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앞둔 4학년 1학기.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는 미국 인턴십 제휴 프로그램에 합격했다. 미국 워싱턴 DC로 떠나기 전, 우리 단과대학의 학장님을 찾아뵈었다. 제도 상 '최대' 15학점이 인정되었기 때문에 미리 말씀드려야 했다. 당시 학장님은 하얗게 머리가 세신 관록의 교수님이셨다. 인자하기로도 소문이 나 있었고, 잘 다녀오라는 말씀을 주셨다.
인턴십을 마치고 복귀하니 웬걸, 전자기학 과목에서 F폭격기로 악명이 높은 모 교수님으로 학장이 바뀌어 있었다. 이 분은 학생을 빡세게 굴리시기로 유명한 분이었다. 몇학점이나 인정될지 미지수였기 때문에 떨리는 마음으로 인턴십 결과를 입력했다.
몇 주 후, '1'학점이 인정되었음을 확인했다. 나는 (당연히)등록금도 모두 납부했고, 파견 전 학장님과의 면담도 모두 마친 상태로 최소 10학점 정도를 예상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이에 F폭격기 교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문의하는 메일을 보냈다. 폭격기는 '더 나은' 나라에서 잘 지내다가 온 경험을 '우리나라에서 치열하게 공부한' 친구들에 비해 어드밴티지를 줄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메일을 보고 화가 많이 났다. 미국에서 내가 잘 지냈는지 못 지냈는지는 본인이 어떻게 알 것인가? 자신이 교수라는, 인생을 좀 더 살았다고 내 삶의 일부분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는 게 불쾌했다.
(윗사람이 오만하면 꼰대요 아랫사람이 오만하면 싸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곧바로 답장을 썼다. 미국이 더 나은 나라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견문을 넓히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부대껴 살며 체험한 한 학기가 한국에서의 한 학기보다 내 미래 인생에는 훨씬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이다.
교수에게 답장이 오지는 않았다. 다만, 일주일 후 나는 교학처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결국 기존보다 3배 높은 학점을 인정받게 되었다. 묘한 쾌감이 있었다. 어른의 말이 무조건 맞는 것은 아니며, 종종 우리는 강력하게 우리의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