 상생협약이라고 한다. 현재 정부가 도시재생 사업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 대응책 중 하나로 (열심히) '밀고 있는 사업'이다. 


그런데 잘 알려진 것처럼 상생협약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즉, 건물주가 약속을 어겨도 달리 제재할 방도가 없다. 상생협약이 법적 구속력을 갖출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부가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상생협약 그 자체'를 강제할 방도가 없어서다. 결국 정부가 건물주를 어르고 달랜 후에야 겨우 체결되는 것이 상생협약이다. 그런 상생협약 안에 건물주 개개인을 법적으로 구속할 수 있는 장치를 설계한다? 동화 같은 소리다.


'공공임대상가(주택)'가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것이다?


여섯 번째 헛소리다. "'공공임대상가(주택)가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것이다." 공공임대상가(주택)란 정부가 직접 상가(주택)를 매입하여 세를 놓는 '특수한 형태의 임대차'를 말한다. 상생협약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도시재생 사업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 대응책 중 하나로 (열심히) '미는 사업'이다.


결론부터 말한다. 젠트리피케이션에 지극히 국소적으로만 대응할 수 있는 사업(소위 '가성비'가 떨어지는 사업)이다. 다음 2가지 문제 때문이다.


첫째, 정부가 모든 지역의 모든 상가(주택)를 매입할 수는 없다. 그 때문에 심사를 통해 선발된 몇몇 세입자만 특정 공간에 입주하게 되므로 사업의 수혜자가 극히 적다.


둘째, 첫째의 이유로 해당 사업이 이루어지는 지역의 임대차 시장은 공공임대상가(주택)를 일반 임대차 시장과는 관계없다고 취급한다. 따라서 주변 상가(주택)의 임대료를 낮추는 이른바 '견인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도시재생 사업,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낫다?


일곱 번째 헛소리다. "도시재생 사업,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낫다." 이건 건물주 편에 선 전문가들의 헛소리다. 건물주는 돈을 벌고, 세입자는 내쫓기는 지금의 도시재생 사업이라면, 건물주 입장에서는 도시재생 사업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 그러나 세입자 입장에서는 도시재생 사업을 (하는 것 보다는) 안 하는 게 낫다. 


도시재생 사업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은 평가절하되었던 도시가 제 가치를 찾는 과정이다?


마지막 여덟 번째 헛소리다. "도시재생 사업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은 평가절하되었던 도시가 제 가치를 찾는 과정이다." 


이건 그냥 '말 그대로의 헛소리'다. 본 헛소리는 도시재생 사업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가 뜨고 달이 지는 것과 같은, 다시 말해 인간이 감히 어찌할 수 없는 '자연적 법칙에 의한 현상'처럼 묘사한다. 즉, 해당 헛소리에 담긴 메시지는 아래와 같다. 


'도시재생 사업에 의한 젠트피케이션 현상은 여러분이 절대로 대응할 수 없는(그리고 인간의 의지가 작용하지 않는) 지진과 같은 자연현상이다. 그러니 맞서기를 포기하라.'


그러나 이는 참이 아니다. 왜냐하면 도시재생 사업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재생 사업이라는 정책에 의한(그리고 각종 관련 법률에 의한), 다시 말해 인간이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성질의 '규범적 법칙에 의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도시재생 사업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 대응법


끝으로, 도시재생 사업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할 구체적인 방법을 안내한다. 우선 전국에서 진행 중인 모든 도시재생 사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 시점 이후로는 도시재생 사업에 의한 젠트리피케이션이 더는 발생하지 않는다. 도시재생 사업 잠시 멈춘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 누가 죽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이익을 얻는 대다수의 전문가는 도시재생 사업이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군다. 혹세무민이다.


도시재생 사업을 멈춘 뒤에는 법률을 정비해야 한다. 그간 시행되었던 도시재생 사업을 전부 검토하여 어떤 법률 어떤 조문의 빈틈에 의해 사람들이 내쫓겼는지를 추적한 뒤, 그 빈틈을 수선∙보완해야 한다(현재 이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과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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