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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밀라노

by 선량

봄, 밀라노


겨우내 봄을 기다렸다

이 찬란한 햇살이,

이 파란 하늘이,

이 펄럭이는 옷차림이,

이 흩어지는 웃음소리가

참 그리웠다.


드디어 다시 돌아온 봄

금세 지나가고 있으니

어서 햇살을 모으러

어서 하늘을 담으러

어서 옷을 가볍게 걸치고

어서 흐드러지게 웃으러 가자.



밀라노에서 네 번째 봄이다.

첫 번째 봄에는 한국에서 막 돌아와 아이들을 학교 보내느라 정신없이, 그리고 둘째 아이가 가슴에 화상을 입어 병원에 다니느라 마음 졸이며 봄이 온 줄도 모르고 보내버렸다.

두 번째 봄에는 열심히 이탈리아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느라, 정작 밀라노의 봄은 만끽하지 못했다.

세 번째 봄에는 드디어 세 번째 봄이라는 사실 하나로 너무 감격스러워서 봄볕을 받으며 많이도 걸어 다녔다. 덕분에 새까맣게 얼굴이 탔다.


드디어 네 번째 봄이다.

이제는 봄이 금방 지나갈 것을 알기에 오늘 하루의 햇살이 너무 귀하다.

이제 곧 꽃가루가 날리고, 모기가 날아다니고, 봄이 휘리릭 날아갈 것이다.

그러면 은근슬쩍 봄을 밀치고 여름이 될 것이다. 봄인지, 여름인지도 모른 채 우리의 옷차림은 점점 가벼워질 테다.


이렇게 오랫동안 밀라노에 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러다 10년 넘게 살 줄 또 누가 알겠는가?

금방 돌아갈 거라 여기며 뒷전으로 미뤄두었던 이탈리아어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4년 차인데도 아직도 이탈리아 말을 못 하는 나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다.


그래도 일단, 오늘은 봄을 좀 담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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