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가 안내자 혜연 Jan 09. 2021

보라색 책에 담긴 자존의 말들

김지수 인터뷰집, <자존가들>을 읽고

재택근무를 시작하며, 퇴근 시간이 지나면 집 근처 서점에 들러 잠시 시간을 보내는 취미가 생겼다. 

집 근처에 서점이 많아 행복하다

그리고 한 해의 끝이 가까워지던 얼마 전, 서점에 들렀다가 사지 못하고 온 보라색 책이 마음에 걸려

다음 날 다시 가서 집어 왔다. 마음 따뜻해지는 인터뷰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김지수 기자님의 인터뷰집 

<자존가들>은 제목과, 표지의 색감 때문에라도 사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다. 

읽으며 계속 접어두었던 페이지 중, 몇 구절을 소개한다. 




선물 같은 시간에 대한 말들


https://youtu.be/PEKPMGHQEOY


19년에 코오롱스포츠가 공개한 광고, 김혜자 선생님의 <나를 믿고 걸어갑니다>는 보고 나면 깊은 울림을 준다. 그리고 김혜자 선생님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들려주세요.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시간은요, 정말 덧없이 확 가 버려요. 어머나, 하고 놀라면 까무룩 한세월이야. 
안타까운 건 그걸 나이 들어야 알죠. 
똑똑하고 예민한 청년들은 젊어서 그걸 알아요. 일찍 철이 들더군요. 
그런데 또 당장 반짝이는 성취만 아름다운 건 아니에요. 
오로라는 우주의 에러인데 아름답잖아요. 에러도 빛이 날 수 있어요. 
(미소 지으며) 하지만 늙어서까지 에러는 곤란해요. 다시 살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 지금, 눈앞에 주어진 시간을 잘 붙들어요. 살아 보니 시간만큼 공평한 게 없어요. 


우주의 에러이지만 아름답다는 오로라를 바라보는 김혜자 선생님의 눈망울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책에는 인터넷에서 보고 눈물을 흘렸던 이어령 선생님의 인터뷰도 실려있었다.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은 무엇인가요?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처음 받았던 가방, 알코올 냄새가 나던 말랑말랑한 지우개처럼. 
내가 울면 다가와서 등을 두드려 주던 어른들처럼.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요.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서문을 보면,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이 행운의 결과라는 것을 인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조금 더 겸손해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죽음을 앞두고 모든 게 다 선물이라고 이야기하는 선생님의 나직한 마음이 느껴졌다. 


최대한 신부님 또한 인터뷰에서 미래는 선물이라는 말을 전한다. 


무기력으로 기진맥진한 사람들은 그 미래가 때론 부담스럽기도 합니다만.
미래에 해야 할 일만을 생각한다면 의무만 남죠. 
미래는 권리도 아니고 착취할 만한 대상도 아니에요. 자원처럼 소비해서도 안 되죠. 
미래는 그냥 선물이에요. 약속을 머금은 선물이고 시간의 덤이죠. 


미래는 그냥 선물이라는 그 말이 다가오는 날들에 대한 조급하고 두려운 마음을 다독여준다. 




일에 대한 태도


일을 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돌아보게 해 준 말들도 있었다. 

세계적인 안무가가 된 리아킴은 자신이 춤을 시작하게 된 마이클 잭슨의 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열여섯 살 왕따 소녀는 마이클 잭슨의 어떤 면에 그토록 반했나요?
(생각에 잠기며) 뭐랄까... 마이클 잭슨은 군중을 많이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한 번 쓱 보고는 금세 자기한테 집중을 해요. 
아무런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안에 강하게 내재한 에너지를 발산했는데, 그게 너무 크게 느껴졌어요.
그는 관객들을 자기 안에 빨아들이고 있었어요. 그게 뭔지는 나중에 알았어요. 
많은 가수가 관객들에게 임팩트를 보여 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끌려다닐 때가 많아요. 
그런데 테크닉이 아무리 대단해도 자기가 없으면 보는 사람이 감동을 못 해요. 
마이클 잭슨은 아니었어요. 자기를 믿고 몰입했죠. 


부담감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기'를 가지는 것. 그때서야 비로소 상대방이 나의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에너지에 대한 또 다른 말을 배우 신구 선생님이 전한다. 


공기의 허를 찌르는 화법이 쉽게 나온 게 아니군요. 
저는 선생의 발성이 참 둥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화는 에너지의 흐름이에요. 
소리가 공기 중에서 퍼질 때 위아래 진폭을 갖는다고. 
그 에너지를 섬세하게 조절해요. 
음성이 크다고 유리하지 않아요. 맥시멈으로 소리를 올리면 앞에서 듣는 사람은 귀가 아프거든.
압축하고 풀면서 리듬을 타야지. 


요가에서는, 상대방과 같은 에너지의 흐름에 있어야 한다고, 'be in the same wavelength'라는 말을 한다. 

일터에서 무수히 많은 이해관계자들을 만나며 그들과 같은 에너지의 흐름 속에서 호흡하기를 바라본다. 


'이걸 하면 웃길까 안 웃길까' 초조해질 땐 '어차피 평생 할 거다'라는 생각으로 불안을 무마했다고요. 
글을 쓰는 제게도 유익한 조언입니다.
그런 불안은 늘 와요. 가수나 배우는 작업 결과를 보통 3~6개월 후에나 보잖아요. 그런데 개그맨들은 그날 7시 뉴스에 나온 걸 소재로 8시에 코미디를 해요. 자기들이 재밌다고 생각했던 입담이 반응이 안 오면 풀이 죽죠. 그럴 땐 '한번 하고 끝날 게 아니라 평생 일이다.' 생각하면 좀 괜찮아져요. 


다가오는 한 주를 바라보며, '평생 일이다' 생각하는 개그맨 전유성 선생님의 마음이 위안이 되었다.

 


책에는 둥글게, 둥글게 원으로 확장하며 넓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어려운 시기에도 질서와 경우를 지키며 살아가는 경이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자존의 마음이 필요한 시기에 소파에 기대앉아 인생 철학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