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섬 Apr 29. 2022

시대의 관성에 전하는
'작고 새로운' 힘

타다 –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 (감독 권명국, 2021)

바야흐로 스타트업의 시대다. 더 이상 은행 영업시간에 맞추어 창구로 찾아가지 않아도 되고, 집으로 배달되지 않는 메뉴는 없으며, 택배는 이틀 이상 기다리는 게 아닌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변화들은 점점 더 빠르고 자연스럽게,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삶에 스며든다.

흔히 스타트업의 성공 요건으로 아이디어, 기술, 시장상황을 꼽는다. 2010년대를 치열하게 버텨 낸 스타트업 중에는 아이러니하게도 팬데믹 상황을 맞아 더 큰 꽃을 피워 낸 곳도 있다. 하지만 일부는 갑자기 변한 시장 상황 때문에, 또는 한 번의 투자 유치 실패 때문에, 또 어떤 경우에는 허무하게도 한 번의 부정적인 입소문 때문에 사라지기도 했다.

‘타다’ 역시 많은 사람들에겐 ‘사라진’ 스타트업으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수도권에서만 접할 수 있던 서비스임에도 ‘타다금지법’이라는 단어에 담겨 모빌리티의 대명사로서 전국에 이름을 떨쳤던 ‘타다’. 하지만 ‘타다’는 사라지지 않은 채 조용히 재기를 준비했고,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화 <타다 –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감독 권명국, 2021)이 담백하게 담아냈다.


사라진 스타트업의 생존과 재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브랜드 대신 팀을 조명하는 새로운 시선
구성, 영상미, 음향이 만드는 높은 완성도
본질과 기본에 대한 시대적인 메시지 전달


이야기는 11인승 카니발에 붙은 ‘타다’의 로고 스티커를 떼는 시점부터 거슬러 오르며, 그동안의 역사를 담담하게 회고하는 목소리를 담아낸다. 법의 공백에서 출발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11인승 카니발을 혼자 택시처럼 이용하는 생경한 서비스는 의외의 호응을 얻었다. 택시보다 비쌌음에도 9개월 만에 100만 사용자를 모을 수 있었던 이유로 이용자들은 ‘기본’을 꼽는다. 방향제가 비치된 깨끗한 차량에서 조용하고 안전한 주행으로 이동하는 것. 어쩌면 이동수단이 당연히 갖춰야 했을 요인들이 ‘새로움’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타다’의 인기는 도리어 자신을 불법으로 만드는 불씨가 되어 모두가 아는 ‘타다금지법’이 촉발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대목까지 시종일관 담담하고 초연하던 영화는 택시회사와의 협력으로 신사업을 전개하게 된 ‘타다’의 2막부터 눈을 반짝이며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하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개인의 이야기는 흔하다. 하지만 큰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조직의 이야기는 어떨까? 이 영화의 의의는 여기에 있다. 평생 직업은 있어도 평생직장은 없다고 말하는 시대에, 소위 ‘망한 회사’에 남아 사업을 다시 일으키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지나간 시간이나 열정이 이유라면 그것들은 어차피 잊어야 할 매몰 비용일 것이다. 그러나 ‘타다’의 사람들은 기존 시스템의 문제를 짚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겠다는 기업 정신이 남아 있었다고 회고한다. 즉, ‘11인승 카니발’이 아니라 ‘이동하는 시간이 행복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들의 비즈니스인 것이다. 개별 인터뷰이지만 하나같이 ‘본질’과 ‘기본’을 말하는 직원들을 보다 보면 이 영화가 회사나 CEO가 아니라 조직을 조명하는 이유를 헤아릴 수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어쩌면 ‘기본’이 ‘새로운’ 것으로 치부되는 시대에 메시지를 남기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장의 막막한 상황에서도 문제의 본질을 정의하고 해결하는 작은 단계들이 모이면 결국엔 삶의 바꾸는 계기가 될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는 사업가나 자영업자, 또는 스타트업 종사자가 아닌 누구에게라도 용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글을 맺기에 앞서 다큐멘터리 장르의 영화로서 이 작품에 대해 조금 더 짚자면 공격적이기보다는 관조적인 시선에 가깝다는 점과 한국 기업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영상미, 그리고 깔끔한 음향을 꼽을 수 있겠다. 짧은 기간 ‘타다’가 누빈 서울의 구석구석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아름답게 어루만지는 미장센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인터뷰들의 음향도 매우 깔끔해서 청각적인 편안함을 준다. 어쩌면 이 다큐멘터리마저도 ‘기본’에 몰두한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머지않은 시일엔 전국의 소도시에서도 ‘타다’를 흔하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설령 사업이 잘 성장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시도가 누군가의 관성을 조금이나마 바꾸는 계기가 될 거란 점에는 확신한다. 그리고 그즈음엔 더는 ‘기본’을 하는 것이 새롭게 여겨지는 시대가 아니기를 담담하게 바라며, 지금 당장 막막한 기분에 빠져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조금의 시간을 내어 ‘타다’의 이야기를 들어 보길 권하고 싶다.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