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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섬 Apr 16. 2024

뭐라도 되고 싶었다.

Monologue 001

뭐라도 되고 싶었다.

내키는 대로 사는 인생이라도 그 끝엔 뭐라도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길 바랐다. 다만 무얼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이것저것 열심히 할 뿐이었다. 덕분에 겉보기엔 그럭저럭 구색 갖춘 사람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나를 설명해야 할 때면 도저히 한 문장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구구절절. 서너 문장으로 겨우 줄이긴 하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취업 준비생일 땐 자기소개서 500자가 그렇게 채우기 어려웠는데. 그렇다고 구구절절 늘어놓는 지금의 자기소개로는 어디에도 취직할 수 없을 것이다. 하고잽이 찍먹 인생을 늘어놓으며 '당신의 조직에 열정과 성의를 다하겠습니다'라는 결론을 붙여야 하니까. 그 생각을 하자니 퍽 웃기다. 우리 때의 취업 시장이 웃긴 건지, 내 지나온 인생이 웃긴 건지. 둘 다 웃기다고 하면 슬프겠지.


뭐라도 되고 싶었다.

그래서 뭐든 써보기로 했다. 칼럼이 될지 에세이가 될지 소설이 될지, 한 번쯤 책이 될 수는 있을는지. 끝은 생각 않고 무언가를 벌인다는 건 익숙한 느낌이다. 그동안 내키는 대로 살아온 나의 생과 다르지 않으니까. 그걸 생각하면 이게 또 무슨 쓸모가 있을까 싶지만 무엇이든 하지 않는다면 무엇도 될 수 없단 생각이 도돌이 도돌이 머리에 날아와 박힌다. 쏟아내는 나의 글 뭉치들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게 오히려 낭만이려나. 이런 섣부른 위로, 때이른 합리화가 벌써 찾아들다니, 마치 아무것도 되지 않을 운명으로 이미 정해졌다는 듯이.


여하튼,

하릴없이,

어릴 때 교과서에서나 스쳐 본, 입으로는 뱉어본 적 없는 단어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며 또 한 번 글쓰기를 다짐한다. 어쨌거나 써야 한다. 뭐라도 되고 싶으니까. 여하튼, 하릴없이, 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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