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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연 Jul 05. 2022

왜 매장의 키오스크는 사람들이 유난히 불편해할까?

문제해결의 '올바른 출발점'이 중요한 이유


제 앞에서 키오스크를 사용하던 분께


불편한 표정으로 저를 돌아보시던 분께 이 자리를 빌려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저는 정말 당신이 무엇을 주문하는지, 휴대전화 번호가 무엇인지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메뉴가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처음 들어간 카페에는 키오스크 한 대뿐이었고. 저는 그곳에서 무슨 메뉴를 파는지 몰랐습니다. 물론 무난하게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옵션도 있었지만 다른 메뉴도 궁금했는걸요. 하지만 여기서 무슨 메뉴를 파는지는 키오스크를 마주한 순간 알 수 있었어요.

우리가 무엇을 파는지는 주문 직전에 알려주겠다


모르겠습니다. 벽 어딘가에 메뉴판이 붙어 있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메뉴를 주문하는 자만이 들어갈 자격을 얻을 수 있다!'라고 외치듯 키오스크가 문 앞 동선에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었어요. 저는 메뉴를 찾으러 이리저리 헤매느니 그냥 키오스크 앞에 서 있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신은 제 앞에서 시키고 계셨지요. 저는 '아메리카노'를 일단 후보군으로 올려놓고, 당신이 이리저리 조작하는 메뉴를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 저기 토피넛 라테 같은 것도 보이네요. 당신은 음료를 고르더니 결제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사실 저는 당신이 선호하는 결제 방식에는 일말의 관심이 없습니다.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가게마다 키오스크 작동법이 다르다 보니 제 차례가 왔을 때 허둥지둥하지 않고 싶어서 당신이 어떻게 결제하는지의 순서는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때 당신은 저의 뜨거운 시선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보더군요. 저는 재빠르게 시선을 돌려 가게 안에 포스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조금 불편한 기색이더니 다음 단계로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포인트 적립을 위해 전화번호를 입력했나, 하지 않았나 그건 기억나지 않네요. 그때쯤에는 저도 저의 무고함을 견고하게 증명하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었거든요.


마침내 당신은 가고 나의 차례가 왔습니다. 메뉴판을 눌렀는데 생각보다 인식이 잘되지 않네요. 힘을 주어 '다음' 버튼을 여러 번 눌렀는데 화면이 확확 넘어가서 엉망이 되었습니다. 저는 침착하게 초기 화면으로 돌아가는 버튼을 찾고 다시 시작합니다.


아, 누군가 들어오는 것 같아요. 곧 제 뒤에 서겠죠. 이제 머뭇거릴 수가 없어요. 토핑을 추가해야 하는 따위의 메뉴는 선택지에서 사라집니다. 저는 가장 무난한 아메리카노와 카페 라테 사이에서 빠르게 결정을 내려서 카페 라테로 최종 선택합니다.


따뜻한 거 주세요, 매장에서 먹을게요, 신용 카드로 할게요, 등등의 과정은 아까 앞 사람을 눈치껏 훔쳐본 결과 무난하게 진행합니다.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는데 포인트 적립을 하라고 나오네요. 저는 원래 포인트 적립을 그다지 하지 않는 유형이지만, 여기서는 더더욱 할 생각이 없습니다. 뒷사람에게 제 연락처를 알려주기 위해 은근한 그린라이트 사인을 보내는 게 아니라면요.


자, 이제 모든 과정이 끝났습니다. 저는 세련된 도시 여자답게 키오스크를 능숙하게 사용했어요. 하지만 이 과정 중 하나라도 삐끗했으면 저는 나갔을 거예요.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되지 않냐고요? 글쎄요. 키오스크가 고장 난 게 아니라면 웬만하면 안 하고 싶네요. 바쁜 기색인 직원을 소리 내 부르는 것도, 제가 진행하지 못하고 멈춰있는 동안 뒤에서 기다릴 다른 고객들의 짜증 섞인 눈빛도 싫어요.



우리가 키오스크를
불편하게 느끼는 이유는
그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기술이 발전하는 건 환영이지만 지금은 중간 과도기라서 꽤 불편하네요. '기존보다 훨씬 편리해서 좋아!' 가 아니라 '직접 주문하는 것보다 확실히 불편하지만, 그럭저럭 적응해서 참을 만해.' 단계이거든요.


왜 키오스크가 이렇게 불편할까를 한동안 고민해봤습니다. 아직 표준화가 안 되어서 그럴까요? UI, UX의 서투름 때문일까요? 그러다가 불현듯 깨닫게 된 게 있어요.


현재 키오스크를 만든
출발점이 달라서 그런 거였어요.

키오스크는 사람들이 매장에서 주문하는 걸 기술로 편리하게 만든 게 아니라 모바일 또는 인터넷으로 주문하던 방식을 모니터로 크게 만들어서 갖다 놓은 방식이에요.


다시 말하면 매장에서 주문하는 경험에서 시작한 게 아니었던 거죠.


그러니 모바일과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들은 모두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모바일과 인터넷에서 익숙한 세대들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예요. 개인 기기로 천천히 둘러보고 후기도 읽으며 결정했던 사람이 순서대로 정해진 컴퓨터 앞에 서서 골라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옛날 옛적 학교 컴퓨터실을 이용하던 것처럼 오히려 퇴행한 상황이 되었죠.


학교에 있는 컴퓨터에 순서대로 수강신청하는 기분


[올바른 방향]
매장에서 사람에게 주문하는 경험 → 키오스크 (경험은 그대로, 방식만 디지털)
[현재의 방향]
온라인에서 주문하는 경험 → 키오스크 (사양 떨어지는 공용 컴퓨터에 매장마다 다른 인터페이스)


그러니 [이미 메뉴가 익숙]하고, [그 매장의 인터페이스가 친숙]한 사람에게는 무척 편리하지만, 그 외에는 미묘한 불편함과 잔잔한 복통을 유발하는 스트레스를 동반합니다.


매장에서 메뉴를 주문할 때 우리의 여정은 이렇습니다.


1. 메뉴가 무엇이 있는지 천천히 살핀다

2. 정해지면 주문대로 간다

3. 주문하고자 하는 메뉴를 말한다 (종류와 갯수) 또는 직원에게 궁금한 점을 묻는다("오이 들어 있나요?", "매운가요?" 등등)

4. 주문 확인을 받는다

5. 적립이나 할인 여부를 대답한다

6. 결제할 도구를 내민다

7. 메뉴를 기다린다

8. 메뉴를 수령한다



키오스크는 일단 1번부터 탈락입니다. 뒤에 사람들이 줄 수 있는데 미적거리면 안 되니까요.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 특성상 '너는 뭐 먹을래? 그럼 난 이거 시킬게. 나눠 먹자.' 같은 대화도 빠르게 이뤄져야 합니다.


아, 정말 저같이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입니다.


만약 모니터를 크게 갖다 놓은
지금의 방식이 아니라
매장의 주문 경험에서
시작했다면 어땠을까요?

매장의 메뉴판은 여전히 있어야겠죠. 벽에 있든, 아니면 어딘가에 비치되어 있든 주문대로 가기 전에 천천히 볼 수 있는 시간은 필요합니다. 직원의 도움 없이도 메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맵기나 양, 주요 재료 등을 가능한 한 자세히 써놔야겠죠. 사진도 가능한 한 넣으면 좋고요.


일행과 신중하게 메뉴를 선정한 후 키오스크 주문대로 가서 줄을 섭니다. (또는 줄을 서면서 메뉴판을 들고 일행과 이야기합니다). 키오스크 앞에 가면 현실의 사람이 모니터에 나와 있으면 어땠을까요? 얼굴은 꼭 실물은 아니어도 됩니다. 잘 차려입은 후 계속 웃으면서 상대해야 하는 피로감이 있으니까요. 필터를 입혀서 아바타처럼 보여도 괜찮을 것 같네요. 콜센터는 그렇게 많이 있으면서 왜 키오스크 주문을 대신 받아주는 기업은 없는 건가요?


이런 경우라면 키오스크에 뜬 상대방에게 메뉴를 주문하고 궁금한 건 물어볼 수 있습니다. 여러 명의 담당자가 여러 매장을 동시에 담당하겠지만(주문이 계속 있는 게 아니라면) 웬만한 내용은 숙지가 되어 있을 테니까요. 그러면 이용자는 사실상 매장 안에 있는 사람에게 주문하는 것과 밖에 있는 사람에게 주문하는 경험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또는 이런 방식은 어떨까요? 메뉴판에는 모두 이름과 번호가 적혀 있는 거예요. 그리고 결정이 되면 OMR 카드 같은 곳에 메뉴를 체크하고 숫자를 체크하는 거죠. 그리고 리더기에 인식시킨 후 결제를 하는 겁니다. 오랫동안 김밥천국이나 일본 라멘집에서 자주 사용하던 방식을 디지털화했으면 어땠을까요?




문제해결의 '올바른 출발점'이 중요한 이유


키오스크가 왜 이 모양일까요?
저는 처음부터 사용자 경험을 잘못된 곳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장에서 주문하는 방식을 디지털화한 게 아니라 온라인에서 주문하는 방식을 매장에 와서 공용 컴퓨터로 하게 만들었어요.


물론 지금의 키오스크 방식이 편리한 사람들도 있겠지요. 같은 매장에서 비슷한 메뉴를 루틴하게 먹는 사람들, 사람을 대면해서 목소리로 주문하는 과정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유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다 지금의 키오스크 방식으로 바뀌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집마다 나눠주던 동네 음식점 메뉴 책이 사라지면서부터 우리 부모님은 치킨과 피자를 대형마트에서만 사드시게 되었어요. 작동법을 가르쳐드린다고 해도 손을 내저으시고, 먹고 싶을 때 나에게 말하면 대신시켜드리겠다고 해도 '대형마트 피자도 아주 맛있는데 왜 그래? 종류별로 엄청 많아!'라고 껄껄 웃으십니다.


김밥이나 제육 덮밥마저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할 텐데 말이죠.



Key Point


• 사람들이 매장의 키오스크를 불편해하는 모습을 단지 낯선 기술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서툰 것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 지금의 키오스크는 매장에서 주문하는 걸 기술로 편리하게 만든 게 아니라 모바일 또는 인터넷으로 주문하던 방식을 매장에 큰 모니터로 갖다놓은 셈이다


• 문제해결의 '올바른 출발점'이 중요할까? 우리는 뛰어난 기술과 방법을 가지고도 고객 경험을 잘못된 방향으로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새로운 책이 나오고 계속 강의를 하느라 그동안 도무지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정신차리고 다시 조금씩 쓰기 시작하고 있어요 ㅎㅎ


앞으로 올라오는 글들은 제 개인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아티클입니다. 

https://betterworknme.com/


제가 집필할 때만 바짝 글을 쓰고 그 외에는 전혀 안쓰는 습관을 극복하고자 만든 공간이자, 제 온라인 사무공간 같은 곳입니다. 성실하게 루틴을 반복해보려고 해요. 


다들 습하고 더운 장마 기간에 건강 조심하시고, 여름휴가도 근사하게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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