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쓰게 하는 문장들
글쓰기야 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다.
글쓰기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놓았고
먼 과거에 살던 시민과 오늘을 사는 우리를 하나가 되게 했다.
책은 인간으로 하여금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러므로 글쓰기를 통해서 우리 모두는 마법사가 된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얼마 전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은 김주혜 작가님의 “작은 땅의 야수들”을 읽었다. 한일합병 이후 우리 땅에 일본군이 주둔하기 시작한 때부터 3.1 운동,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해방 이후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빚어진 참극까지. 그 역사적 소용돌이에 내던져진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낸 이야기이다. 결코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기생'이 여자 주인공이고, 사냥꾼이었던 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호랑이처럼 살아가는 '정호'가 이야기의 중요한 축이라는 사실이 조금 남다르다.
이 책을 읽으며 비슷한 배경의 다른 소설들을 떠올렸다.
같은 일제강점기 이야기이자 자이니치(재일조선인)에 관한 이야기로, 애플티브이에서 드라마화하여 더욱 화제가 되었던, 이진민 작가님의 "파친코". 공간적 배경은 다르지만, 일제강점기라는 가슴 아픈 민족적 역사를 바탕으로 한 개인, 또는 한 가족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내는 강인함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두 책 모두 한국이 아닌 영미권에서 출간되었으며, 한국책은 번역본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일제강점기는 너무나 막연하고 드라마 속 이야기 같은데 이민자 2세로 산 작가님들은 어떻게 그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
또 다른 책이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필수 도서로 선정되어 화제가 되었던 차인표 작가님의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이 책 역시 일제강점기가 배경이다. 호랑이 사냥꾼인 용이와 호랑이 마을에 살았지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게 된 순희가 주인공이다.
과거의 가슴 아픈 역사가 배경인 소설들을 읽으며 막연하게나마 그 시절을 상상해 본다. 이런 책들을 읽지 않았다면 결단코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을 떠올리고, 함께 눈물 흘리며 가슴 아파할 일도 없었겠지.
그저 소설 속 허구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아득한 상상이 구체적인 이야기가 되어 독자에게 읽히려면 분명, 역사적 고증을 충분히 했을 것이다. 그러니 소설 속 인물은 허구일지라도, 인물들이 겪은 경험은 사실일 수 있다.
작은 땅의 야수들 책을 모두 읽은 후, 내가 새롭게 펼친 책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이다.
고전 소설로 워낙에 유명한 책이지만, 분량이 너무 많아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을 배경으로 한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 시대를 잘 알진 못하지만,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분명 그 시대의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인물과 인물이 나누는 대화를 엿보며 나는 분명 행간에 놓인 문장의 의미를 되짚어 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작가가 나에게 남겨놓은 "삶의 의미"가 될지도 모른다.
책이라는 숲으로 들어가, 활자라는 나무 사이를 헤매다, 골짜기에 남겨둔 누군가의 선물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시간과 공간의 굴레를 벗어난 마법일 것이다.
글을 써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우리가 지금 쓰는 이 글들이 미래의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 또는 마법이 되어 상상하기 힘든 지금의 시대를 고찰할 수 있는 자료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 일지 모를 먼 미래의 독자를 위해 게을러진 몸과 마음을 일으켜 다시 쓰는 자리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