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양보해 주세요.
아내는 경기 남부에서 서울까지 매일 광역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며 출산 2주 전까지 일했다. 한겨울에는 두꺼운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고 만원 버스에 몸을 실었고, 한여름에는 입덧 때문에 직장 도착 전에 내려서 구토를 하기도 했다.
아내는 체구가 작고, 오버핏으로 옷을 입었기 때문에 유심히 보지 않으면 임산부인지 알기 어려웠다(참고로 편안하다는 이유로 오버핏 입는 임산부 많습니다). 그래서였을까? 분홍색 배지를 가방 잘 보이는 곳에 달고 있어도 대중교통에서 임산부석을 내주지 않거나 슬쩍 보았지만 못 본 척 스르륵 눈을 감는 사람도 있었다.
본인도 일상생활에 꽤나 피곤하시겠다만, 사지 멀쩡한 사람이 출/퇴근 만원 버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서 그런 행동을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다리를 다쳤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진짜 임산부를 위해 임산부석은 그냥 비워뒀으면 좋겠다.
임산부 배지를 모르는 분도 많이 계실 것 같다. 배지는 이렇게 생겼고 보통 임산부 분들은 가방이나 옷에 달고 다닌다. 많이들 봐주세요~
한때 임신 및 출산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던지 배도 나오지 않은 임산부가 뭘 힘들다고 그렇게까지 배려받아야 하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창피하고 부끄럽다.
임신 초기의 임산부는 남녀노소 그 어떤 누구보다 배려받아야 하는 존재다. 왜냐하면 아기가 뱃속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혹여 잘못될 확률이 정말 크기 때문이다(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양보하자). 게다가 임신 후의 급격한 호르몬 변화 때문에 입덧도 임신 기간 중 가장 심하고 기분이나 몸의 컨디션도 정말 좋지 않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임신을 경험해 본 분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겪어보지 않은 분들이라면 아 그렇구나... 정도로만 이해하실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나처럼 생각하실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중병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가장 아프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은 누구나 다 나름대로 힘겹게 살고 있고,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그 고통을 알기 어렵다.
뭐, 정확히 말하면 나도 직접 겪은 건 아니고 아내가 겪은 일을 옆에서 지켜봤을 뿐이지만 함께하는 4년 동안 단 한 번도 힘든 티를 내지 않았던 사람인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유난히 안쓰러웠다.
요즘은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면 분홍색 배지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감히 한 말씀 올리고 싶다. 분홍색 배지를 보면 자리를 양보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