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종종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식모냐?
자녀를 돌보고 온 가족의 식사를 책임지는 일은 전적으로 엄마의 몫이었다. 23살에 시집을 와 24살에 첫째 아들을 낳은 엄마는 돈도 많이 아껴야 했다. 양가 부모로부터 지원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주로 시장에서 장을 봤다. 콩나물을 살 때에도 오백 원어치를 살 지, 천 원어치를 살 지 고민했다.
아빠는 밖에서 먹는 음식이 맛이 없어 외식이 싫다고 했고, 엄마는 꼼짝없이 한 달 90 끼니의 메뉴를 기획 및 실행해야 했다. 엄마는 제육볶음부터 치킨, 피자에 이르기까지 직접 만들어주셨다. 그런데 그 일을 혼자서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밥 먹을 시간이 되면 이제 요리는 그만 하고 얼른 식탁으로 오라는 핀잔을 듣곤 했다.
당시 아빠는 일주일에 회식을 여러 번 했다. 아빠에게 밖에서 먹는 음식들은 일상이었지만, 엄마에게는 낯선 일이었다. 아빠는 소갈비 등 밖에서 먹었던 음식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시곤 했다. 내가 알기로는 엄마가 먹어보지 못한 메뉴가 많았다. 나는 부인을 그런 곳에 데려갈 생각을 하지 못하는 그 모습에 실망도 했고, 얄밉기도 했다.
(아버지는 외벌이로 우리 집의 생계를 책임지고 자수성가하셨다. 감사합니다.)
어린 시절, 밖으로 밥을 먹으러 나가면 무진장 즐거웠다.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반찬과 메뉴를 먹는 것. 무엇보다 외식할 때 특유의 단란한 분위기가 좋았다. 아무도 고생하지 않는 커다란 장점이 단란함을 부르지 않았을까. 다 자라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보니 외식은 단순히 맛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외식은 새로운 맛과 공간의 분위기로부터의 경험이고 재미이자, 무엇보다 편리함 그 자체였다. 외식은 놀이의 한 형태이기도 했다.
재정만 넉넉했더라면 아무리 아빠가 집 밥을 좋아한다고 했을지라도 외식을 나갔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그때는 엄마의 사랑과 희생을 너무 당연시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부모님이 각자 다른 부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소통하지 못했고, 그 미묘한 긴장감이 전해진 탓에 나는 불안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불행을 내가 맏아들로서 책임져야 할 것만 같았다.
엄마는 기버(giver) 성향이셨다. 나에게는 학창 시절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주시는 등 최고의 것들을 선물해 주셨지만 본인은 커피 값이 아까워서 카페에도 가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친구 모임 덕분에 카페모카를 먹을 수 있어 좋았다는 말을 듣고 이를 알았다.
기버 성향의 사람들은 실제로 남들에게 많은 것들을 제공한다. 주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받는 것보다 줄 때가 많고, 상대방이 아무런 피드백을 주지 않을 땐 섭섭하기도 하다. 내 생각에 우리는 우리가 기버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 가는 대로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때론 힘을 빼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는 가족 간의 관계에서도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가족은 계산 없이 모든 것을 주는 사이 아니냐라고 누군가 반문할 수도 있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내 마음이 다친다면 가족 구성원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힘들 것 같다.
나는 엄마가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어떠한 관계에서든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바운더리를 정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건강한(상처를 덜 받는) 마음과 행동을 바탕으로 아내와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힘들 때에는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이를 나누어서(표현 등) 둘 사이에서 사랑하는 감정의 컨센서스를 유지하겠다고 말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누군가의 희생이 반드시 필요한 집단으로 만들지 않겠다. 적어도 각자 어떠한 부분을 희생하고 있는지 서로 알고 그에 대해 감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 아이가 다 자랐을 때 우리 가족은 Me first, love always 집단이었으면 좋겠다.
ps.
기버들은 주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만 준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을수도 있다고 한다. 종종 이성적으로 따져 보아야 하겠다.
기버 관련 내용을 구글링 하다가,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은 기버들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사례를 공유합니다
. 내용 : 왜 사람은 잘해주고 맞춰줄수록 만만하게 보는 걸까요?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정신의학과 전문의의 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