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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섬 Apr 24. 2024

언제까지고 당신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Monologue 003

언제까지고 당신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해를 넘길수록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꽃인 줄 알고 살았다. 곁에 두면 누군가를 더 있어 보이게 만들어주는 그런 사람.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들꽃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바위 같다. 이 사람들이 있기에 하나의 조경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존재. 서로가 개별자로 존재할 때보단 어우러질 때 쓸모가 생기는 그런 관계.

닮고 싶었다. 노란색, 보라색, 그 빛깔을 따라 가지려고 이래저래 부단히도 애썼다. 꽃은 수시로 피고 지고 다른 꽃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철마다 해마다 그렇게 다르게 살았다. 그래서 내가 꽃인 줄 알았다. 가을마다 퍼지던 달큼한 향은 내게서 나던 게 아니었다.


시절인연이란 말을 싫어한다.

그치만 산 중턱의 풍경을 한 폭 떼다 놓고 보자면, 꽃도 풀도 자그마한 생명도 수시로 피고 지고 자리를 내어준다. 하물며 바위도 갈라지고 깨지고 비에 눈에 흩어져 다른 풍경을 만든다. 돌아보면 때마다 다신 없을 좋은 인연들이 멀어지고 가까워지고 어느샌가 사라지기도, 잊었다가도 다시 나타나기도, 그랬다. 혼자였던 적은 없지만 꽃밭을 이룬 적은 없었다. 다만 귀한 꽃 몇 포기가 늘 있었다.

ISFJ에 회피형 애착유형을 가진 바위라 고단했다. 터놓고 가까워지는 게 쉽지 않았다. 이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좋아할 확률보다 좋아하지 않을 확률이 높을 거라는 생각이 어린 바위를 지배했다. 갈등은 생각만으로도 견디기 힘들었고, 가까워진다는 건 갈등이 생길 여지를 만드는 거였다. 꽃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꽃밭을 만들 수 없다는 건 다른 의미다.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상대를 향한 호기심을 죽이는 사람들. 그래서 ISFJ의 절친에 ISFJ가 있기 어렵단다.


어쨌거나 이제는 안다. 조금씩 자리를 침범하고 서로 폐를 끼치다가 줄기를 휘거나 바위틈을 내어주는 조율이 누적되어야만 절경을 이룰 수 있다는 걸. 지나치게 가까운 나의 꽃들. 내가 생각하는 가까운 거리감이 당신들에겐 어느 정도로 가깝게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그런 건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당신들의 이야기에 반응하고, 궁금해하고, 질문하고, 사소한 얘기라도 먼저 DM을 보내고, 취향을 나누고 선물을 주고, 시간을 내어 밥이든 커피든 춤이든 맥주든 함께하면서, 나름의 최선으로 이 시절을 보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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